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이 만든 작업물은 유리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쓰는데

작품과 나는 별개의 존재다

작품에 대한 찬사가 자신에 대한 칭찬은 아니고

작품내용이 자서전도 아니며

주인공이나 대상이 반드시 만든 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정교분리를 해야하듯

제작자도 작품-자아 분리를 해야한다


감상자 역시 작품에 감정이입하면 곤란하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배우 자신을 동일시하게 될 우려가 있다

선역이면 그나마 낫지만 악역일 경우엔

시골에서 할마씨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게 될 공산이 있다

"너 그렇게 사는거 아냐!"


깃발이 펄럭인다

펄럭이는 사건은 펄럭이고난 다음 어디로 간 걸까?

펄럭이는 순간은 깃발의 것인가?

배우는 얼굴근육 운용전문가이자 감정의 테크니션으로서

연기를 펼친다

연기를 펼친 순간은 그 다음 어디로 간걸까?

카메라로 녹화하지 않으면 근육의 움직임, 미묘한 표정변화는 사라진다

그 연기의 순간은 배우의 것인가?

배우가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연기와 배우가 유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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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갤러리에 다녀왔다


1층은 그림자를 제4의 요소로 포함시켜 흑목회화를 만든 네벨슨의 전시이고 2층은 나이젤 쿡의 바닷물을 재료로 만든 바다심상 추상회화다.


나이젤 쿡의 화풍 변천사를 알아야 이번 전시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쿡은 초기에 티치아노와 터너와 같은 유럽 고전회화의 거장의 흔적을 더듬었다.

화면 안에 조형을 명징하게 새겨넣은 풍경화와 윤곽이 선명한 모노크롬을 그리다가 중기에 예술가는 문화적 캐리커쳐라는 자각을 한 후 일러스트 그래픽요소가 두드러지는 소방관 캐릭터를 알터이고, 제2의 자아로 삼아 포스트-아포칼립스풍의 그림을 그렸다.


문득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제는 휘몰아치는 색채의 소용돌이가 물비늘처럼 번져나가는 회화를 그린다

굵기와 방향과 세기가 저마다 다른 스트로크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물살처럼 출렁이다가 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겹겹이 쌓인 색선은 바람결에 이는 갈대밭처럼 살랑살랑 떨리고 작업은 외형을 뚜렷이 잡기보다는 아스라이 스미며 구체와 추상, 사물과 기억, 자연과 인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른다. 구상, 반구상, 추상의 궤적을 천천히 걸어온 쿡은 비정형경험과 내면풍경을 전달하기 위해 터치 자체에 집중했다. 거센 돌풍과 잔잔한 윤슬을 동시에 구현하는 쿡의 붓끝은 형상의 재현, 인식의 감각, 시간의 흐름을 통째로 끌어안는다.


그림에선 영국 켄트 앞바다 군청색 해일와 같이 거친 스트로크도, 어느새 잠잠해진 은빛 아침바다 잔물결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붓질의 흐름도 보인다. 색감은 쨍한 대비도 물안개처럼 퍼지는 차가운 음영도 보이며 어렴풋한 숨비소리와 같은 선도 한들한들 잔물결을 따라 번지는 흔적도 보인다. 낙하하는 하얀 갈매기가 솔바람을 따라 찰랑이는 파문의 궤적을 닮은 선도 보인다. 관찰하는 쿡의 손길은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나는 시간을 닮았다.


구체적인 형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터지는 외침보다 조용한 숨결이 대신 자리한다. 빛과 물, 바람의 기운이 스며들어 몸과 마음, 자연과 시간의 자국을 낡은 경첩처럼 보여준다. 어쩐지 마치 오래전 동굴 벽에 남은 손자국처럼.


작업은 고요하되 쌔근쌔근 숨쉬며 고동한다.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의 어느 알 수 없는 가느다란 틈새를 타고 우리는 쿡이 초청하는 영국바다 어느 깊은 내해로 인도된다. 손에 닿지 않는 감각을 붙들어 전달하려는 그의 붓질 자취는 바람숨을 잡으려는 일처럼 덧없지만, 덧없기에 아득하고도 눈부시다.


전해지는 마음이 눈부셔 찬란하기까지한 쿡의 그림은 환풍기 소리만 가만가만 울리는 페이스 갤러리, 신성한 성당의 침묵의 아우라를 풍기는 전시장 한켠 늘 그 자리에서 잔물결치며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사라졌다 생기는 유동적인 세계에 대한 원초적 감각을 가만가만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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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포콩은 사진 도록의 말미에서 이와 같은 에필로그를 적었다


나의 연출 사진과의 이야기는 끝났다. 나의 20년간의 되찾은 낙원(Mon histoire avec la mise en scène photographique est terminée : mes vingt ans de Paradis retrouvé)


사진이라는 두 번째 낙원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낙원 이후에 잃어버렸던 그 세계를 이 최고의 순간들로 엮어보려 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된 글들로만 한정했다 (사실 다른 언어, 특히 일본어로 된 글도 많이 존재한다). 단지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모국어와는 숙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이렇게 자문했다. 세상은 그것을 처음 이름 붙인 언어 밖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행복”, “좋은 하루”, “휴가”를 말하기 위한 다른 소리들, 다른 음악들이 존재할까? (d’autres sons, d’autres mus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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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중림동 약현성당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가톨릭의 중후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적벽돌 건축으로 완성된다. 


새문안교회 순복음교회 소망교회 같은 개신교 건물에는 발랄한 락밴드와 가운입은 합창단이 묘하게 습합되어 있어 젊고 현대적 분위기를 풍긴다면 가톨릭 성당은 나이듦과 죽음과 노화와 부질없음을 사유하기에 알맞은 깊고 짙은 심층수와 같은 공간이다. 


G플랫으로 떨어지며 성스럽고 숭고한 고양감을 주는 그레고리안 찬송을 배경으로 박물관 내부는 편안하고 평화롭다. 색면추상의 레이어가 한꺼풀씩 쌓여 적층수와 같이 고즈넉한 맛을 준다. 물론 그러한 평화는 교회법의 엄수와 엄격한 위계에서 비롯되는 질서이기도 하다. 마치 성가의 완벽한 화음이 수학적 비례에 기반하는 것처럼.


천주교는 보수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프로테스탄트처럼 어의 그대로 항의하는 자였던 시절이 있다. 19세기 박해시절 핍박에 항거했던 혁명적인 나날이다. 그 모진 고문 속에 숨을 거두어간 핏빛 순교자가 묻힌 곳이 이 서소문이다. 하여 이 공간은 태생적으로 어두운 공간일 수밖에 없으나 미국호러처럼 선혈이 낭자하는 위협적인 공포가 아니라 주님의품에서 모든 것을 안아주는 거대한 심연 같은 흑암이다. 무덤 속의 적막과 같은 것이다. 


중세교회가 묘지를 품고 지하에 유골을 안치하게된 역사적 맥락에는 중세인들의 악령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원인모를 병과 끝없는 전쟁으로 죽어간 영혼들의 소름끼치는 절규가 밤마다 들린다고 호소하는 중세인들은 성직자들이 그 영혼을 교회 아래서 구제하고 벽사해줄 것이라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개신교 교회는 무덤이 빌트인 되어있지 않고 천주교 성당만 무덤과 함께 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 구원자를 믿는 종교지만 가톨릭 건물에서만 죽음에 사후세계에대한 선연한 위안이 느껴지며 생로병사를 고민하는 50대 이상 어머니들의 존재가 많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개신교는 되려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 유교의 철저한 현세관과 기복신앙적 요소가 더 많이 보인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김대건 성인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애프터 라이프를 생각해보기 좋다. 쿠오 바디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많던 성인들은 신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처마처럼 콘크리트 외벽 선이 떨어지며 지하로 하강하는 듯한 걸음을 유도하는 1층 입구를 지나 박물관 시설은 지하1,2,3층에 있다. 무덤과 같은 높이다. 우연이 아니다.



오늘 온 이유가 있다. 건축 공간 디자인 학회를 하고 있어서다. 학회의 주제를 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흐름을 읽기 좋다. 아무래도 젊은 학생들과 호흡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학자들이가에 시대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올해 춘계 한국공간디자인학회에서는 브랜드디자인, 노후공간, 공유스페이스가 눈에 띈다. 상업주의, 고령화, 청년실업과 같은 시대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 특이한 것은 크루즈 디자인인데 건축공간을 정주공간뿐 아니라 노마드공간까지 포함하여 외연을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인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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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4-2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 추사관 내부와 비슷하군요. 창이 아래에 배치되어 있어 빛이 아래에서 들어오게 되어 있던게 기억나서요.

글을매일씁니다 2025-04-27 18:46   좋아요 0 | URL
제주 추사관도 참 좋았어요 승효상 건축가가 건축했었던가 그랬죠
멋진 조상님들, 6년 전인가 갔는데 거기서 윤두서 자화상을 봤던 것 같아요 (완전 정확하지 않은데 제주에서 본 것은 확실)
 


얼마 전 공간루트에 다녀왔다


6호선 끝동 순환고리 연신내역에 있는 곳이다. 간 김에 사비나미술관을 방문해도 좋고 조금 더 멀리는 은평한옥마을 삼각산 금암미술관과 동선연계성이 나쁘지 않다


10여년 운영한 합정지구도 사라지고 혜화역 아르코에서는 인미공 폐관전을 하고 있다. 막 태동하고 있는 영아티스트들이 접근가능한 독립전시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솔루션은 재벌그룹이나 투자회사의 지원을 받거나 국공립기관의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이지만 그마저도 지원자의 학력 경력 인플레로 인해 쉽지 않다. 탈출구는 정녕 지방공방이나 까페란 말인가. 롤모델과 트렌드를 모방하면서 이런 스타일 저런 스타일해보고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을 잘하며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남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볼 놀이터가 필요하다. 물론 같은 면적의 공간에 프랜차이즈나 디저트가게를 입점시키면 더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것을 아는 전시운영자 입장에서 상승하는 임대료를 방어하는 나날 속 고민은 한결 깊어진다


공간루트에서는 메테즈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무수히 포개진 붓의 결과 올올이 살아 있는 색의 숨결이 정적인 풍경 위에 한 폭의 숨쉬는 윤슬을 빚는다. 파도의 선형을 따라 손끝에서 뻗어나간 물질은 단지 평면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너울너울 이는 곁의 겹으로 살아나 온새미로 만져질 듯 솟구친다. 마티에르감을 부여하며 층층이 쌓인 붉고 푸른 빛깔은 바다 속 감춰진 세계처럼 깊고 짙고 무거워 정적이 아닌 고동치는 맥박으로 관람자의 감각을 두드린다. 거듭 칠해진 흔적 틈새로 포말이 사부작사부작 부서지고 다시 일어 눈앞의 장면이 마치 해조에 감긴 기억처럼 선연하고 낯설다


회화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부유하는 마음의 결을 그리는 것. 사실의 재현이 아닌 심상의 전달이다. 바람결처럼 미묘하게 흔들리는 선과 덩어리는 생명의 울림으로 되살아나 낯익은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꿈결처럼 흔들리며 내려앉은 심해의 고요 속에는 천천히 잠겨드는 듯한 감각의 겹이 숨어 있다.


물질의 회화적 전개는 비단 표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외려 물성의 내부로 파고드는 감각적 층위의 외적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빌둥스로만형, 자기 세계를 빚고 있는 구축적 회화는 지각적 환영과 촉각적 실재 사이에서 경계를 허물어 회화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완성된 무기물의 페인팅 위로 색채와 질감의 밀도가 마치 미생물마냥 유기적 존재처럼 호흡하여 시간의 침윤과 감정의 퇴적을 동시에 드러낸다. 낯익으나 아스라이 생경한 ㄱ달빛노을 속에서 관람자는 어느덧 물감의 심해로 잠겨든다


니콜라 드 스탈이나 장 포트리에 같은 작가들이 구현했던 마티에르의 회화적 육화와도 궤를 같이한다. 질료는 단순한 물감의 잔존물이 아니며 감각과 사유가 만나 생성된 심상의 표면이리니. 질 들뢰즈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회화는 감각의 절단면을 도려내어 시간의 지층을 드러내는 행위인 셈이다. 이 회화는 그러한 감각의 층위를 촘촘히 쌓아 올린 시간의 퇴적물이다. 이러한물감의 부피를 강조하는 회화는 단지 시각을 넘어서 촉감과 내면의 심상까지 이끌어내므로 회화가 공간을 운용하는 접근방식에 관해 전면적인 재사유가 필요하다.


파도의 벡터방향을 따라 스트로크를 움직이되 결코 동일한 느낌으로 몰아치지 않는 붓의 쓸림으로 층층이 초롱초롱한 빛의 덩어리들를 매만졌다. 마치 물마루가 출렁이듯 일렁이는 가운데 너울너울 이는 붓의 흐름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으니.. 평면은 더 이상 평평하지 않다. 새록새록 만져지는 듯 촉감어린 질량감은 빛과 어둠, 깊이와 얕음을 품고 생명처럼 숨 쉰다. 한 점의 붓질이 바람결처럼, 혹은 파문처럼 퍼져 나가노니, 지각이전의 침잠이며 형태는 드러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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