림보에서의 축지법
만리포 지음 / 녹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의 출판만화상을 받은 작가라는 홍보문고는 있었지만 그런 주례사 비평은 어디에나 있어서 큰 설득력이 없고 특이해보이는 책은 별 생각 없이 구매하는 습관때문에 손에 쥐게 된 책이다. 그런 가운데 생각지 못했던 기적인 세렌디피티가 있기 때문. 계획하지 않고 발길 닿는대로 가다가 우연히 들어간 골목길 가게에서 최고의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듯이 말이다. 세로로 긴 폰트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편집이라는 첫 인상밖에 없었다. 그 퍼스트 임프레션은 곧 충격으로 바뀔 것이었다.

 

한국어로 쓰여졌다 뿐, 내용은 프랑스문학이다. 모두가 하하호호 하면서 읽을 수 있는 범용성이 있는 글은 아니다. 대개 유럽문학이 그렇다. 유럽이라는 문화자본과 외국어라는 낯섦에 의해 포장이 되었을 뿐 내용적으로는 이상하고 뒤틀린 부분이 있다. 일단 그리스로마신화의 부친살해, 난봉꾼, 근친상간 등의 파격적 주제를 보면 알 수 있다.

 

글쓴이는 일본에 살면서 한국어로 유럽적 사고를 하는 흥미롭고 놀라운 저자다. 정치적으로 깨어있고 국제적인 사고를 하며 거시적 시야를 장착했는데 또한 유년시절 쌍둥이 심리적 트라우마와 현재 남친과의 늪에 빠진 관계성과 개인적 모순에 대해 탐구하는 미시적 시야까지 있다. 유일무이한 단독자로 존재하는, 어디에도 닮은 이가 없는 캐릭터다.

 

글에는 저자가 의식했든 안했든 유럽문학권의 세례가 있다. 토마스 만, 밀란 쿤데라, 제임스 조이스, 사라 워터가 부분적으로 모두 느껴진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다음 권호로 있어야하는데 이제 신간으로 나왔고 2-30년 후에는 세계문학의 시리즈로 함께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두세 페이지마다 좋은 표현이 있어 포스트잇 날개를 달다가 나중엔 포기하고 줄을 쳤다. 예컨대

p25 주변시로 훑어봤다.

p27 기억의 핀 조명도 거기서 꺼진다. / 로 끝나는 구절

p29 아주 귀애하는

p32 외따로 떠올린다.

p35 마지막 쌍둥이의 구절로 해당 장 슬레이트를 임팩트있게 마무리

p39 개개 풀어져 무장 해제되고 이윽고 무적이 되는 것 같았다.

p110 만화의 홈통을 타고 배수되는 두분의 간수 같은 시간 속에서 .. 찰방찰방 나아가다보면

 

내용적으로는 다음 부분이 특히 문체도 내용도 유럽문학 같이 사회문화적 분석과 내면적 탐구가 함께 결합된다.

p52 우익적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p54-56 특히 p55 나카무라에 대한 분석은 p7의 남자 이야기에 대한 부분과 이어진다.

p66 장례지도사 분노 일화

p150 <속가> , 그리고 이후 모든 스무 페이지 전부

 

책을 덮고 나서 날개의 찬사가 모두 이해되었다. "자기 피를 어디로 튀기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라는 조익상 만화평론가의 코멘트와, "정교하고 집요하고 탁월한 자기 추적"이라는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의 감탄은 일리가 있다. 아트선재 <스펙트로신테시스>보다 절규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대도시의 사랑>보다는 솔직하고 포장하지 않고 민낯을 보여준다. 홍상수 감독이 34, 54시간에 이르는 자신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사람이 투명하고 솔직하고 진실되어야한다고 말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말만 할 뿐 딱히 진실된 점이 없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외국어 번역투에 외국식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서양문학과 달리 한국어로 쓰여져서 그 자기고백이 훨씬 더 사람냄새를 풍긴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작품은 장 주네의 <하녀>의 솔랑주와 클레르뿐인데, 이 관계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치사상가 레오 스트라우스는 과거에는 책을 처음부터 선형적으로 낭독해 읽고 스키밍하거나 검색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위험한 이야기는 자기 말을 잘 들어준 사람들을 위해 2/3지점부터 숨겨놓는다고 했다. 밀교적(esoteric) 글쓰기다. 이 책 역시 대략 2/3지점인 100페이지까지 따라가야 그 이후 더 충격적인 개인사가 나온다. 이미 앞부분도 상당했는데 과거의 이야기고, 그 이후 나오는 모든 부분은 지금-여기의 자기 스토리다. 가끔 영화 중에 타이틀이 처음 10분 안에 뜨지 않고 중간이나 뒤에 삽입되는 경우가 있다. <나미비아의 사막>이 그렇다. 이 책은 p103<림보에서의 축지법>이라는 책제목을 딴 장이 나온다. 그 이후 책을 덮을 때까지 손을 뗼 수 없다. 그것도 2/3지점인 100페이지를 읽어와 저자가 스스로 내면을 투명하기로 보여주기로 선택한 고백적 일기를 다 읽어 준 사람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나카무라, 주민세, 노비타(도라에몽의 진구), 시바리테, 가이낙스, 안노 히데아키,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일부 고유명사로 인해 저자가 일본에서 애니메이터로서 일하고 있음이 짐작이 되긴 하지만, 옛 사회문화보다는 컨템포러리한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읽힌다. 아무 국가의 아무 사람이나 읽어도 보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다루는 정체성, 트라우마, 성적 페티시가 전혀 보편적이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소수 취향은 각 국가에서 부분집합으로 긁어모아 국제적으로 단합한다는 측면에서 느슨한 보편성을 취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같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현재와 기억이 습합되고 착종되는 것 같으나 일견 저자의 복잡다단해 보이는 세계는 대단히 일관적이다. 이런 종단적 분석은 어문학과 문학분석 시간에 다루기에 적절하다.


p19의 기어다니는 이미지는 p178의 개로, p182의 에필로그로

p26의 붙들림과 굴욕은 p130 p143의 돔섭관계로

p25의 유년시절 기억은 p180의 현재로

p17의 튀어오르는 볼은 p111의 엉덩이에서 p142의 페티시로 이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태원 뉴스프링 프로젝트에 다녀왔다.


오종부터 강임윤까지, 깔끔하고 정갈하면서 아우라가 돋보이는 공통분모를 생각해볼 때 뉴스프링이 원하는 일관적 취향이 있다고 느낀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회화는 더이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창의적 조형을 강조하는 큐비즘이나 색채의 기운생동을 추구하는 야수파 등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회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디지털 시대를 만나 회화는 이진법 기호로 쉬이 복제되어 해저 케이블을 따라 전세계로 빠르게 유통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그림은 전시장 안에 배치되어 관객과 대면할 때의 현장감을 대체할 수 없다. 어떤 회화는 아우라와 앰비언스가 압도적이다. 까닭에, 발품을 팔아 그림을 직접 보러가야 한다. 최근에는 퐁피두 큐비즘, 서울시립 유영국이 그랬고 뉴스프링의 강임윤도 그러했다.


색채가 클리나멘처럼 서로를 산뜻하게 스치고 지나가며 남겨진 기운의 궤적과 운치의 흔적, 혹은 운동의 자취를 이탈리아 삼베천이 머금는다. 어떤 상서로운 기운이 캔버스 너머로 전해진다.


장막 위의 색채는 노랑도 빨강도 아닌, 그보다 더 구체적인 이름을 갖는다. 그림 앞에서만 느껴지는 새근새근 숨쉬는 정동의 고유명사다. 황금빛으로 번지는 카드뮴 옐로 라이트의 평원이 보이고, 퀴나크리돈 마젠타의 유영이 사르륵, 연분홍 안개를 헤치고 초서의 획처럼 나아간다. 단종 유배지 청령포의 강을 닮은 곡선은 마치 용과 뱀이 서로 다투는 듯하고 그 언저리로 이응노적인 필획이 반쯤 잠에서 깨어나 꾸물꾸물, 유야무야, 그러나 기기묘묘하게 의도적인 움직임으로 화면을 횡단한다.


세이프그린이니, 비리디언이니 청람색이니 하며 파르르 떠는 식물의 고요가 스며들어 있다. 세룰리언 변조를 그러쥐고 춘몽의 미풍이 불어온다.


유목적 황색, 과수원적 침묵, 수채화의 조수, 연기의 과육. 재현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다. 회화와 독대한 자들에게만 허용된 명상이다. 대개 사물을 설명하지 않는 회화는 사물 이전의 감각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것을 느끼는 바, 무엇인가 피어나는 듯하면서도 끝내 꽃이 되지 않고, 무엇인가 날아오르는 듯하면서도 새의 형상을 거부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장자가 나비를 꿈꾸고도 아직 깨어나지 못한 듯.


놀랍게도 색채가 수학적인 공간분할을 따라 구획된 것도 아닌데 절묘하게 그라데이션되어 있어 철썩철썩 부딪히지 않는다. 대신 사각사각, 후우우, 사르르 흩어지며 느슨하게 무엇을 탄생시킨다. 추상회화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낸다. 무엇을 그렸는가?, 가 아니라 무엇이 막 생성되려 하는가?


그리하여 이미지의 왕국보다 기운의 왕국이 되리라. 기능은 형태를 따르나 형식은 감각을 따른다. 감각이 먼저 피어나고 형식이 늦게 도착한다. 보는 이는 어느새 옛 선조들의 서화감상을 답습해 색채의 기후 사이를 산책한다.


그러다 고즈넉한 봄날 창호지 너머로 스며드는 살가운 새벽빛의 숨결이 아련하고도 유장한 어미품 같은 지리산 육산맥을 어화둥둥 넘어 온 것임을 깨닫게 되리니 




@newspringproject님의 이 Instagram 게시물 보기: https://www.instagram.com/p/DZZHr6sk581/?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igsh=M2M0Y2JmOTAyOA==


https://www.instagram.com/p/DZeQHuDkcrG/?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each Read (Paperback)
Emily Henry / Berkley Pub Group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보에서 보유외서로 있길래 생각없이 주문했다가 치사량 이상의 발랄함과 천진난만함이 마구마구 쏟아진 탓에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ENFP일 듯한 낭만주의자 로코 소설 작가 재뉴어리와
ISTP나 INTJ로 보이는, 어두운 측면을 포착하려는 리얼리즘 순문학 작가 거스의 꽁냥꽁냥 스토리다. 겉바속촉 츤데레의 전형이다.

말괄량이 삐삐같은 햇살 여주(F타입)과 시니컬하면서 까칠다정 후드티너드남 남주(T타입)의 조합인데 서로 정반대의 성향이기 때문에 불과 얼음의 충돌이 여름 내내 글쓰기 장르를 바꾸는 내기를 하는 동안 이어진다

격렬하고 제대로 부딪히기도 하지만 어쨌든 각자의 결핍을 채워주며 치유와 성장한다는 네러티브다.

가볍고 유쾌하고 통통튀고 재치 있는 티키타카가 인상적이다. 영어 문체에서는 감각적인 동사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2-30대 성인이행기 뉴어덜트 MZ세대나 40대 백인 중산층 여성 취향이다. 팔리는 소설의 전형. 뉴욕경험이나 해변에서 책 읽는 취미가 있다면 공감할 부분이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넷플에 1위로 올라와 있길래 <중간계>보았다. 러닝타임은 1시간이다. 작년에 개봉했을 때 CG가 어설프다고 사람들이 욕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1위라니

감독의 전작 <카지노>나 ˝너 납치된거야˝의 손석구가 빌런으로 나오는 베트남 배경의 스릴러 <범죄도시2(2022>풍으로 시작한다.

음악은 퓨전 국악풍이니 <전우치전>이 생각나고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숨은 고수가 있다는 도시전설은 <소림축구> 등 홍콩영화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 홍콩영화의 백미인 <쿵푸허슬>의 CG, 액션연출과 유머를 닮았다.

어설픈 CG가 문제가 아니라 컷마다 CG의 퀄리티가 균질하지 않고 화면과 어우러지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온갖 CG에 대한 불만이 퐁글퐁글 샘솟는 중에

갈수록 얼탱이가 없는 진행에 턱이 빠져서 실없는 웃음이 나오다가 끝났다.

설마설마 했는데 매트릭스 베인처럼 끝날지 몰랐다.

시온 반란군의 함정 해머(묠니르)호 탑승원 베인의 매트릭스 아바타를 감염시켜 현실에 존재하는 베인의 뇌까지 잠식한 스미스 요원의 느낌으로 슬레이트를 쳤다는 말이다.

김유정이 주연한 티빙 오리지널 피카레스크식 드라마 <친애하는X>에는 리움미술관, 파주 미메시스미술관이 나왔다.

그렇듯, <중간계>에서는 안국역, 조계사, 인사뮤지엄,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광장이 나온다.

특히 지하철 승강장 바깥은 누가 보아도 3호선 안국역이다. 1번출구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있고 B1 복도가 낯익다.

그러나 변요한 일행이 뛰어 들어간 승강장은 좁은 섬식 승강장이라 안국역이 아니다. 양방향으로 탑승가능하지 않다.

이정도로 승강장 사이가 좁은 곳은 종로3가역이나 을지로3가역이 있지만 기둥 타일 디자인이 눈에 익지 않다. 지축역도 섬식 승강장이지만 지상이고 지하가 아니다.

심지어 지하철이 곡선으로 휘어져 승강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3호선 라인에는 없다.

인천1호선 박촌역이었다.

검단에서 부평까지 내려오는 중에 395m의 계양산과 115m의 형재봉을 터널 뚫고 직선으로 오지 않고 우측으로 산을 감싸며 휘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김포 골드라인의 수요예측 실패로 지옥철이 되자 그 대안으로 김포-방화 5호선 연장선이 부각되었는데 예타조사하면서 인천시가 검단을 지나달라고 해서 또 휘어지게 되었다.

한중일 각 나라마다 약간의 그레이한 영역이 있다. 합법도 아니고 위법도 아닌 영역, 사회의 규율과 관습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젊은 혈기가 어떤 탈출구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

서부 웨스턴 같은 곳이다. 자신의 힘과 의지로 무언가 제로에서 쌓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태어난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부, 권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다.

2000년대 초 조폭 느와르 시대에는 대개 성남시 같은 서울 재개발 지역이었다. <똥파리>에서 양익준이 열연한 고통 받는 가난한 서민 가정이 집결한 판자촌 같은 곳을 싹 밀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아파트를 짓고자 인력을 동원한다.

그렇게 동원되는 청년들도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이들인데 장기 판의 말로 소비된다.

사회의 감시망이 촘촘해질수록 그런 중간계적 장소는 없어진다.

일본은 호적제도가 미비하고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처럼) 디지털 전환이 안되었고 사무라이 지방분권의 영역으로 각 지역마다 행정시스템이 제각기이라 누가 누구인지 신분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도쿄리벤저스>의 양키, 폭주족이나 <바람의 검심>의 신선조, 과거의 야쿠자 오늘날의 한구레처럼 사조직을 만드는 것이 조금 사회적으로 양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 완벽한 공적 영역에 있서 정치경제사회의 최전선을 달리는 이(한자와 나오키 등) 완벽히 사적 영역에 있어 개인적 취미에 탐닉하는 세카이계나 히키코모리나 오타쿠가 양극단 사이에 사회와 불화하고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계속 떠돌아 다니고 찾으려면 찾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중국은 일단 나라 사이즈가 너무 커서 상식과 인지 감지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 또한 소수민족이나 그들이 사는 곳이 그런 그레이한 영역으로 기능한다.

<와호장룡>에서 티벳(으로 잘못 자막이 달린) 신장 위구르가 그렇다. 분명히 자막과 말에서 씬쟝新疆 Xīnjiāng이라고 했었다. 티벳은 씨짱西藏 Xīzàng이다. 둘 다 중원 입장에서는 너무 멀다. 대개 무협의 정파가 아닌 마교나 사파가 있다고 여겨지는 곳은 남만, 청해로 무당파 소림사가 있는 중원이 아닌 외곽 지역, 타자의 공간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샤이어는 영국의 순수한 시골이고, 사루만이 있는 모르도르는 불가리아다. 민족문화에서 낯선 타자의 공간으로 슬라브 민족을 택했다.

한국은 국내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국외가 그 타자의 공간이다.

범죄가 일어나는 곳은 베트남, 필리핀, 수리남, 태국, 캄보디아다. 한국 내부에선 촘촘한 CCTV와 높은 디지털 문화로 인해 개인이 숨을 곳이 없다. 북한 같은 극장국가 감시사회는 더더욱 없다. 사생활이 없는 곳이다. 영화 <탈주>에서 북한 안에 여자 무장 반란군 설정에서 핍진성이 없었다. 애니 <광장>도 그런 측면에서 스웨덴 남자(할머니는 한국인)과 북한 여성 사이의 로맨스가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핍진성이 덜해보였다.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한반도 외부를 상정해야 그런 그레이 공간이 나온다. 인천을 거쳐 외국으로 나가면 거기서 이제 한국 내부에서 불가능했던 수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고 외국에 있는 이들의 행적은 모호해진다. 그런 블러, 흐림이 주는 애매모호성과 자유를 위해 출국하기도 한다.

한국 안에서는 모두 말씨와 민족과 문화가 높은 수준으로 동질적이어서 바깥을 상상할 여지가 없다. 사회 감시망도 촘촘하다. 코로나 초기에 입국 보균자의 이동경로까지 추적해 멍석말이 했을 정도다.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 만주 웨스턴을 시도했지만 그런 광막한 공간은 한국에 없다. 일단 한국어가 아니라 해독불가능한 외국어로 된 정보가 들려야 비로소 한국인은 이역이라고 여긴다. 한반도 안에는 율도국이 없다.

미국은 서부 웨스턴 카우보이였고 디지털 공간을 거쳐 우주 달탐사와 화성 식민지로 나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 경제적 불안을 권하는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법
다우치 마나부 지음, 김정환 옮김 / 부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