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절 시집 에디션)
김소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2월
평점 :
품절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초구 신원동,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오디움이다.


작년 2024년 6월 처음에 개관할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예약이 쉽지 않아서 번번히 실패하다가 최근에 다녀왔다.


나이들어 살기 좋은 고즈넉하고 살기 좋은 동네다. 고도제한 때문인지 평균적으로 아파트의 크기가 낮아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하다. 청계산과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쿠마겐고가 설계했다라든지, 500억원을 들였다라든지, 이런 정보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이런 피상적인 정보들이 이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오디움에서는 도슨트의 안내를 따라 이동해야한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작품 설명을 일일이 읽을 여유가 없다. 사진을 찍을 충분한 시간마저 없지마 어차피 인터넷에 이미 충분한 이미지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이므로 사진보다 중요한 것은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안내에 따라 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2시간 동안 알찬 경험을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스피커가 전시되어 있다. 같은 555 컴프레션 드라이버라도 앰프의 재질이 철제인지, 합성수지인지, 혹은 수제 나무인지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1~3와트 출력만으로도 얼마나 크고 선명한 음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비틀즈의 Yesterday를 들으며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선율을 구분할 수도 있다. LP 한 장이 3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타자를 쳐서 정리한 자기 컬렉션 전체를 볼 수도 있다. 오르골이 아니라 오르겔이 정확한 용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축음기의 구동 원리가 납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전환에 따라, 그리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스피커의 기술이 바뀌어왔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매우 흥미롭지만, 상대적으로 시시한 이야기다. 더 흥미롭고 본질적인 것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감동을 느꼈다. 그 마음의 떨림은 부암동 목인박물관 목석원을 방문했을 때의 울림과 유사했다.


누구에게도 쉽게 이해받을 수 없는 취미를 수십 년간 지속한다는 것, 한 사람이 뜻을 세우고(立志), 이를 지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주는 감동이었다.


이 공간은 범현대가의 KCC 정몽식 회장이 50년간 수집한 오디오의 결정체라고 알려져있다. 


흔히 재벌이라면 돈이 많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월급을 받으며 살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무수한 문제를 동반한다. 오히려 돈이 많아도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자산상으로 돈이 많지만 묶여있어 실질적으로는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용도가 정해져있어서 원하는 곳에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돈이란 원래 자신이 원래 갖고 있는 것을 증폭시킬 뿐이지, 모든 시련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왜 재벌가 며느리들에게도 고부 갈등과 자식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존재하며, 잘나가던 사업이 상속세, 트렌드 변화, 관세 전쟁으로 인해 무너지는가?


그러니 오디오 수집이 재벌이라서 가능했다, 라는 이야기는 적절하지 않다. 재벌이지만 오디오 수집을 했다고 표현을 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재벌이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사장이라고 봐도 좋겠다. 사장이라서, 돈이 많아서 오디오 수집을 할 수 있었다, 가 아니라, 사장이지만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오디오 수집을 했다, 라고 표현해야한다.


여기서 핵심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산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위해 싫어하는 일을 했다’는 점이다. 


혹은 ‘취미와 무관한 일을 해야만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 


KCC는 건축 자재를 다루는 기업이다. 정몽식 회장은 화학과 재무용어가 가득한 서류를 읽고 기계냄새가 나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집에 와서 오디오와 음악을 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다가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는 취미를 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외로웠을 것이다.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부유층의 한가한 소비’라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고, 가족과 친척조차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도 지위, 신분, 재력의 차이로 인해 완벽하게 어울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목인박물관 목석원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목석과 꼭두를 오랜 세월 모아온 관장의 립지, 뜻을 세움이 있었다.


오디움과 목석원 둘의 공통점은 굳은 立志와 수십 년간의 몰두했다는 것.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


차이점은 단지 돈의 많고 적음이다. 그러나 돈의 없음으로 인해 뜻을 지속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았기에, 오디움은 쿠마 겐고가 설계한 아름다운 공간에서 완벽한 세팅으로 오랜 취미를 선보일 수 있었다. 

돈이 부족했기에, 목석원 관장은 야적장이나 골동품가게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 산비탈에 모았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방대한 컬렉션과 정련된 열정에서 우러나오는 감동만큼은 동일하다.


이 모두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자신만의 취미를 몇 십년 동안 지속한다는 것, 사람이 뜻을 세우고, 즉 립지하고, 그것은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감동이다.






고장난 벨기에 모르티에사의 미러포닉 오르겔은 수리를 해보고 성공적이면 4월 부터 목금토 10시 첫 타임에만 틀겠다고 했다. 다시 방문해야할 이유다. 근처에는 아트스페이스엑스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biz.chosun.com/industry/company/2025/03/14/RQCFNNAKLVCE3J4PQ65RWABOIA/




헤더윅은 뛰어난 건축가다. 그러나 건축 설계의 완성도를 찬찬히 따지지 않고, 단지 영국 런던이라는 이름값에 기대어 선택했다면 그것은 문제다. 깊이 있는 안목이 결여된 처사다. 


노들섬의 사운드스케이프도 이미 헤더윅이 맡고 있다. 그외에 익히 아는 DDP는 자하 하디드, 리움은 렘 콜하스 외 3인,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했는데, 국내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 상당수가 외국 건축가의 손을 거쳤다. 외국 건축가가 설계해야 네임밸류가 높아지고, 국제적으로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 참여해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잠시잠깐의 반발은 지나가는 파도라고 여길 것이다. DDP의 경우도 당시 청계천 일대 상인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비판은 거의 줄어들었다. 아마 서울시의 시각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역풍은 사그라들고 가치가 결국 인정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에펠탑 건축할 때도 프랑스인 모두가 입을 모아 철근 덩어리라고 비판했고, 아이엠페이가 루브르 앞에 유리피라미드를 박자 모든 프랑스 비평지가 합심해 비난했다. 그러나 이제 에펠탑과 유리피라미드는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다.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국내 건축가를 선정할 경우 파벌 간의 다툼과 시샘을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외국인을 기용하여 논란을 비켜가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내 건축사무소는 볼멘 소리 일색이리라. 국내 건축가보다 외국의 명망이 선정 과정에서 우선시되었다고 발끈하리라.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리라. 과거 명나라, 일본, 미국으로 옮겨 가며 외세를 숭배하던 태도가 시대를 달리하며 또다시 반복되었다고 말하리라.


서로 복잡한 입장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서울시나 국내건축가들이나 모두 공감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혹시 이 사안의 핵심이 외국 숭배 혹은 해외 사대주의라고 정의한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대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한다. 문제를 정확히 인지해야 고치고, 고쳐서 문제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한탄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대주의가 외국을 높이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를 낮춰보는 것인가? 어떤 시점까지는 전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국력과 경제력이 충분히 올라온 다음에는 후자다. 그 몇 가지 흐름의 파도는 88올림픽, 90동구권붕괴, 92여행자유화, 2002년 월드컵, 세계화, 2010년 이후 한류붐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스페인보다 약간 많으며, 실질 GDP 또한 다소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이 유럽과 미국 앞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것과 달리, 우리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남북한을 합친 정도의 인구를 지녔는데 경제력은 우리보다 네 단계가량 낮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을 거치며 자국만의 표준을 세웠던 제국 운영 경험에서 비롯된 문화적 자부심이 있다. 자기를 낮춰보지 않는다. 유럽과 아시아 둘 다의 교량이라고 포지셔닝한다. 한국은 한자문화권과 구미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힘이 있는데도 그렇게 포지셔닝하지 않는다. 포지셔닝은 누가 시켜주는게 아니라 스스로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학부시절 교수들이 서양 백인 남성을 대할 때는 마치 왕을 모시듯 공손한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순한 어린 양 같아 보였다. 박사과정에서 자신을 길러준 스승에 대한 존중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기댄 학문의 뿌리를 인정해야 자신의 권위 또한 공고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60년대 남성 교수들만의 습관으로 여겼으나, 이후 서양 백인 여성 작가의 글을 번역하는 여성 지식인들의 태도도 유사한 것을 보고나서는 단순히 성별을 넘어서는 구조적 현상처럼 보였다.


현재 지위와 권력을 가진 윗 세대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당시 그들이 살아온 시절과 시대정신이 그러했다. 일본과 서구의 것이 최상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형성된 인식과 경험은 나이가 들더라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당시는 국산 제품의 품질은 미흡했고, 해외 수입품이 훨씬 퀄리티가 좋았다. 국내 대학들은 데모에 공부를 안했고, 해외 유학 가서야 공부다운 공부를 제대로 했으며, 미국 실험실과 연구실의 수준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고, 해외 이론이 우리의 것보다 더 세련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해외를 높이 평가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국산 기술과 제품의 수준이 상당히 향상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한국전쟁으로 못 사는 분단국가에서, 힙하고 잘살고 멋진 나라로 긍정적으로 변한 이후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스스로를 낮춰 보는 경향으로 전환된 듯하다.


이는 우리가 너무 빠르게 발전한 데다, 과거 세대가 아직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다는 이 이중의 난제가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적인 해결책은 사람들의 인식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건축사무소에서도 뛰어난 작품이 지속적으로 나와서 해외의 것이 더 우수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야 하지만, 문제는 실현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건축 프로젝트는 막대한 예산과 방대한 인력이 투입되는 분야다. 그래서 이미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해외 건축 회사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그게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사무소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국내 건축계에 기회를 먼저 주자니, 국제적인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외국 건축가에게 맡기자니 국내 건축가들이 성장할 기회가 사라진다. 결국, 어디로도 쉽게 나아가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이 늪 속에 점점 기회는 이미 가진 자에게 편중되고,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마태복음 효과, 즉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경험의 축적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결국, 국제-국내 건축 산업 내 양극화로 이어진다.


오히려 서울시는 프리츠커상으로 인해 헤더윅 사무소에 일감이 아주 많이 몰려있는데 다른 나라를 제치고 우리가 로비해서 잘 따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 그럼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나? 억지로 역차별하는 것이다. 억지로 국내건축사에 일감을 주는 것이다. 부족하더라도 믿고 맡기는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라는 하나의 체크리스트를 신설해서.


이 방법은 중국도 미국도 이미 해 본 일이다. 중국의 자국 기업 우선 정책(국가 자주화 전략国家自主化战略 혹으 국산화 정책国产化政策)이라든지, 미국의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이라든지.


전자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되고, 미국의 적극적 우대조치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미국의 의학과학에서 특히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과 분야에서 남성이 수리지능이 우세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또 다른 연구에서는 그것은 자연스러운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학습되었다고 비판하며, 어린 시절부터 남아에게는 장난감을, 여아에게는 인형을 쥐여 주고, 남아가 수학과학에 뛰어나면 더욱 칭찬하는 문화가 이러한 이공계 대학진학에서 성차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그러니까 기계공학과에 남성이 100명, 여성이 2명인 구조가 왜 생겼는가, 원래 남자가 수학을 잘하나 아니면 칭찬해줘서 그런가, 이런 편향적인 성비가 정상인가, 미래세대를 위해 올바른가, 에 대한 미국 교육계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여성 흑인 CEO는 자신이 개발자라고 소개하면 투자자들이 모두 박차고 나갔다고 했다. 여성과 흑인이 수학과학을 못한다는 인식이 만연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교육계는 기회 평등을 보장하고자해서, 과학계 내 여성 롤모델을 양성하기 위해 일정 부분 역차별까지 감수하며 여성/유색인종 교수 채용과 여성/유색인종 과학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학인들이 모두 온전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국의 자국산업보호정책이나 미국의 적극적 우대조치는 억지로 다른 대상을 억눌러서 불평등한 부분이 있지만, 사회적 기회균등을 위해 감수해야한다는 대승적 의지가 있었다. 


이대로는 국내 건축사무소는 모두 고사한다. 위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면 국내에서 건축은 어렵고, 자라온 땅에 대한 이해와 익숙함을 버리고 해외에, 베트남이나, 떠오르는 신흥시장 인도, 인구 급증하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에 설계하러 갈 수밖에 없다. 적게는 물갈이에서 크게는 시스템부재까지, 또 다른 엄청난 도전과 시련이다.


국내에서 프리츠커상이 배출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는 현실적으로 보자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건축가가 수상할 수는 있을지언정, 아직 국내 건축사무소 중에서는 그러한 반열에 오를 만한 곳이 없는 듯하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과도 맞닿아 있다. 제대로 된 일감을 공급받지 못한 탓이다. 한국 건축가들에게 국제적 명성을 쌓을 만한 랜드마크 프로젝트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린다. 


헤더윅은 훌륭한 건축가지만 언제쯤 우리도 그만큼 훌륭한 건축가가 나올까



----

이후 SNS에 다음과 같이 알려주신 분이 있었다. 덕분에 몰랐던 것을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다.




매스스터디 등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다.


https://www.c3ka.com/city-attempts-exhibition/

http://architecture-newspaper.com/v40-c07-kmj/

https://www.elle.co.kr/article/1866005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 천지고, 나의 글은 온전하지 않다. 더 많이 읽고 전문가들로부터 배워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박성우의 동시로 첫 읽기 세트 - 전3권 박성우의 동시로 첫 읽기
박성우 지음, 최미란 그림 / 창비교육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년 강남 교보문고 매대에서 막 번역 출판된 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나는 베르베르의 <개미>나 최근작 <행성>보다 이 단편모음집에 수록된 <상표전쟁>을 좋아한다. 정말 있을 법한 미래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는 2010년, 프랑스에서는 2008년 10월께 나온 책인데, 2025년 오늘날에 읽어도 이후의 미래를 잘 예측했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집었을 2010년에도 <상표전쟁>을 단숨에 흡입하듯이 읽었다. 책을 사게 되 것은 2019년 후 신판이 나온 다음이다.


단편 <상표전쟁>은 소위 테크 자이언트라고 일컫는 기술 거대 기업의 부상에 따른 국가의 점진적 대체를 그리고 있다.


국가보다는 기업광고송이나 사가(회사 노래)를, 국기보다는 로고를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면서 물건구매가 투표행위의 일환이 되어간다. 일련의 과정을 지나(스포일러니 책을 읽어야함) 기업들이 과거에는 주권 국가만이 수행하던 전쟁을 벌이는 미래를 그리는데 예측 중 일부(2040년께의 우주 전쟁이나 2018년의 콜라 전쟁)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관료주의에 의해 둔화된 국가를 기업이 대체하는 흐름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펜데믹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미국의 일론 머스크와 중국의 마윈의 부상. 2010년 후반에 알리바바가 항저우에 너무 큰 위치를 차지 해서 국가기관이 기업 안에 들어와서 서류발급 민원처리를 한다고 했던 어느 기사를 읽고 이 단편을 떠올렸었다. 스페이스X나 나사의 업무 일부를 대체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유럽의 이민정책과 극우정치 공론에도 영향을 미치는 2025년 기사를 보면서 다시금 이 단편을 떠올린다.


스토리에서는 규제 지연과 정치적 분열로 인해 국가들은 거대 기업의 기동성을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기업이 곧 국내경제만을 담당하던 시대를 지나 세계화시대에는 국제 무역을, SNS와 AI의 시대에는 이념적 담론까지 기업들이 주도하게 된다.




국가들이 이에 적응하여 다시금 주도권을 회복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들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내어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역사가 보여주듯 권력 구조는 정적이지 않다. 기술 기업들이 계속해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경제적 민족주의와 지정학적 충돌로 인해 국가들이 새로운 균형을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야기에서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중세처럼 변해간다는 것이다. 공급망 붕괴, 우리가 알던 세계화의 종말, 중도의 몰락과 극좌와 극우 양극화, 기후변화, 각자도생의 시대. 모두 성벽을 세우는 중세의 특징이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이 '상실의 시대' 같은 그의 이전 작품의 집대성처럼 읽는 사람도 있으나, 다가올 미래, 즉, 벽을 세워 중세도시를 만드는 시대를 예측한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다보면 시대에 대한 통찰이라는 부산물을 얻을 수 있다. 작가가 반드시 예언서를 쓰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책을 집어드는 독자도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닌데, 재밌게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생각지 않게 얻게 되는 부산물이 바로 시대에 대한 통찰이다. 왜 그것이 가능한가? 


아이디어의 전파와 현실화 과정에 글이 에너지와 질량이 낮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질량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개념이 현실에 미치는 속도와 영향력이 결정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적은 에너지가 드는 것은 음성언어 즉, 말이고, 그다음이 문자언어, 즉, 글이다. 말과 글은 한 개인이 적은 노력으로 바로 발산할 수 있기 때문에 시대의 유동성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다.


이후 말과 글에 감화를 받은 예술가들이 이를 그림, 이미지, 영화로 시각화한다. 물론 예술가들이 작가 자체일 수도 있겠다. 내 말은, 시각화는 소리화와 문자화에 비하며 훨씬 더 에너지와 노력이 들기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기술을 통해 실체화되는 것이며 이후 상용화를 거쳐 대중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다시 짚어보자. 미래를 내다보는 한 비저너리는 먼저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한다.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 구술언어로 말하는 단계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정리해 말을 글로 정리해 출판하고 독자들이 읽기 시작한다. 출판과 유통에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러나 책은 말보다는 널리 퍼지는 효과가 있다. 소리는 가청범위에만 다가갈 수 있지만 책은 지역을 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예술가들이 공감하여 그림과 이미지로 시각화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기술자들이 실제로 이를 구현하지만 초기에는 비용이 높아 쉽게 보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용화되면서 마침내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 잡는다.


예컨대 로켓, 우주 개발, SNS, AI, 배터리, 전기차 등 모든 혁신이 이 경로를 따른다. 처음에는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이 되었다. 대중은 자기 앞에 물성으로 다가와야 이를 이해한다. 말과 글인 단계에서 비웃지 않고 공감하 사람은 축복된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작가들의 글에 주목해야 한다. 작가가 기록하는 생각이 곧 있을 법한 미래의 현실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