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좋아하세요? - 어느 덕후와 교수의 고전 교환독서
하길(석민주).이준석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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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기획이다. 룬의 아이들,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거쳐 일리아스를 탐독한 한의사가 탄핵집회 때 고전구절로 깃발을 만들어 전공자의 눈에 띄고, 충동적으로 트위터로 DM을 보내 전공자와 인연이 이어진 결과 탄생한 책이다. 518부터 슬램덩크까지 소환되고 고전의 장면을 현대정치에 적용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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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다녀왔다. 오늘 새로운 전시가 열려 9월 27일까지 3개 층 모든 전시실이 풀로 가동했다. 1층엔 수련 르누아르 피카소 샤갈 호안미로 살바도르 달리 키키 스미스 뒤샹 저드 등등 해외 근현대미술 엑기스 찍먹전과 요코하마 투어하고 돌아 온 한일현대회화 교류전이, 3층엔 한국근대미술 2층엔 한국현대미술이 진행 중이다. 이런 시기가 과천을 방문할 적기다.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정도로 볼 것이 많다. 작년 젊은모색이나 신상호도기전 때 와서 2-3층을 다 보았다고 해도 최근 리뉴얼 되어서 작품이 많이 교체됐다 2층 여성조각과 여성미술가 3층 이인성 박수근 등 체감상 3층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

전시 디스플레이가 직관적이고 이해가 쉽다
이우환의 모노하 스승이 있고
자이니치는 양영희 감독 디어평양굿바이평양이 생각난다
이불의 드로잉이 있고 2층에서 실물을 감상할 수 있다
곽덕준의 시계는 야외에 계량기조각

정거장 도착해서 여기까지 끄읕 나중에또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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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남짓한 흑백 영상의 저채도 화면 속에도 물방울 알알이 부각되는 폭우인데 그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잉크로 글을 쓰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하는 남자가 있다.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의
비 (텍스트를 위한 프로젝트)
La Pluie (Projet pour un texte) 1969다.
5.14 이대 EMAP 스크리닝 중 한 테마다.

실패 이전에 하나의 시도가 있고, 어떤 실패는 끝내 철회되지 않는다는걸 새삼 깨닫는다. 우스꽝스러움과 비애라는 특이한 조합이 보인다. 마치 먹과 비가 천천히 뒤섞이듯. 다르게 말하면 허망한 성실함이다. 불가능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수행하는 집요하 몸짓이 여기에 있다

자연이 언어보다 빠른 것이다. 잉크가 번지고 종이가 젖어 단어는 문장이 되기 전에 비 속에 용해돼 소멸대고 만다. 흥미롭게도 남자는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결과가 아니라 지속이 중요하다는 걸 호소하려는 것 같다. 글쓰기의 목적이 의미 전달이 아니라,
쓰려는 태도, 자세 혹은 이 모든 것을 합한 어떤 태세 자체에 있다고 증언하려는지도 모른다.

하여 글쓰기 이전에 존재하는 글 짓는 자의 모습이 화면 전면에 부각된다.

문학은 결과물과 퍼포먼스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희극을 품은 텍스트 생산 노동은 자연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한 인간의 분연한 정신을 상기한다.

시인으로 출발했던 브로타에스는 언어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기에 단어를 설명의 도구가 아니라 물질처럼 다뤘다. 그래서 이 영상에서 자연은 배경효과가 아니라 글 작성을 도와주는 편집자로 기능한다. 인간이 만든 문장을 비가 삭제하고 그라마톨로지의 주장처럼 의미를 희석시키고 엄밀한 형식적 표현을 자연의 카오스적 리듬으로 되돌린다. 빗물은 잉크를 씻어내면서 동시에 언어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남는 것은 흔적이다.

낭만주의자들이 상상한 자연은 어디갔는가. 인간 의지를 무심히 압도하는 근원적 힘을 발산하는 자연. 냉엄한 현실 앞에 재난영화의 과장됨도 숭고함의 수사도 없다.

생각한 바를 기록하려 하는 인간과 달리 세계는 그것을 굳이 보존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허ㄴ나 브로타에스는 그 간극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되려 무심하게 반복한다. 그 무표정함 때문에 작품은 한층 더 우울하고 한결 더 우스운데 이상하게 현대적이다.

작가의 비애. 예술가의 초상. 인류의 운명. 끊임없이 만들고 작업하지만 언제나 행위 위로 비가 내려 결과물은 애통하게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그 수많은 작업물 중 유물이 되어 후대에 남겨진 것이 있듯, 깃발처럼 휘날려 쉬이 휘발될 수 있었 퍼포먼스가 화학 혼합물이 필름에 각인되고 디지털화되어 특정 방식으로 조합된 이진법의 전자신호가 해저케이블과 스크린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https://youtu.be/EHhigM53ILw?si=I5H9QuykZR9yvL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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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5.13-15 미중 정상회담

13일 한국에서 양국 고위급 경제,무역 회담. 트럼프 베이징 도착
14일 논의, 15일 출국

팀 쿡, 일론 머스크, 래리 핑크를 비롯해 메타, 비자, JP모건, 보잉, 카길 등의 주요 기업 임원 17명이 동행

내 추측이지만 꽤 괜찮은 경제 무역 딜을 할 것 같다.

공화당 선거를 앞두었고 지지율이 하향세인데, 넓은 땅덩어리에 차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미국인에게 산소나 다름없는 유가가 호르무자 사태 때문에 올라서 스윙스테이트에서 고전 중이다.

이란 전쟁 뿐인가. 러-우전쟁도 유세 때 약속한대로 끝내지 못해 성과가 없다. 북한은 러시아와 밀착했고 드론현대전 훈련했으며 러시아로부터 무기기술 이전도 받았다. 바뀐 헌법에 영토조항을 신설해 대한민국과 접한다고 명명하고 두 국가로 확정했다. 북한이 아쉬울 게 없어 미북 관계 개선도 요원하다.

미국산 소고기, 대두 사고, AI 규제푸는 가시적 성과라도 없으면 안된다. 중국과 무역전쟁 시작한 자가 결자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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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퓰리처상 중 이 책이 제일 좋았다. 첫 페이지 읽자마자 휙하고 휩쓸려 들어갔다. 일하는데 집이 없는 사람들의 주거 불안정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클로이 자오의 오스카상 수상 영화 <노마드랜드>가 생각나지만 영화쪽은 웨스턴과 로드무비를 섞어 낭만화한 측면이 있다. 반면, 책은 부자나라의 가난한 국민의 초상을 처절하게 다루며 노숙자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앵글로색슨적 복지관념을 타격한다.


왜 일을 하는데 집에서 쫓겨나고 힘들게 사는가? 집에서 퇴거된 후 영구적으로 임시상태로 사는 미국인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 삶의 단면이 자세하게 서술되었다. 영화는 실외 공간에서 광활한 자연과 마주하는 유랑민이 만든 캠핑 공동체에서 희망을 전달하지만 책에선 그런 것도 없다. 모텔을 배경으로 실내 공간의 수탈과 구조적 감금, 강제 퇴거의 악순환이 이어져 집을 잃고 다시 정착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그린다


책에선 밀도 높은 현장감과 힘있는 정서와 이성적인 분노가 모두 느껴진다.

단독주택이 늘어선 교외지역 개발, 장기거주와 지역 공동체라는 20세기 미국적 신화와 아메리칸 드림은 도시화에 기반했다. 이제 이 도시사회학적 모델이 해체되고 21세기 미국은 단기 근로계약, 임시 모텔, 차량 생활, 플랫폼 노동을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인간, 즉 이동가능한 인간이 탄생한다. 그 결과 이전의 시민(citizen)이 이제는 사용자(user)가 되며 정착민 사회가 다시 유목화(노마드화)된다.


올해 초인가 작년 말인가(벌써 오래 전 일 같다) 읽었던 송길영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말했던 경량화된 개인이 실패한 열화버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 정도로 디테일하고 힘있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논픽션 기사는 6년 전 시사인 르포가 생각난다.


daerim.sisain.co.kr


푸코는 권력을 세 가지로 나누어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은 신체를 통제하는 권력으로 의학, 병원, 감옥, 군대로 나타나며 

담론권력(discourse/power-knowledge)은 정신과 의식을 다루는 권력으로 교육, 언론, 심리학이 주관하며

생명권력(biopower)은 개별 신체를 모두 포괄하는 집단 전체의 삶, 즉 인구의 권력으로 국가 행정, 통계, 복지, 성관리로 세분화할 수 있다고 했다.


푸코의 위대한 통찰은 생명권력이긴 한데


한국에선 담론권력이 많이 쪼그라들었다.


혹은 전통적 레거시 미디어에서 유투브와 인플루언서로 권력이 옮겨갔고

요즘은 종이신문으로 출발한 언론의 기능이 이전 같지 않다.


그래서 위의 시사인이나 이런 퓰리처상 받은 중량감 있는 책을 쓰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


한국에서 기자를 폄훼해 기자+쓰레기=기레기라고 하듯

일본에서도 대중언론(mass communication)의 일본식 준말인 매스컴(마스코미マスコミ)에 쓰레기를 일컫는 고미(ごみ)를 붙여 마스고미라고 한다.

레몬ost로 유명한 드라마 언내츄럴에서 들었던 어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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