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영화가 사건을 연결하는 방식을 논리접속사로 표현해보고 싶어졌다.
1. [그리고]의 영화
짐자무쉬, 켈리 라이카르트, 빔밴더스, 홍상수 등등 인디 영화계열. 사건의 인과보다 존재의 지속을 보여준다. 플롯이 아니라 시간의 체험이 핵심이다. 로드무비를 택하는데 이는 등위 접속사의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떠난다. 그리고 온천으로 간다." 딱히 의미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벌어지는 사건은 세계를 전복시키고 우주의 의미를 발견하는 정도의 드라마틱한 속성이 없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다. 다만 쓴맛으로 단맛을 증폭시키는 것처럼 일상성의 맛을 돋우기 위해 은근한 불안과 갈등을 저변에 깐다.
2. [또한]의 영화
몽타주, 상호작용하는 이미지의 연쇄가 의미를 증폭한다. 1번과 다른 이유는 관객이 보는 병렬적인 이미지가 한 네러티브 안에서 무슨 함의를 지니는지 쉬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 3번을 좋아하는 사람은 진행이 더딘 2번을 좋아하기 힘들다. 기억이나 꿈이 자주 나오고 하나가 다른 이미지와 충돌하고 공명하고 확장하고 상호 참조하면서 해석 체계를 새로이 만들어낸다. 영화관을 나오며 궁금증만 많아지고, "어렵다.." "뭘 보고 나온거지?" 하고 수군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예컨대 최근에는 <석류의 빛깔>이 그랬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 그런 편이다. 영적이고 신학적이고 시적인 느낌을 받는다.
3. [다음에]의 영화
모험서사다. 시간적 진행에 따라 다음 단계로 이동하며 스펙터클을 만든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다 그렇고 최근엔 <주토피아2> <호퍼스>를 봤다. 현대에 개발된 장르라기보다 고대 중세 신화와 서사시 전통으로부터 이어진 계보가 있다. 황금가지. 캠벨의 영웅의 12단계 여정. 모두 좋아하고 알기 쉬운 영화다.
4. [하지만]의 영화
<나이브스 아웃> <자백> 등 전복과 반전이 특징인 추리물이다.
초중반부에 영화에서 범인이 누군지 하나씩 정보를 주면서 특정인물로 몰아가다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이 클라이맥스에서 뒤집히면서 이야기가 재구성된다. 항상 무거운 스릴러는 아니고 <범죄의 재구성>도 있다. 던져주는 정보를 통해 전개되던 이야기가 [하지만]의 단계에서 충돌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화
살아가는 고통과 인생의 모순을 다 보여준다. [하지만]과 다르게 앞의 사실을 부정하지도 반전이나 해결을 통해 문제를 제거하지 않는다. 고통 속에서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고통과 모순을 숨기지 않는 영화를 굳이 보아야하나? 우리가 모르는 사회의 한 집합을 대리체험할 수 있다. 설령 나와 상관없고 앞으로 그렇게 살 일이 없다하더라도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 대해 연민하고 공감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정서적 훈련을 할 수 있다.
예술 독립 영화에 많은데 최근에는 <세계의 주인> <첫여름> <아침바다 갈매기는> <딸에 대하여> <3학년 2학기> 같은 영화가 생각난다.
6. [그래서]의 영화
최종 결론에서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결말은 서사의 의미를 확정한다. <쇼생크탈출>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가 대표적이다. [다음에]의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그래서 이렇게 살라는 교훈은 없다. [그리고]는 병렬적이라 엔딩에 큰 의미가 없고 [하지만]은 결말의 반전이 방향성을 바꾸는데, [그래서]는 결말로 가면서 선명한 가르침 하나로 수렴된다.
7. [왜냐하면]의 영화
영화는 원인을 탐구한다.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부분적으로는 [하지만]의 영화도 차용한다. 왜 범죄가 일어났는지 추적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전보다는, 행위의 동기를 연어처럼 거슬러올라가는데 목적이 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해보려는 철학적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라쇼몽>도 그렇고 <시민 케인>도 이런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