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미술 전시를 보러 간다. 어느 날은 여행 유튜브를 본다. 또 다른 날은 영화를 보거나, 타인의 고민과 인생 문제를 엿보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다 다른 일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경유해 나도 무언가를 배우고, 나름의 감상을 얻고, 생각의 조각을 맞춰 나가는 것.
예술은 나누어질 때 더 깊어진다. 여행도, 전시도, 영화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어떤 경험은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이다. 미술 전시를 보는 일, 여행 유투브를 시청하는 일, 영화를 감상하는 일, 그리고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읽는 일. 모두 나 혼자 전시를 보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너의 문제는 너의 문제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실은 타인의 경험을 거쳐 너와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다.
여행지를 한두 번 다녀왔다고 해서 그곳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같은 도시라도 계절이 다르면 풍경이 바뀌고, 날씨가 다르면 감상이 달라진다. 너의 삶의 리듬으로 디뎌본 그 여행지를 보면서 그 공간을 재발견한다.
영화나 전시도 한 번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거기서 감동을 받고, 어떤 이는 불편함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런 점이 흥미롭다. 한 번 스쳐 보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다시 보는 순간 새롭게 열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된다.
인생고민도 마찬가지다. 같은 문제를 계속해서 곱씹게 되기보다는, 때로는 누군가의 시선에서 다시 보면서 새로운 답을 찾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인생고민에서 나의 구원을 찾기도 한다. 아, 나만 힘든 것은 아니구나. 그러한 어려움은 나에게 없구나.
이런 관계는 배타적이지 않다. 내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타인의 경험이 메꿔 줄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게 더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너의 생각이 나에게 의미가 있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고, 그 결과 내 사고의 틀을 넓힌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이해의 층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고맙다, 고마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없다. 흥미로운 여행 스팟은 가도가도 야물야물 끝이 없고, 삶의 고민은 결코 해결되지도 결코 소진되지 않으며, 재밌는 영화는 OTT에서 득실득실 범람하고, 몰랐던 미술 전시가 어딘가에서 새로 오프닝을 한다. 평생을 걸어도 다 가지 못하고 평생을 보아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그런 것들이 있어, 너와 나,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뭔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끝없는 탐색 속에서 우리는 더 깊고, 더 넓어진다.
한두 번의 인생상담으로 삶의 질문이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 되돌이표로 돌아오는 문제에 신음한다. 어렸을 때, 공부할 때, 사회생활할 때 결혼 후 양육 후 늙은 후, 모든 생애단계마다 비슷한 패턴의 문제가 반복해서 찾아오기도 한다. 또, 같은 문제라도 어떤 날은 절박하게 다가오고, 어떤 날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기도 하고, 코리아 타임즈 뒷면의 호로스코프 디어 애비를 넘겨 보기도 하며, 스레드 속 생각의 실타래들을 따라가 보기도 하는데, 부유한 인생도 공감받지 못할 시련과 고난이 있고, 미국인의 삶에도 영겁의 허적이 있으며, 화려한 인스타 사진 속에 채우지 못하는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학벌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 내 내면에만 갖혀 폐쇄적으로 함몰되어버릴 수 있을 것을, 너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세계에 새로운 자리를 얻는다.
너의 생각이 나에게 의미가 되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 주며, 그 결과 내 사고의 틀을 넓힌다. 삼라만상이 겹겹이 쌓이듯, 우리의 경험도 그렇게 겹을 이루어 간다.
관계는 배타적이지 않다. 내 경험이 네게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네가 짚어 줄 수도 있다. 공감과 보완의 관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며 더 넓고 깊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너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참 좋다. 나의 생각을 공유하듯이. 여행을 다녀왔다, 전시를 갔다, 영화를 봤다, 하면서 자기 생각을 불특정 다수가 보도록 가상공간에 올리는 것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별빛이 모여 은하수를 이루듯, 우리도 함께 생각을 쌓아가기 위해서다. 너의 별자리와 접속해 함께 은하수를 만들어가고자 함이다. 거대한 인공지능 연구를 수천의 과학자들이 서로 한 문제씩 들고 협업을 하듯이.
작품을 보는 동안 생각 한 움큼이 내 안에서 싹트고, 창작자의 설명을 통해 가지가 자라며, 다른 이들의 감상기를 통해 열매가 익어, 마침내 글로써 탄생한다. 하나의 생각도 나와 너를 거치며 차곡차곡 조립되어 간다. 마치 퀘벡에서 알루미늄이 제련돼 코아우일라에서 주조되고 온타리오에서 가공을 거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후방 차동장치의 일부가 된 뒤 다시 온타리오에서 서스펜션이 추가돼 인디애나에서 쉐보레의 픽업트럭인 실버라도에 부착되듯이.
그리고 이 과정은 끝이 없다. 여행지는 날마다 생기고, 고민은 바닥나지 않으며, 영화는 OTT에서 쏟아지고, 미술 전시는 오늘도 열린다. 하루종일 보아도 다 보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끝없는 탐색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한층 더 깊어지고, 한소끔 짙어지고, 한결 더 넓어진다.
아마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