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영인문학관 에디터로서 이어령전에 댕겨왔다


모름지기 전시를 가는 자는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한다. 한국근현대미술 아카이빙의 투 탑은 최열과 김달진이다. 얼마 전 갔던 국현미 청주 수채화전에도 두 분으로부터 빌려온 물감소품과 자료가 있었다. 개중 김달진미술자료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가 매월 바뀌는 전시정보를 얻기 좋다.


부산투어계획 포스팅에서 부산에 이렇게 전시가 많았냐고 하던데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 한 사람이 매일 3개씩 가도 가 못 갈 만큼 전시가 많다. 마치 교보MD도 담당파트 신간을 다 못 보고 영화업계 사람도 박스오피스는 물론 영화제 영화까지 다 못 보 듯 말이다.


그러니 하나의 소스로만 얻는 정보는 완벽하지 않다. 아트가이드도 갤러리에서 얼마 광고비 지불하는 리스트만 갱신된다. 보완용 정보통은 SNS이고, 신생 갤러리와 개폐하는 전시를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조선일보 한국일보에서 정말 모를 법한 전시를 알게되는데 대표적으로 3월에 했던 선화랑의 프랑스 그룹의 AI전시가 있었다. 다른 동선으로 가는 도중 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읽고 마침 근처라 바로 방향을 틀었었다


그리고 영인문학관의 이어령전시는 4월 조선일보에서 소개되어 알았다. 봄날의 따사로운 볕이 뉘엿뉘엿 벽에 빛 커튼을 드리워 참으로 아름다운 평창의 어느 오후에 방문했다


서울대 규장각의 김윤식전의 김윤식 서재도 인상깊었고 영인문학관의 이어령 서재도 마음에 감동이 있었다. 노동의 산실. 그 유명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쓴 좌식책상도, 훗날 몇 십권을 저술한 입석 테이블도 문학사상의 초기 표지화를 보면 당대 예술인들이 최신 사상과 서양화를 충분히 습득하고 소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일러스트레이터 브랜드마케터의 UX디자인과 커버이미지도 힙한 이유는 미국과 글로벌문화의 정수를 잘 습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사상은 과거의 유투브, 지식 플랫폼이다. 이 잡지로 대동단결했고 하나를 읽으며 여럿을 읽는 효과를 주었다

이문열과의 논쟁, 서울대 국문과 졸업, 박사취득, 초유명 베스트셀러 집필로 세계(특히 일본)에서 네임밸류획득으로만 멈췄다면 이어령은 잠깐 떳다 지는 샛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아이돌과 셀레브리티가 자기 팔자에 의해 반짝 빛났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듯이.


하지만 문학사상을 편집함으로써 다른 문인들을 대우하고 신인을 발굴하는 도우미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에 롱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의 롤모델이 되려면 남을 올바른 방식으로 대접해야하는 것이다. 이상문학상은 문학인의 꿈이되고 매년 지속하면서 권위가 중첩되어 몇 년만 지나도 대체불가능한 시금석이 된다. 최고는 바뀌어도 최초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된 까닭은 다른 예술가를 보필하는 역할을 잘 해왔기 때문이 아닐런지. 편집자로서 일을 하면서 얻은 인맥, 트렌드 읽는 눈, 해외커넥션 같은 부수적인 역량이 도움을 주었으리라. 마치 유재석 같은 중매인의 역할이다. 유퀴즈는 오늘날의 문학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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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다녀왔다.


오늘 안국과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사람 많다고 대기줄 100명씩이라고 연휴 마지막 날이라 아이들 너무 많다고 난리도 아닌데 나는 시간선이 다른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휴에 사람 붐붐 붐비는 곳은 다 피해 한적하게 다녔다. 감사한 일이다. 수채화전의 전시구성은 선명하다.

2천원내고 엘베타고 5층으로 올라가 QR코드 찍고 입장해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거대한 수채벽화를 보면서 석고벽의 질감과 공간감을 느껴보며 물과 물성을 운용하는 수채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과 같은 초유명화가와 1세대 수채화 거장 손일봉의 작품을 감상하며 음 아는 사람이군 이게 수채화지 하는 워밍업 색의 발현구간을 지나 실험적 추상구간에서 박서보 김기린 정영렬 등 현대작가의 대형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한지와 종이의 질감을 음미한 후 이인성 김수명 서진달 이경희의 해상도 높아지고 오브제도 많아진 중형 구상화를 감상해본다

이어 별도로 분리된 회색 공간에 진입해 한국수채화연표 코너의 근대신문부터 일제시기까지 다양한 아카이브를 읽는다. 비싼 유화대신 수채화를 많이 해야만했던 현실적인 조건을 이해해본다. 



한국수채화는 언제부터 도입되었을까?


1884년 국내 첫 근대 신문 황성신문에 영국 수정궁에서 열린 수화가 첫 언급이라고 한다

학창시절 근현대사 공부할 때는 온갖 개화기 신문이름을 외우고 사지선다에서 맞는 매칭을 고르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제 사료가 어땠는지는 대학가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정답만 중요하다고


사진에서처럼 이렇게 실제 한성순보를 보니 왜 관료들, 즉 지식인 남성의 신문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문을 모르면 읽을 수가 없다. 한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과 표현도 한문투다. 소건은 지은 바, 이철위량주는 철로서 기둥을 삼고 등등. 관객 아무도 안 읽을 거라 생각했는지 미술관에서 해석이 원문 어디에 있는지 표시 안해놔서 읽다가 찍어서 하이라이트쳐놨다.


사진의 매일신보 기사는 한자에 한글 조사가 섞여있고 이제 읽을 법해진다. 문맹률 퇴치가 시급했던 조선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한 개화파가 국한문혼용을 차선책으로 제안한 이유다


사진의 일본어에서는 지금 안 쓰는 히라가나가 보인다. 구슬같은 땀, 珠の汗같은 고어투 문학적인 표현도 종이 찢어지는 소리를 시각화한 것도 재밌다. 현대한국인도 이인직의 혈의 누를 읽으려면 전문교육을 받아야하고 현대미국인도 워싱턴과 벤자민의 글은 옛스런 표현에 익숙해져야하듯 현대일본인도 20세기 초의 문체는 다시 배워야한다


사진은 조선인에게 수화를 가르친 일본인 서양화가 이시이 하쿠테이다. 일본인은 일본음독으로 읽고 한자로 쓰고 한국인은 한자를 보고 한국음독으로 셕뎡백뎡씨라고 읽었다.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방법이다


이제 한국은 해외에서 발음나는대로 읽어준다. 친절하다. 일본은 상호주의라 받은대로 해준다. 일본이름을 읽어주면 자기도 따라 읽어주고 상대국이 자기식대로 읽으면 일본식대로 읽는다. 예컨대 우리는 시진핑. 일본은 슈킨페라고 읽는다. 습근평이라고 안한다. 중국은 모음이 적고 중국어로 모드전환을 해야해서 모든 걸 중국어로 읽기 때문에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석파무 쉬푸어마오, 마츠다 세이코를 송티엔쎵즈라고 한다




그렇게 전시장의 끝을 찍고 또 다른 벽화 문을 통과해 80년 이후 풍경화 부산항 전라도땅 그리고 누드와 초현실화풍 등을 보며 종이와 물감의 잘전에 따라 더 다양한 색감의 표현이 세밀하게 가능해졌음을 확인한다

유화와 대비되는 수채화만의 특성을 정교하게 분석해보기에 적절한 양(97점)의 전시다. 부담스럽지 않고 핵심만 포함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채화는 말 그대로 물과 종이의 운용이 관건이다. 물이 마르기 전 표면에 바른다는 단순한 행위에서 모든 미학적 특징을 도출해낼 수 있다


수채화는 한 번 번지거나 흡수된 물감을 되돌리기 어려워서 작가는 한 획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표면에 실수나 망설임마저 고스란히 남는다. 또한 유화처럼 색을 덧입히며 마티에르를 쌓기보다는 투명한 색들이 종이 위에서 겹쳐지고 번지며 섬세한 빛의 여운을 남긴다. 유화처럼 색을 올린다기보다는 색이 스며든다는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는 환경의 물의 증발 속도에 따라 예기치 않은 번짐과 마르며 생기는 얼룩과 경계선이 물의 시간을 새긴다


나아가 수채화는 캔버스 자체보다는 종이의 물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표면의 섬유결, 질감, 흡수력 등이 그림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 종이는 단순한 지지체가 아니라 이미지의 일부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가역성, 종이의 물성노출은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 안에 일종의 자연성과 우연성이 녹아 있다


또 생각나는 것은 유화보다 수채화가 수묵화에 익숙한 우리네 조상에게 정서적으로 더 와닿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생략과 암시를 시사하는 여백의 미, 일필휘지의 즉흥성, 그러한 속도감을 내기위한 오랜 숙련, 빛 중심의 조형성과 원근법이 결여된 평면성과 으스러짐과 울림마저 드러나는 종이와의 일체감. 수채화는 서양버전의 수묵화다


고로 마른 숨결 위에 물감이 스며들며 남긴 자취로서 수채화에서 물은, 색을 날카롭게 베기도 하고 서서히 번지며 감정을 퍼뜨리기도 한다. 물이 종이를 적시고 빠르지만 서서히 증발하는 짧은 찰나에 한 순간의 결심과 흔들림을 기록하고 종이는


그 모든 체험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손끝의 떨림, 붓의 멈칫, 물기의 여운까지 말이다. 그리하여 수채화는 남김의 예술이자 지우지 않음의 미학이다.


수채화는 본디 습작으로 생각되었고 유화 물감을 구비할 형편이 안되지만 예술은 하고 싶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훗날 국가와 경제의 성장, 매체와 기법의 진화에 따라 수채화의 완성도와 짜임새가 나아졌다.


이를 이해한다면 네이버 라인은 십년 전 아직 통신인프라가 구비되지 않은 베트남에 최신식 기술이 아닌 다운그레이드된 저용량 메신저로 진출했어야한다는 인사이트도 이해할 수 있게된다. 인도와 같은 신흥시장에 어포더블한 저가형 모델이 먼저 들어가야한다는 점도, 소니 워크맨의 선풍적 인기도.


모든 사람이 항상 고가의 최신식 장비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수요가 생기면 중저가 시장에 맞는 모델도 필요하다. 갖고는 싶고 하고는 싶은데 너무 비싸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적당한 것. 오히려 마진률은 좋아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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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어를 배운 적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생긴 것은 가톨릭 주보에 가톨릭대 교수님이 네덜란드인의 산스크리트어 통사론을 번역해서 냈다는 소식을 봤을 때였다. 신학대 졸업후 동국대에서 박사를 받은 분이었다. 신학대에도 동양사상파트가 있는 것을 알았다

이후 Goldman의 devavanipravesika로 혼자서 공부도 해보고 경북대동서사상연구소 류현정선생 유투브강의도 듣고 서울대 강성용교수 교재도 보는 등 몇 년간 틈틈히 꽤 노력했다. 그러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preply라는 글로벌 과외플랫폼에서 시간당 얼마 내고 현지 구루에게 매일 1시간씩 낭송훈련도 5개월간 받았다

산스크리트어는 과학적인 언어고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친연성이 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운 유럽인이 인도에 가서 산스크리트어를 발견하고 그리스-산스크리트어의 문법적, 어원적 유사성을 토대로 초기 인도-유럽어라는 언어학적 개념을 발명했다

인도에는 수준높은 지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도는! 여행가지 않을 거다


너무! 더럽다.


영어나 일본어도 된 산스크리트어책은 꽤 구매했다.

산스크리트어에는 일본인이 절대 낼 수 없는 사운드들이 있다. 아래 책은 일본인이 알기 쉽게 제대로 된 음성학에 근거해서 산스크리트어 글자와 음성을 배울 수 있는 입문교재다.


이 책 서문에, 이과를 졸업하고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다가 산스크리트어에 매료되어 인도에 거주하며 산스크리트어 학습, 교육, 보급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처음 산스크리트어를 배웠을 때 전생부터 이어지는 인연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애는 산스크리트어에 매진하겠다고 써있다. (캡쳐서문이 아니라 실제 책에)

나도 산스크리트어는 좋아한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배울 수 없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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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에 다녀왔다


지축역에서 가는 직행 마을버스가 있으나 70-120분 간격이다. 버스타고 고양동까지 가서 택시를 불렀다. 공교롭게 어제 방문했던 중남미 문화원 부근을 또 왔다. 안녕?


연휴기간 그제 어제 오늘 여러 곳이 막혔다는데 나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어쩐지 다 피해간 느낌이다. 드라이브할 때도 양평 부근 정체구간 다 피해갔고, GTX와 지하철탈 때도 한적했으며 가는 전시장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쾌적하게 관람했다.


가나아트파크를 지나 장흥관광구역을 진입하는데 택시기사가 여 앞에 청련사 되게 커요, 라고 해서, 그래요? 바로 세워주세요 하고 내려서 올라갔다. 왕십리에서 이전했다는 경기도유형문화유산 불상도 보고 산신각도 가고 대웅전도 갔다. 오늘은 초파일이자 어린이날이다. 청련사에 어린이도 있고 부처님도 보였다. 법회에 앉아있는 어린이의 얼굴은 물론 밝지 않았지만.


아, 오늘은 108배 안하고 금방 가야해요 죄송해요 되뇌이고 대웅전에서 삼배만 하고 길을 나섰다. 



바로 앞에 양주시립 민복진미술관과 장욱진미술관이 같이 있다. 장욱진미술관은 장흥조각공원을 입장해서 둘레길을 산책하다가 입장하는 코스로 꾸며져있다. 장욱진은 유영국,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과 어깨를 견주는 2세대 서양화가다. 그의 작품세계는 회화에 국한되지 않고 조각도 있다. 수묵의 영향을 받은 듯한 간소한 구성과 원근법이 느껴지지 않는 오브제의 레이어가 특징이다. 초가집 안에 들어있는 수염난 웃긴 아저씨가 그의 페르소나인가 싶다. 전체적으로 발랄하고 귀여운 맛이 있다. 이 스타일과 가장 비근한 작가는 이왈종이다. 제주 남쪽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지금 리모델링 휴관중) 근처에 왈종미술관이 있고, 서쪽 빛의 벙커에 샤갈과 함께 왈종도 이머시브전시를 하고 있다. 장욱진은 1917년생, 이왈종은 1945년생이다.


민복진은 미술관이 위치한 양주와 관련이 있다. 1927년 양주출생이다. 1층은 50-60년대 인체조각전을 하고 있고, 25년 상반기 5개월 내내 진행된다. 이어서 25년 하반기 5개월 동안은 70-80년대 인체조각전을 한다.

위의 사진은 콜라주같지만 구도 하나에 담은 사진이다


요정은 꽃, 인어는 물갈퀴로 표현



교외지역 미술관은 너무 자주 올 수 없다. 고속도로에 있는 가든과 같다. 집 앞의 밥집이나 프랜차이즈나 배달음식과 다른 전략을 요한다. 늘 비슷한 메뉴여야한다. 땅값이 싼 곳에 큰 건물을 지어놓고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어야한다. 오래 영업하고 있으면 왔다갔다 사람들이 눈여겨보고 있다가 한두 번씩 들른다. 가든도 매일 가는 사람이 없듯 교외지역 미술관도 도심지역 갤러리처럼 매일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메뉴를 여러 번 바꿀 필요는 없다.  기억나는 그 맛을 제공하는 게 더 좋다. 매일 가는 곳은 쉬이 질리기에 프로모션으로 신메뉴를 내줘야한다. 영업자입장에서는 번거로울 수 있고 시판소스의 생산과 트렌드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한다. 안그러면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 S/S에 한 번, A/W에 한 번 이렇게 방문하면 좋도록 전시를 진행하는 것은 현명하다. 3개월에 한 번 교체도 소화하기 쉽지 않을거다. 서울 외곽지역 미술관 모두에 공통되는 사항이다. 



인체조각이라하니 사람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작품도 있고 추상화한 작품도 있다. 어떻게 재료의 물성을 살리면서 정밀하게 표현했는지, 어떻게 눈 코 입 인체의 각 부분을 생략하면서도 그 본질을 드러내려했는지 가늠해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민복진의 연(68년)은 대리석으로 사람의 얼굴을 표현했는데 좌이는 두툼한 직사각형, 우이는 원이 뚫린 사각형이다. 구멍이 뚫어 눈을, 대리석 끄트머리로 앞머리를, 삼각형 홈을 파서 입과 턱을 함께 나타냈다. 


그리스도교 성인조각은 하늘하늘 흘러내리는 치마의 부드러운 주름을 어떻게 단단한 석재로, 즉 강성으로 연성을 나타냈는지가 핵심이다. 




토르소나 여성조각은 여성 특유의 곡선을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관건. 곡선의 각도와 흐름에 초점이 있다. 어렸을 때는 야한조각이고 조각가는 변태인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게 아니다



2층은 개방형 수장고로 민복진의 미완성 작품을 소마킴과 문선우의 3채널 미디어아트와 함께 볼 수 있다. 하나의 덩어리로 붙어있는 어머니와 자식을 표현한 일련의 조각들이다. 잘라낸 석재에 그은 선들을 보면 건축가마냥 정교하게 설계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적분까지는 아니어도 공간도형의 아이디어는 많다. 수학의 쓸모가 이렇다. 입시수학이 아닌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언어로서 수학은 평생 재밌게 배울 수 있다




어머니의 품에서 자식이 나오니 같은 물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고, 어머니와 자식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으며 서로 바라보고 있으니 얼굴이 맞대고 있는 것이 적절하다. 부드럽게 다듬은 표면과 부드러운 시선교환, 유연하고 따땃한 모친의 마음이 연결된다. 물성과 의도와 구현방법 모두 적절하다


1층 체험공간에는 조각에 사용되는 흙을 실제로 만져볼 수 있게 했다. 재미난 경험이었다. 조각작품은 한 걸음 떨어져 눈으로 보기만 했지 빚는 자의 마음으로 만져보 것은 처음이다. 론 뮤익전 지하 영상에서 작가가 소년소녀작품의 얼굴을 여러 번 고치며 살점을 매만지던 장면이 인상깊었다. 마치 루시안 프로이드의 그림처럼 피부 살점의 물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조각용 흙을 나의 손으로 생생히 만져보니 더욱 더 조각이 내 삶의 한켠에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보들보들하고 푸석푸석하고 공기층이 있고 누르면 단단해지고 풀면 헤어지는 흙의 입자감을 느끼면서 형태를 조밀하게 느껴보았다. 베이커리 반죽과 비슷한 감각이다.


왜 조각가가 시인과 같은지 깨달았다. 대체로 조각가는 말 없이 침묵으로 소통한다. 작품에 대해서도 화려한 평론의 언어나 세련된 학술용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이유는 조각이라는 행위 자체에 내재해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는 구현한 결과외에 말할 것이 없다. 조각에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조각 위에 몇 문장 이상을 새길 수도, 복잡하게 형태를 만들 수도 없다. 붓을 여러 번 터치하며 그리는 화가가 펜을 여러 번 움직여 글을 쓸 수 있는 것과 다른 맥락이다.


하여 나도 사랑의 케이크를 빚어보았다.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할 말은 없다. 사랑의 마음, 그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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