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르네상스의 거장, 플랑드르 화가 얀반에이크(1390-1441)의 판화(1572)다.


1. 라틴어 해석해본다

내가 바로 아마인유로 색을 빚는(채색하는) 법을 처음 세상에 드러낸 그 사람이다.

형 Hubert와 함께 만든 새 기법에 브뤼허 (도시)는 경탄했고

어쩌면 고대의 (장인) 아펠레스조차 알지 못했을 기술이었다.

부유하게 번성하던 브뤼허에서 우리의 장인적 명성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우리의 명성=예술적탁월함=장인적 완성도=도덕적 미덕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2. ss의 약자로 게르만어권에서 쓰는 ß(Eszett)가 보인다

Straße=strasse=street 라틴어에 없는 글자인데 이 판화가 안트베르펜(Antwerp) 즉 저지대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긴 s는 8-9세기부터 18세기까지 쓰인 s다. 옛 필사본 읽을 때 익숙해져야하는 부분.


3. ille ego qui-docui 구조는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아이네이드에도 있는 (-coegi로)고전문형이다. docuit이 아니다. this is I who I taught


ere는 erunt대신 쓰이고, Brugae는 florentes (+abl.=opibus) 때문에 pl. 

Huberto cum fratre에서 cum은 대개 가운데 쓰고, 해석은 앞뒤로 붙일 수 있다. (형제인데, 팩트체크를 해보면 먼저 태어나서 형) 1, 2 둘 다 가능하다.

1) 나는 아마인유로 색채를 배합하는 법을 처음으로 (형 후메르토와 함께)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2) (형 후베르토와 함께) 이룬 새 발명에 브뤼허는 경탄했다.


I am he who first, with my brother Hubert, taught to blend beautiful colors from oil pressed out of linseed. Bruges, thriving with wealth, was astounded at this new discovery, perhaps even unknown to Apelles himself; soon afterward, our worth has not ceased to be spread far and wide through the whole world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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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윅3과 존윅4 사이 타임라인에 발레리나가 스핀오프로 끼어져있다.


사진1. 벨라루스계 킬러양성 조직 루스카 로마의 위장 양성소인 타르코프스키 극장 전경 모습. 상영작품이 차이가 있다. 존윅3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제목을 딴 두 늑대 이야기였는데, 발레리나에선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안드레이 류블로프다.



사진2. 류승완 감독과 협업하는 유명 무술감독이자 서울액션스쿨 회장 정두홍이 발레리나에서 대사도 두 라인 있고 초반에 비중있게 등장한다. 007의 그녀(팔로마)의 아나 데 아르메스와 액션합을 꽤 주고 받고 투샷으로 나온다. 짝패 이후 얼굴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진3. 존윅3에서 발레리나로 원활하게 이어지는 쇼트를 잘 찍었다. 바바야가가 방문했을 때 이브 마카로가 그와 조우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먼저 나온 존윅3의 장면과 연결지점이 있어야했다.

1) 극장 안 원형극장에서 디렉터와 만남


2) 계단 장면

-마지막 사진만 발레리나


3) 발레리나 연습

4) 티켓 제공 후 낙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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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드는 커다란 귀 - 나의 경청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사회성 그림책
허은미 지음, 소복이 그림 / 다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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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윅4 영화에서 회화의 사용

같은 들라크루아의 작품인데 윈스턴 배경으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보인다. 최고회의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시각화하고 후작 배경으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 보인다. 권력에 취해서 타인을 도구처럼 소모하다 죽는 결말을 예고한다. 윈스턴은 존윅을 협력자로 등용해 듀얼규칙을 재해석하고 체제를 무너뜨리자 제안한다. 호텔리어로서 직접 총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상징으로서 반란의 불씨를 차용한다. 사르다나팔루스를 닮은 통제욕이 어마어마한 후작은 케인의 눈을 뽑고 이용해 질서를 유지한다. 규칙을 절대화했던 자기 발언의 족쇄에 묶여 자승자박으로 몰락한다 오만한 자가 전부 가지려다 모두 잃는 결말을 시각장치로서 적절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Delacroix, Eugène 1) The Death of Sardanapalus. 1827. 2) 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Oil on canvas. Musée du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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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Paperback, Reprint)
Vintage Books / 198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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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가에 꽃혀있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가 눈에 띄여 오래만에 다시 읽었다. 켄트대 철학과를 나온 일본계 영국인이 쓴 현대영소설이다. 초판은 1986년에 나왔는데 나는 대략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과 함께 서가에 꽃혀있는 책을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2013년에 한 번 더 읽고 remains of the day같은 그의 다른 책을 비로소 읽었다. 그리고 지금 읽었으니 13-14년꼴로 한 번씩 읽은 셈이다. 책은 변함이 없고 바뀐 것은 나 자신의 상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분위기가 오묘하고 처연하고 무언가를 그리워하다고 느꼈다. 첫 문단이 배배 꼬여있어서 풀어서 이해하는 것이 약간 어려웠다. 이때는 일본어를 못했다. 재독했을 때는 N3정도는 하는 수준이었기에 스기무라, 오노상, 켄지, 카와카미하는 한자명이 시각적으로 출력되고 혼쵸니 센세니 하는 일반명사도 마음 속에서 일본어로 그려볼 수 있었다. 책 자체에 대한 전반적 인상이 바뀐 것은 아닌데 That S V seem C 도치문과 일부 대화문이 일본어의 사고구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저자의 일본계 백그라운드 때문인지, 혹은 내가 일말의 일본어를 해서인지 분간하지 못했고 다른 책 몇 권(다는 아니다)을 집어들고 철학적이고 사변적이고 관찰자적 느낌이 일관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말번역본은 아직 읽지 못했다. 삼독한 지금은 일본원서를 대단하지는 않으나 어느정도 읽어 둔 상태라 일어원문의 감각과 정서를 이해하는 편인데 책에서 교포의 뿌리없음에 따른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선조의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새로운 문화적 토양에서 뿌리내린 이민2세가 조부세대를 상상한다. 유학생이 SNS를 보며 유년시절 친구들과 함께 자랐으면 어땠을까 하며 있었을 법한 미래를 그려보는 듯도 하다. 이는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 디아스포라만이 제공할 수 있는 유리된 감각이다. 파친코,코고나다감독,작은야수의땅도 동일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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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은 2013년이 아니라 2017년이다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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