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예술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작품으로, 책으로, 유튜브로, 작가로, 도슨트로, 큐레이터로, 예술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몇백억에 작품이 팔리고, 몇백만 부가 팔린 책의 인세만 10억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조회수 몇백만이 넘는 유튜브 영상이라면, 조회수당 2원이라 가정했을 때 천만 원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의 이야기다.


현실은 다르다. 캔버스 3호F 한 장을 10만 원에도 못 팔아 재료비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은 100부도 팔기 어렵고, 인세로 70만 원을 받았다고 하면 700부를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원고를 도매가 100만 원에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한편,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가 넘치는 네프콘 플랫폼에서는 주식, 부동산, 돈 버는 노하우 채널이 구독료 몇 십만원에도 팔리고 AI자동화를 사용해서 번역한 UX, 수익화에 대한 번역 전자책들이 다운로드 수만 건을 기록해 통장에 매달 몇 백만원씩 꽃힌다.


돈을 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상치 못한 것이 돈이 되고,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학도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좋은 기술을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서 사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과 마케팅이 없으면 팔리지 않는다. 문과생들이 하는 실수도 비슷하다. 좋은 지식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 믿지만, 이미 알려진 것이거나 너무 어렵다면 외면받는다.


한편 사람들은 지식과 예술에 돈을 쓰는 것을 인색해한다. 적은 돈으로도 누릴 수 있고, 무료로도 최상급의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신문 한 달 구독료는 2만 원이지만, 매일 세상의 새로운 정보를 큐레이션해 제공한다. 인터넷에서 열람하면 무료다. 국립미술관과 박물관은 무료이거나 몇천 원이면 관람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2만 원대의 티켓은 부담스럽지만, 제작에 수만 시간의 훈련과 수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작품을 그 가격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헐값이다.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소장품 사진을 고화질 무료로 공유한다. 옛날이면 전문가를 어렵게 찾아가야 알 수 있었던 지식이 이제는 유투브 틱톡 플랫폼에 넘쳐난다. 세상에 재능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클릭 한 번이면 세계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해외 전시는 관람객들이 사진과 영상을 찍어 공유하면서 굳이 몇백만 원을 들여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 10만원 이상의 값비싼 영어 원서 PDF도 도서관에서 찾거나 인터넷에서 공유된 파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부 일본 미술관은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하지만, 바디캠을 이용해 촬영하는 중국인들을 여럿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지식과 예술로 돈을 번다. 하지만 왜 특정한 사람이 성공했는지, 출발 요인은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마치 불 타는 장작과 같아, 처음에 불 붙히는 것만 어려울 뿐 타기 시작하면 계속 자체적으로 탄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유명세가 유명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대개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다. 이를 한탄하는 사람이 많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타겟층을 정확히 파악한 영리한 처세이다.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너무 어렵거나 대중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으면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습과 복습이 중요하다는 공부법이 꼭 하버드 출신이어야 말할 수 있는 내용일까? 남해의 작은 섬마을 교사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을 꼭 유명인만 할 수 있는가? 쟁기로 밭을 가는 농부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인생의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심플하다. 다만, 그 심플한 이야기를 화려한 포장으로 감싸야 새롭고 가치 있는 진리처럼 보인다. 본질은 그대로인데.


지식과 예술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고 지식과 예술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돈을 벌 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돈이 생긴다.


좋은 전공 입문서를 천천히 읽으면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사람들은 강연을 듣고 책을 구매한다. 이미 인터넷에는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의 사진과 영상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몇백만 원을 들여 여행을 간다. 레시피가 공개된 음식이라도 직접 요리하지 않고 사 먹는다. 밀키트로 떡볶이를 만들 수 있어도 분식집을 간다. 여과지 100매 3천원, 포트기 1만원, 드리퍼 2만원 초기비용만 투자하면 원두 200g 2만원 미만으로 집에서 5000원 커피 15잔은 내려마실 수 있는데, 굳이 카페를 찾는다.


누가 사진이론이나 미학이론에 대한 책을 읽고 매우 감동해서 남에게 가르치면서 식비도 벌어보고자 유투브를 했다고 생각해보자. 조회수가 나오지 않고 바이럴도 되지 않으며 오프라인 수강생을 구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관심있는 애호가들은 알아서 책을 읽기에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설령 강의를 듣겠다면 저자나 학벌과 명예가 있는 평론가의 강의를 듣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의 강연을 듣는다. 신진 무명인에게 새로 유입되는 사람은 기존 자신의 인맥이거나, 아예 생판 모르는 초보자다. 그런 초보자들은 무료일 때만 관심을 갖다가 유료화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사라져 떨어져 나간다.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플랫폼에 자주 있는 일이다. 


누구나 반도체에 대해 들어보고, 반.도.체. 세 글자는 알지만, 반도체 웨이퍼 스택기법에 대해는 모른다. 웨이퍼를 적층할 때 각 층의 열팽창 계수가 다르기 때문에 비선형적인 열응력 발생한다는 것을 몰라도 얼마든지 반도체 지정학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양자 터널링을 몰라도 양자 컴퓨터가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은 할 수 있다. 철강, 바이오, LLM, 인공지능로봇 모두 마찬가지다. 대개 과학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진폭 범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물리학 박사까지 오래 열심히 공부해서 TSV 기술을 사용할 때 비선형 회로 이론을 적용한 신호 전달 모델링에 대해 가르쳐주어 돈을 버는게 아니라, 반도체가 돈이 된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강단에서 유투브에서 해서 강연료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받아들이기 쉽다.


수학으로 비유해보자. 리만가설 같은 수학난제을 풀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삼각함수를 가르쳐 돈을 번다. 혹은 세계 7대 수학난제라는 재미있는 틱톡 숏폼을 만들어 돈을 번다. 양-밀스 진량간극 가설에 대해 가르치면 일반인은 커녕 이해할 수 있는 수학 전공생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니 이런 것이다. 수학교사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익힌 삼각함수와 미적분을 가르치면서 시간당 몇만 원을 벌고, 과고반, 내신대비라는 리패키징을 해서 같은 내용으로 시간당 몇십만 원을 번다. 수학뿐 아니다. 한국사도 스타강사가 되면 몇억, 몇십 억원을 벌기도 한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들이 가르치는 수학 지식과 한국사 상식이 대단한 것인가? 과거와 별반 차이가 있을까? 이미 합의되고 고정되고 이전과 동일한 지식이다. 새로울 것이 없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은 조선건국은 1392년인데, 1932년이라고 새로 발견했다고 말할 수 없다. 1392년, 고정된 상식이다. 이집트인도 a2+b2=c2를 알았고, 뉴턴도 다윈도 일직선 위에 놓여있지 않은 3개의 점과 선분으로 이루어진 다각형은 삼각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뀌지 않늗나. 바뀌지 않고 새로울 것이 없는 무언가로도 돈을 번다는 게 중요하다. 수학 원리와 역사적 사례는 심지어 수 년, 수 십년 전 고등학생 때 처음 배운 지식조차도 아니다. 천 년 전 정착된 지식이다. 누구나 아는 그 지식을 리패키징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한국사를 통해 돈을 벌겠다면

'신라 법흥왕의 6세기, 율령 반포, 병부 설치, 공복 제정, 연호 사용'을 이 한 구절을 수천 수만번 반복해 노래를 부르고 모르는 학생들에게 외우게 시켜 시험성적을 올리게 해서 돈을 버는 것이지

경주의 서쪽, 서악 고분군 법흥왕릉 추정 묘를 발굴해 그동안 학계에서 받아들여졌던 5세기 돌무지덧널무덤, 6세기 돌방무덤이라는 정설과 달리 6세기에도 돌무지덧널무덤 흔적을 확인했다는 최신 고고학 지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문학자는 박사가 되기까지 초중고 12년, 학부 4년, 석사 4년, 박사 7년 등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로 학석박을 합쳐 6년 이상을 공부한다. 그러나 실제로 강의할 때는 그 모든 지식을 한 번에 전할 수 없다. 강연 1시간에 자신이 아는 것의 0.01%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륜이 쌓일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명강의가 최신 연구나 복잡한 이론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스브레이킹, 농담, 칭찬 같은 사소한 것들이 되려 더 중요하다. 학생이 재능이 없더라도 칭찬을 받으면 더 잘 배운다고 느낀다. 갓 졸업한 강사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최첨단 이론과 난해한 문제의 솔루션을 알려줘야만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은 90%가 아는 상식에 1%의 새로운 정보만 더해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정보의 60% 이상을 모르면 학습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는 한국 문화가 모르는 유럽 언어로 쓰여졌다면 단어를 해독조차 못 할 것이다.


물론 인문사회 문과생은 과학의학분야가 더 잘 나가고 기회가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 케바케다. 의대만 졸업하며 다 될 것 같지만, 월200에 응급실에서 고생하거나 개업해도 빚더미에 스트레스는 받는 경우가 많고, 과학분야에 인문사회보다 상대적으로 펀딩이 많은 것 같지만 주류학문과 그렇지 않는 학문, 혹은 돈 되는 연구실과 그렇지 않은 연구실, 펀딩 잘 따오는 중소기업 사장형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의 차이도 허다하다. 어떤 과학기술자들은 경영경제를 할 것을 하며 후회하고, 어떤 과학기술자들은 30대 중반이 되면 연구역량이 떨어져 무시 받아 차라리 공부하면 할수록 인정받는 인문예술을 할 것을 하며 후회한다. 이 모든 게 다 사람 바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오랜 트레이닝과 공부에 투자한 시간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위치에너지가 높을 수록 운동에너지가 커지듯 많이 공부하면 그만큼 알려줄 수 있는 것도 많다. 수천만시간을 공부해야 0.01%를 전달했을 때 수만시간의 가치 있는 내용이 나오지 고작 수십 시간 공부해서 남을 가르쳐보겠다면 금방 바닥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굉장히 똑똑하고 촉이 좋아서 내용을 이해는 못해도 가르치는 사람의 숙련도와 공부정도는 금방 파악한다.


책으로 비유하자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수백권의 책을 읽고 수천시간을 들여 써도 책은 몇 백 부 안 팔리지만 그렇게 책을 쓰는 노력을 해야 내 안에 지식이 구조화 되어 바쁜 스케쥴 속에 강연을 다닐 때 커피 한 잔 마시고 책 한 챕터 분량을 1시간 떠들 수 있는 것이다. 강연에 가서 책을 쓰고자 하는 것은 순서가 안 맞다. 무대에 가서 연습을 시작하는 배우가 있는가? 이미 오랜 노력을 통해 대사와 워킹을 다 외운, 물이 오른 배우가 공연일정에 맞춰 그날의 무대에 가서 하루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그리고 돈을 벌 때는 최첨단 과학과 예술을 알려줘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그것은 나의 여유시간에 하고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번 다음 그 돈으로 전문가들과 모여 하고 싶은 과학과 예술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최신 영미이론 원서를 사고 싶으면 수능 영어를 고등학생에게 과외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서 보는 것이다. 아이돌 지망생에게 보컬 레슨을 하고 번 돈으로 내 앨범 녹음하는 것이다. 심해 생명체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과고대비 생명과학 특강을 해서 펀딩을 제외한 사비를 충당하는 것이다. 캔버스 200호짜리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버는 게 안니라 성인대상 수채화반, 예고대비 드로잉기초를 가르쳐서 번 돈으로 내 작품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게 현실적이다. 누구는 그렇지 않던데요?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경우다. 피겨스케이터 지망생 수백 명이 김연아를 꿈꾸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 성악하는 사람은 모두 조수미를 동경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 누군가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전문적이 무언가로 돈을 벌었다면 칭찬하고 인정해주면 족하다. 나의 길이 그것이 아니었다 하여 내가 그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화가의 작품이 몇 십억에 팔렸다고 하여 내 그림 못 그리는 것이 아니고 어느 뮤지션의 음악이 빌보드 차트에 들어갔다고 해서 내 음악 못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연구실에 파격적인 펀딩을 겟했다고 해서 내 연구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질투심은 들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이 올라올 때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명상해서 다독여야한다. 현실에서 내 기회가 박탈된 것은 아니다. 내 창작이 방해받은 것은 아니다. 내 작품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런 오랜 기간이 지나 운이 좋으면 사회적 자아를 추구할 수 있겠지만, 운이 좋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공부하는 삶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포항시립미술관 전시에서 보니 박수철 작가처럼 대학 진학하지 않고도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갈뫼화실을 운영해 돈을 벌어 어떻게든 작품활동을 이어나가 원로작가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었다. 


왜냐? 내가 좋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대중도 좋아하게 가르치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신 영미이론을 가르쳐서 용돈을 벌 수 없고 무명가수인 내 앨범을 팔아서 녹음실 대관비를 얻을 수 없으며 아무도 내가 좋아하는 심해 생명체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배우러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원래 생각보다 단순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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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토닥 촉감책 : 할 수 있어, 아기 토끼야 마음 토닥 촉감책
안나 밀버른 지음, 로템 테플로 그림, 송지혜 옮김 / 어스본코리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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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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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미술 전시를 보러 간다. 어느 날은 여행 유튜브를 본다. 또 다른 날은 영화를 보거나, 타인의 고민과 인생 문제를 엿보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다 다른 일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경유해 나도 무언가를 배우고, 나름의 감상을 얻고, 생각의 조각을 맞춰 나가는 것.


예술은 나누어질 때 더 깊어진다. 여행도, 전시도, 영화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어떤 경험은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이다. 미술 전시를 보는 일, 여행 유투브를 시청하는 일, 영화를 감상하는 일, 그리고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읽는 일. 모두 나 혼자 전시를 보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너의 문제는 너의 문제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실은 타인의 경험을 거쳐 너와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다.


여행지를 한두 번 다녀왔다고 해서 그곳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같은 도시라도 계절이 다르면 풍경이 바뀌고, 날씨가 다르면 감상이 달라진다. 너의 삶의 리듬으로 디뎌본 그 여행지를 보면서 그 공간을 재발견한다.


영화나 전시도 한 번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거기서 감동을 받고, 어떤 이는 불편함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런 점이 흥미롭다. 한 번 스쳐 보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다시 보는 순간 새롭게 열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된다. 


인생고민도 마찬가지다. 같은 문제를 계속해서 곱씹게 되기보다는, 때로는 누군가의 시선에서 다시 보면서 새로운 답을 찾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인생고민에서 나의 구원을 찾기도 한다. 아, 나만 힘든 것은 아니구나. 그러한 어려움은 나에게 없구나.


이런 관계는 배타적이지 않다. 내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타인의 경험이 메꿔 줄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게 더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너의 생각이 나에게 의미가 있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고, 그 결과 내 사고의 틀을 넓힌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이해의 층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고맙다, 고마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없다. 흥미로운 여행 스팟은 가도가도 야물야물 끝이 없고, 삶의 고민은 결코 해결되지도 결코 소진되지 않으며, 재밌는 영화는 OTT에서 득실득실 범람하고, 몰랐던 미술 전시가 어딘가에서 새로 오프닝을 한다. 평생을 걸어도 다 가지 못하고 평생을 보아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그런 것들이 있어, 너와 나,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뭔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끝없는 탐색 속에서 우리는 더 깊고, 더 넓어진다.


한두 번의 인생상담으로 삶의 질문이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 되돌이표로 돌아오는 문제에 신음한다. 어렸을 때, 공부할 때, 사회생활할 때 결혼 후 양육 후 늙은 후, 모든 생애단계마다 비슷한 패턴의 문제가 반복해서 찾아오기도 한다. 또, 같은 문제라도 어떤 날은 절박하게 다가오고, 어떤 날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기도 하고, 코리아 타임즈 뒷면의 호로스코프 디어 애비를 넘겨 보기도 하며, 스레드 속 생각의 실타래들을 따라가 보기도 하는데, 부유한 인생도 공감받지 못할 시련과 고난이 있고, 미국인의 삶에도 영겁의 허적이 있으며, 화려한 인스타 사진 속에 채우지 못하는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학벌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 내 내면에만 갖혀 폐쇄적으로 함몰되어버릴 수 있을 것을, 너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세계에 새로운 자리를 얻는다.


너의 생각이 나에게 의미가 되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 주며, 그 결과 내 사고의 틀을 넓힌다. 삼라만상이 겹겹이 쌓이듯, 우리의 경험도 그렇게 겹을 이루어 간다.


관계는 배타적이지 않다. 내 경험이 네게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네가 짚어 줄 수도 있다. 공감과 보완의 관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며 더 넓고 깊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너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참 좋다. 나의 생각을 공유하듯이. 여행을 다녀왔다, 전시를 갔다, 영화를 봤다, 하면서 자기 생각을 불특정 다수가 보도록 가상공간에 올리는 것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별빛이 모여 은하수를 이루듯, 우리도 함께 생각을 쌓아가기 위해서다. 너의 별자리와 접속해 함께 은하수를 만들어가고자 함이다. 거대한 인공지능 연구를 수천의 과학자들이 서로 한 문제씩 들고 협업을 하듯이.


작품을 보는 동안 생각 한 움큼이 내 안에서 싹트고, 창작자의 설명을 통해 가지가 자라며, 다른 이들의 감상기를 통해 열매가 익어, 마침내 글로써 탄생한다. 하나의 생각도 나와 너를 거치며 차곡차곡 조립되어 간다. 마치 퀘벡에서 알루미늄이 제련돼 코아우일라에서 주조되고 온타리오에서 가공을 거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후방 차동장치의 일부가 된 뒤 다시 온타리오에서 서스펜션이 추가돼 인디애나에서 쉐보레의 픽업트럭인 실버라도에 부착되듯이.


그리고 이 과정은 끝이 없다. 여행지는 날마다 생기고, 고민은 바닥나지 않으며, 영화는 OTT에서 쏟아지고, 미술 전시는 오늘도 열린다. 하루종일 보아도 다 보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끝없는 탐색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한층 더 깊어지고, 한소끔 짙어지고, 한결 더 넓어진다.


아마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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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잘 하는 교수와, 강의를 잘 하는 교수와, 대중서를 잘 쓰는 교수와, 학생을 잘 가르치는 교수가 다 다르다. 좋은 인성은 또 다른 카테고리다.

미술가도,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화랑과 컬렉터에게 투자가치를 인정받는 미술가가 다 다르다.

아이돌은, 춤 잘 추는, 노래 잘 부르는, 예능감이 좋은, 멤버와 잘 지내는, 스태프들에게 인사성 좋은, 국내팬에게 인기있는, 해외만 나가면 날아다니는, 라이브를 잘 하는, 녹음을 잘하는, 연기재능있는 아이돌이 다 다르다.

이런 식으로 건축가도, 스포츠 선수도 뮤지션도 모두 다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말을 잘 하는, 글을 잘 쓰는, 학벌 좋은, 상을 받아 명예가 있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재능이 좋은, 성실한, 그냥 유명한, 유명세가 다시 유명세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모두 다른데,

한 사람 안에 공존하거나, 혹은 결여 되어 있는 여러 요소들을 섬세하게 구별하고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고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다른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해설을 잘하는 유명인이지만 자신의 작품은 별로일 수 있고

작품을 잘만들지만 말로 풀어서 설명을 못할 수도 있고

논문을 잘쓰지만 강의는 잘 못할 수도 있고

대중강연은 잘하는데 학생은 못가르칠 수도 있고

경기 성적은 좋은데 인성은 안좋을 수도 있고

예쁘지만 이기적일 수도

키 작은데 잘생길 수도

바보 같아 보이는데 지혜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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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정은 조금 난이도가 있다.


서울 - 여수 전남도립미술관 - 부산현대미술관 - 포항시립미술관 - 서울


산수화 백남준 박수철을 보기 위한 여정이다.


하루만에 지역 미술관 훑고 전국을 도는 것이 가능한가?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니 가능하더라


서울-여수는 아시아나 하나만 운행중이다. 원래 5-8만원하는데, 2만8천원이라고 하길래 


미리 생각해둔 이 루트를 실행할 수 있었다.


갈 때보다 올 때 이동수단에 돈을 써야한다. 


갈 때는 이코노미에, 버스도 일반석을 탔지만, 일정 마치고 돌아올 때 KTX를 우등으로 탔다. 그래봤자 일반과 1만3천원 정도밖에 차이가 안난다.


왜냐? 일정을 떠날 때는 휴식 후 체력이 있지만 일정을 마칠 때는 체력이 방전되어 있어 편한 의자에 앉아야하기 때문이다.


아직 미국과 유럽은 안 가봤지만 설령 갈 때는 이코노미를 타도, 돌아올 때는 비즈니스를 타려고 한다. 이코노미니가 170만원이면 비즈니스는 2배인 350만원이라고 하니 유럽과 미국 미술관은 지금처럼 미니멀 여행으로는 힘들 것이다.


지금 일본 여정을 간혹 소화할 수 있는 이유는 캡슐호텔 2만7천원에 묵기 때문인데,


쉽지 않다. 시끄럽고, 새벽에 들어오고, 심지어 옆 칸 누군가가 만취로 새벽 2시에 들어와서 방과 방바닥에 토를 해서 냄새도 나고 방바닥에도 흥건이 고여있었다.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시간을 보냈다. 


모네전, 류이치사카모토전을 보기 위해 갔던 방문이었고, 정말 이 전시는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 현재 하고 있는 전시는 대략 다 가서 이제 지방을 다닌다. 더 많은 연결점이 더 많은 시냅스를 만들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할지니. 모두 다 아는 책과 영화와 전시는 물론 잘 모르는 것도 열심히 읽고 보고 다녀야 한다.


전남도립 산수화 이머시브. 자연과 인공의 관계, 색태와 형태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프랑스인 슈발리에와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도모한 이이남의 포커스가 다르다.


부현미 백남준 트랜지스터 회로도를 보고 테크니션으로서의 면모를 새로 알게 되었다. 과천에서는 브라운관 보수유지의 어려움을 대전에서는 거북선을 백남준센터에서는 굿모닝오웰의 동기성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동서양 융합 사상가이자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포항 박수철 작가의 미술 독학의 고군분투 여정에서 가난한 미술가로서의 애잔함과 예술에 대한 녹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전남도립은 오지호 할 때 왔어야 했는데 그때는 여력이 없었다. 아쉽다. 대구 와엘 샤키도 못 갔다.


앞으로도 아쉬울 것 천지겠지. 지적 주파수 범위 안에 들어오는 모든 전시를 다 갈 수 없으니까. 지금도 미국 유럽 일본 좋은 전시를 놓치는 게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이 놓쳐왔는지




같은 지역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 멀리 움직이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서울 내 평창 안에서 움직인다면 하루에 15군데를 돌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기 에이라운지 하랑 자하 목석원 석파정서울 김달진 화정 퀄리아 시립아카이브 가나 세줄 자인 누크 김종영




이런 한 공간 내 이동 루트는 서울-강릉을 가는 것보다 절대 거리가 짧기 때문에 쉬워보이지만 실질 난이도는 멀어 보이는 서울-강릉이 더 쉽다. KTX에 몸을 맡기고 영화 1편 보거나 친구와 대화하다보면 금방 도착해 있으니. 이동수단이 움직여준다. 오히려 평창 안을 돌아다니는게 산을 올랐다 지도를 봤다 더 힘들다.


이동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도시 간 이동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다. 점과 점 사이 이동과 같다. 같은 지역 내 갤러리 이동이 곡선 이동과 같아 발품이 든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하고 싶고 해야할 일들을 할 뿐이다. 돈이 생기면 그전에 하고 있던 소중한 일들을 증폭해서 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던 사람은 책을 구매하고


도서관에서 DVD로 영화보던 사람은 영화관을 다니고, 영화제도 다니게 되며


무료 전시 위주로 다니던 사람은 티켓 2만원하는 전시와, 지방과 해외 전시를 다닌다.


내가 품고 있는 씨앗이 확장성이 좋다면, 돈이 생길 때 가치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체력이 없어서 다 못하게 될 것이다.


책을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도서관에서 보던 사람은 책을 사게 되지만, 그렇다고 1달에 몇 백만원을 들여 몇 백 권씩 사더라도 다 못 읽는다. 매일 빼놓지 않고 하루에 1권 꾸준히 읽는다면 정말 잘 하는 것이다. 단, 1시간에 읽고 마는 책을 읽었다면 300쪽 400쪽짜리 양서를 포함해야한다. 그렇게 했을 때 정말 끝까지 다 읽는 책은 한 달에 30권이 될 것이다. 그 이상으로 사는 책은 소장용이거나 표지 독서만 하게 된다.


영화를 더 보고 싶었지만 못 보고 빌려보던 사람은 영화관도 가고 영화제도 가게 되지만 그렇다고 3시간 러닝타임 영화를 하루에 8개씩 볼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포스터나 소품을 수집을 하거나 팬미팅이나 GV를 가서 감독과 배우의 사인을 받을 수 있다. 영화 촬영지를 방문해볼 수도 있겠다. 그럼 이제 돈이 아니라 시간과 체력의 문제가 된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방식으로 살게 된다. 서울 도심권을 제외한 지역에는 흔한 일인데, 버스로는 대기 시간 빼고 1시간 반 걸릴 거리가 택시로는 15분이다. 1-2만원으로 시간을 사는 것이다. 편의점 삼각김밥, 도시락 1300원, 4900원을 먹으며 사는 20대 시절에는 택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돈이 뭉텅이로 들어오게 되면 몸이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소비패턴이 바뀐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천원 2천원이 세면서 썼었지 .. 지금은 아저씨 여기서 조금만 더 가주세요 한 마디에 천원 2천원이 붙는데 아무 생각이 없어, 이렇게 되어 버린다.


돈이 없을 때는 여행 영상, 교환학생 블로그, 외국생활 브이로그 같은 것을 찾아본다. 여행 관련 에세이와 사진책도 읽는다. 그런데 이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조금씩 해외도 나가보고 몰랐던 곳을 방문한다.


만약 내가 품고 있는 씨앗이 확장성이 없다면 돈이 들어왔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다. 그런 것들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홀딩스나 파트너스 같은 투자회사에서 돈을 부어서 프랜차이즈화가 되어 외면적으로 성장했는데 메뉴가 부실해서 한시한철에 끝나는 것이 너무 많다. 잠바 주스, 탕후루, 대왕카스테라 등등.. 어쩌다 한 번은 먹을 수 있지만 매일 먹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확장성이 애초에 없던 것이다. 죽은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을 주어 억지로 심폐소생술을 통해 깨워 생명을 만들어내더라도 흐드러진 가지에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나무로 자라나긴 힘들다. 이미 사막이 된 지역은 기후가 급격하게 바뀌지 않는 이상 초원으로 변화하기 힘들다. 죽은 땅은 죽은 것이다. 


책 영화 전시는 살아있는 씨앗이다. 돈이 없어서 못 하던 시절을 지나 시간과 일정과 체력의 제한 때문에 다 못하는 시절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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