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지향성이 적은 연세대 행정학과 홍순만 교수의 글

횡재에는 성급한 소비보다는 R&D에 장기 투자하고 펀드에 부어 관리하라

개인과 국가, 공과 사 모두 적용되는 이야기

로또당첨되어도 과소비하지 말고 미래 성장을 위해 투자하고

반도체 초과수익(300조원의 법인세 45조에 추경22조원빼고 23조도 재정부채 100조 막기도 시급)도 포퓰리즘 정책으로 쓰지 말라는 글로벌 사례(아일랜드와 몽골과 스웨덴)을 통한 다정한 조언(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기대하게되는데 다음 번 수퍼사이클은 이익 재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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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가 예전 같지는 않다. 옛 그네는 360도로 돌아갈 것 같은 스릴이 있었다. 요즘 그네는 얌전하다. 줄 길이는 짧아졌다. 프레임도 낮아졌다. 좌석은 앉아서만 이용할 수 있다. 옛 그네는 인간 투석기였다. 요즘은 흔들의자다.

요즘 놀이터는 얌전하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6/05/26/NAZI2Q6Y6JF6PKUSXZY2LXDL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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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raus의 Angel Down
온점이 없고 쉼표로 이어지며 문단 시작이 and으로 시작하는 이상한 소설이다. 특이한 문체가 주는 리듬이 꾸란의 fa(فَـ)로 시작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fa도 and다.

혹은 그리스어의 kai나 구약의 히브리어 waw같은 (모두 and을 의미한다) 문장이 주는 연쇄적 계시(revelatory chaining)처럼 느껴진다.
사건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리고‘로 이어지는 중에 존재론적으로, 계시의 압력으로 밀려온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모든 문장에서 온점 제거한 이유는 (의미의) 닫힘을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개 점을 찍으며 생각을 종료하고 의미를 봉합하고 감정을 매듭짓는다.

그런데 크라우스는 모든 문장을 쉼표로 이었기에 낭독자는 어디서 끊어 읽고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불명확하다. 독자는 무엇이 핵심인지 흐려지는데, 구어체와 생각과 서술과 시간과 기억과 현재가 모두 혼합된 상태로 경험하게 된다. 전쟁의 PTSD를전하기 위해 선택된 문체다. 난해하게만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전쟁과 트라우마와 광기의 인지 상태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다.

사건의 연쇄 작용 가운데 인간이 흐름에 휩쓸리는 느낌이 우리나라 문화로 비유하자면 판소리같다. 북의 장단에 이어붙이는 구술문화다. 야전 보고, 전장 증언, 기도문, 의식의 흐름같다(후술)

캡쳐2는 p235는 스포일러다(메롱)

3인칭 객관적 소설이라기보다 POV 1인칭으로 누군가가 살아남기 위해 중얼거리는 기록이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는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의 <마리우폴에서의 20일(2023)>, <2000미터 안드리브카 전선(2025)>같고

의식의 흐름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같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영화화를 목표로 쓰여진 많은 현대소설 <하우스메이드>나

프랑스 기욤 뮈소의 <구해줘 (Sauve-moi, 2005)>,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Seras-tu là?, 2006)>,<파리의 아파트 (Un appartement à Paris, 2017)> 등에서 보이는 빠른 컷 전환의 기법과는 대척점에 있다.

또, 캐릭터의 내면 설명과 심리 분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소설과도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서사적 설명이라기보다는 중언부언 구토에 가깝다. 분절된 논리가 아니라 반복과 접속과 누적에 방점이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크쉬슈토프, 부분적으로 알베르 세라, 오즈 야스지로나 소마이 신지의 롱테이크처럼

장면을 컷하지 않고 문장을 질척질척하게 이어붙인다.

그래서 시체, 진흙, 피, 기억, 환영, 천사의 이미지가 분리되지 않은 몽타주로 혼재되어 있다. 구술된 악몽같다. 포크너나 코맥 매카시로도 비유해볼 수 있겠다.

전쟁 주술, 집단적 애가(哀歌), 패배자의 성서, 타락한 복음서로서 이 이야기가 진흙 냄새와 숨막힘과 쇳소리와 끌려가는 감각의 추체험을 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네메시 옐레시 라슬로 <사울의 아들(2015)>도 생각난다.

아이가 정말 자신의 아들인지 왜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장례를 지내주려고 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우슈비츠를 1인칭 시점으로 추체험하는 영화다.

깔끔하게 신 분할하고 논리적으로 플롯을 분석할 수 있는 소설이라기보다 늪을 걸어가는 육체적 느낌마저 든다.

아마 이 소설을 가장 흥미롭게 읽은 사람은 유발 하라리이리라 생각한다. 그는 한국어로 이 글을 못 읽겠지만.
하라리는 옥스퍼드대 지저스 컬리지에서 2002년에 중세 전쟁사로 박사를 받았고 그 박사논문에 기반한 책은 <르네상스 역사 회고록>으로 번역되어있다.

중세 전쟁 참전 군인과 용병의 회고록이라는 구술문학을 토대로 균일하고 선형적인 달력에 기반한 역사서술이 아니라 자기에게 의미있는 전쟁을 과장하고 필요없는 이야기는 소략해 서술이 점프컷처럼 튄다는 점을 논했다.

군인의 반복 증언과 구전 서사와 히브리 묵시문학이 미국소설의 외피를 입은 특이하고 재밌는 이야기지만 읽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한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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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갈 최적의 시점은 언제일까

○우에노 4총사

1. 도쿄국박

2. 서양미술관 리투아니아 Čiurlionis チュルリョーニス, 상설전 3.28-6.14

3. 도쿄도미술관 Andrew Wyeth 4.28-7.5

(오르세는 11.1-27.3.28)

4. 우에노의 숲 대고흐전 5.29-8.12

+ 솜포 외젠 부댕 4.11-6.21


5. 도쿄근대 소장품전 5.26-9.13

+황거

+도쿄역 미츠비시 카페의 예술가 인상주의부터 피카소까지 6.13-9.23


○롯본기 3총사

6. 국립신미술관 폴 스미스로 본 피카소 6.10-9.21

7. 모리미술관 론뮤익 4.29-9.23

8. 21x21 수프 3.27-8.9, 가우디 5.16-7.12


○가나가와 폴라미술관 모네와 현대미술 6.17-27.4.7


○교토

교세라 yBa 6.3-9.6

근대 모던도시 3.28-6.21

국박 대가노파 6.8-7.19


○오사카

나카노시마 마우리츠허위스 8.21-9.27

아베노하루카스 발라프리하르츠 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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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큐비즘전 좋았다. 깜짝 놀랐다. 정신을 잃고 보다보니 순식간에 3시간이 지났다

큐비즘이란 무엇인가? 큐비즘은 어떤 것이 있는가? 조형 살롱 질료 안과밖의 경계. 내적 발전은 어떻게 되었으며, 이탈리아 러시아 등 외적 확장과 적용은 어떻게 되었고 한국은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답한다

언제 글 쓰지

상해에도 퐁피두 소장품전을 한다는데

사실 퐁피두 소장작품은 한국에 아홉 점 더 있다
국현미 청주 방혜자전에 22년 사후 24년에 퐁피두 기증작이다
25년 9월 리노베이션을 위한 장기 휴관에 들어갔는데 그전 24-25년 방혜자 회고전 및 개인전을 했다고 도록에 써있다

방혜자 퐁피두 기증작 2024년 노트

지심 1960 유화
부활의 노래 1972 템페라
제목없음 1970 유화 가죽 사포
제목없음 1990 천연안료 파스텔
용신제 1975 유화 템페라 천연안료
제목없음 1987 천연안료
흐르는 빛 1981 유화 파피에콜레 천연안료 톱밥
빛의 기쁨1 2020 천연안료
빛의 탄생 2020 천연안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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