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엔드 보고 왔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그의 매니저 사이의 아들, 소라 네오 감독의 작품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홍길동으로서 고뇌가 있는 분인데 음악적 특징은 빼다 박았다.


네오 소라는 전통적 읽기방식이 아니다. 감독의 창의적인 네이밍이다. 원래라면 하늘 공 空은 소라 혹은 쿠우가 맞는데, 소리 음音 중앙 앙央은 온오 혹은 오토오 정도로 읽었을 거다. 소리 음의 훈독인 네, 앙의 뒤쪽 부분만 살려 네오라고 해서 영어의 새롭다라는 라틴어 Neo라는 의미를 담았다. 새로운 하늘 정도의 의미로 읽히고 그 뜻은 음악의 가운데라고 표시했다.

영화제목에 속으면 안된다. 보통 제목과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제목이 해피라고 해피한 영화가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화제가 된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퍼펙트데이즈>(2023)도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분)의 코모레비를 즐기는 나날을 그리는 것 같지만 막 가운데 삽입된 불안한 음악이 마냥 조용한 루틴 속 평화로운 내면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제목에 해피가 직접적으로 들어갔으나 해피하지 않은 영화를 생각해보면 여럿 떠오른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Happy Together>(1997)인데 두 주인공은 전혀 함께 행복하지 않고, 되려 두 남자의 고통스러운 관계와 아르헨티나에서의 외로움을 다룬 작품이다.

제목이 똑같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Happy End>(2017)도 부유한 유럽 가정의 붕괴와 허무를 다룬다. 토드 솔론즈 감독의 <Happiness>(1998)는 일그러진 삶, 고독과 소외, 성적 일탈 같은 불쾌하고 충격적인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그리고 있으며 마이크 리Leigh 감독의 <Happy-Go-Lucky>(2008)의 주인공이 그나마 명랑하고 낙천적이지만 주변 인물이 냉소적이고 폭력적이기에 사회적 병리와 마주한 주인공의 긍정은 도피인지 아닌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도 해피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일그러지거나 고통스러운 영화는 아니다. 이전에 홍탕에게 말한 바 있듯 무난한 맛의 영화다. 마트에서 계획한 음식을 구매해 예상한 맛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EDM 노래와 잔잔히 흐르는 OST의 사운드가 풍성해 해상도 높은 유럽회화를 보는 것 같다. 노래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레거시가 가득하다. 에너지 플로우의 진행 같은 (왼손 옥타브 아래 E F# G#) (오른손 A B E E E D F# A E) 부분도 귀에 들려온다.

다음은 기억나는 내용 몇 가지와 단상
1. 키토총리의 한자는 귀신의 우두머리 귀鬼두頭총리다. 총리연설의 TV라이브 송출 중 도시락에 맞아 볼에 김이 붙은 부분에서 弁当で襲撃されるがけがなし 이런 느낌의 자막이 있었다. 도시락으로 습격당했지만 상처 없음.

2. 미래적인 느낌은 CCTV카메라와 얼굴인식 데이터마이닝과 AI를 이용한 감시시스템이 하나, 구름에 레이저로 쏴서 행정고지와 공공안내를 하는 부분이 둘


3. 아나키스트인 고등학교 선생과 제자들이 저녁에 술 마시고 담배피며 동지들과 함께 권력을 비판하는 노미카이(술모임)와 교장실 점거행동이 일본 60-70년대 활동한 전공투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1969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와 같은 일이다. 다만 항쟁의 대상이 69년은 정부, 총리, 미군이었고 영화상으로는 정부, 총리, 감시시스템이다.

4. 재일조선인 3대인 어머니는 말했잖아(言ってたの)를 잇떼따노가 아니라 윳떼따노로 구어체음변화를 하여 아주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5. 재일조선인 음식점 메뉴판에 김치キムチ 한국 김韓国のノリ, 한국식모둠(韓国盛り合わせ)같은게 눈에 띈다.

6. 강당에서 룰은 지켜야한다고 항의하는 두 번째 인물(여성)의 딕션이 성우처럼 좋아 전달력이 훌륭하다.

7. 그림자극에 대한 레퍼런스도 있다. 영화에서 따로 보이스오버 나래이션이 없고, 인물들을 지켜보는 친구들의 목소리로 그상황을 나름 묘사하며 노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하나는 교장선생에게 혼나는 장면, 다른 하나는 졸업 후 미국 디트로이트에 돌아간다고 아프리카계 일본인(흑인) 톰이 유타에게 말하는 장면, 마지막은 톰의 생일파티에 1층에 내려가 꽁냥꽁냥하고 있는 밍과 아타를 내려다보는 장면(상단중간에서 좌측중간으로 3량 정도의 짧은 기차가 4초 정도 지나간다) 셋이다.

8. 영화는 화보집, 영화잡지, 평론집에 수록될 것을 기대하고 좋은 스틸컷 장면을 7초 이상의 롱테이크로 넣었다. 마치 두 주인공이 비오는 날 지하 국수집에서 만나는 화양연화의 유명한 스틸컷처럼(캄보디아 유적지 틈 사이로 침묵의 절규를 하는 양조위도)


기억나는 것만 세 개. 유타가 어린애라고 불평하며 코우가 돌아가고 톰이 마트 봉지를 들고 뒤를 쳐다보는 장면, 밍이 음악연구회 동아리방 한 모서리에 서있고 아타랑 같이 프레임 왼쪽에 있는 장면, 유타 엄마가 유타 퇴학 당하고 백으로 5차례 존나게 패는 장면(오른쪽은 기울어진 도로를 배치하고 뒷쪽 건물과 도로가 차경으로 프레임 위쪽으로 잡히고 두 인물은 좌측에 있고 더 좌측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육교 마지막 장면. 육교샷은 육교의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장면부터 시작해 밍과 아타가 밍의 아버지가 큰 저녁 사준다고 헤어지고 저 멀리 둘이 머뭇거리다가 이별하는 장면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롱테이크다. 배우들이 열연했다.


9. 영화 처음에 유타가 코우에게 스키나 다이스키가 아니라 아이시떼루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다지 퀴어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10대 특유의 치기어린 표현 같은 것이다


10. 교장은 점거한 학생에 대해서는 빡치지 않는다. 비싼 스시 줘도 안 받으니까 먹어! 먹으라고食い(くい)! 라고 한다. 

그런데 어쨌든 교장이나


11. 사회시스템에 항거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이별에 아쉬워하는 10대 청소년을 그린 영화는 외국에는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같다. 한국픽션은 입시, 서바이벌, 생존에 바쁘다. 일본은 3시에 수업 마치고 부활동하는 문화라서 그런가? 우리나라에 없는 감성이다. 학원집학교에 메말랐던 감성을 충전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찾아보기도 하는 듯.


정확히 10대에만 느낄 수 있는 아련한 감정이다


12. 재일조선인 코우는 특별영주권이 없어 자기만 끌려가는 억압적인 사회현실에 항거하며 데모도 나가고 하면서 유타에게 너는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강당신에서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은 코우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던지면서까지 진실을 말하고 그 책무를 다하는 자는 유타다. 유타가 생각이 없어서 음악하면서 지내는게 아니라 음악을 하기에 5명의 친구들이 모일 수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마저 진지해져버리면 너무 괴로우니까. 겉으로는 치기어리고 생각없어보여도 내면으로는 생각이 깊은 캐릭터다. 창고에서 마지막 우퍼를 챙겨올 때 정정당당하게 교무실로 들어가 신청서 없이 서랍에서 키 꺼내서 가져가며 시끄러워 うるせ하면서 벌점 감수하면서 유유히 나가는 것도 유타다. (교무실 전원 어이없음)


13. 교사와 교장 캐릭터가 아주 좋다. 이들이 없으면 무게감이 전혀 없을 뻔 했다. 이들이 안타고니스트로 있기에 영화가 아주 쫀득쫀득하고 매력적이다. 


14.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약자의 무기: 농민 저항의 일상적 형태라는 책에서 거대한 권력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저항의 형태를 설명한 바 있다. 졸업식에서 아타가 보여준 빠개진 Z를 자수로 수놓은 교복와 치마를 입어서 보여준 조롱도 그 한 형태다. 교토 졸업식 같은 것이 생각난다. 전통과 권력의 기득권이 강하고 단단하지 않다면 이런 조롱이 재미가 없다. 근미래의 일본인데 여전히 기립, 례, 착석 같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아있다. 후미처럼 기립하지 않고 사람모아서 데모하고 항거하는 것도 저항이지만 유타도 저항의 한 형태다. 오히려 코우가 친구들에게만 분노할 뿐 명시적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저항하면 불안한 자신의 법적 지위가 박탈되니까 말이다.


15. 또 뭐 말할게 있던 것 같은데 일단 지금은 기억 안난다. 나는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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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1)


한국과 미국과정을 다 가르쳐 본,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


1. 한국 수능 개념 범위는 대학교양수업을 모델로 한 미국 AP에 비해 많지 않다. 그러나


2. 한국 수능은 개념은 쉽고 범위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미국에 비해 문제풀이 훨씬 어렵다. 수능문풀은 넘사벽이다. 범위는 좁지만 문제 난이도가 높고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해서 문풀강의를 따로 들어야한다. 이과 수리,과탐 1등급 받으려면 최소 중학생때까지 개념수업을 다 듣고 고교 3년동안 문풀만 해야한다


3. 예컨대 물리1 교과서의 전류,전압,페러데이,렌츠법칙 정도만 이해하고 정답률 65%의 학평 전자기유도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도 안된다


4. 게다가 교과서-하이탑-EBS 다 개념을 따로 정리해서 완벽한 교재가 없고 자기 스스로 단권화해야만한다


5. 대부분 학생들은 차분히 앉아서 교과서를 꼼꼼히 읽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영상에 익숙해서 인강을, 그것도 2-3배속으로 듣고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이지 공부가 아니다.


6. 교과서 한 줄을 읽어도 낱말 하나씩 떼어가며 이리저리 생각해보지 않는다.

정말로 교과서를 읽는다면

"지구와 생명체는 다양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누어지며,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쿼크라고 하는 가장 작은 입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빅뱅 직후의 우주는 매우 고온의 상태였기 때문에 입자가 존재할 수 없었다. .. 최초로 쿼크와 전자 같은 입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같은 교과서 첫 페이지 한 문단을 읽고

그럼 입자를 역으로 재구성하면 지구와 생명체도 만들어질까? 그 원리는 무엇이지?

입자가 뭐지? 양성자, 중성자는 있는데 왜 음성자는 없지?

술어가 "구성되어있다 이루어져있다로 가다가 왜 원자핵만 나누어진다고 표현했지?"

매우 고온? 얼마나 고온이지?

왜 고온이면 입자가 존재할 수 없지?

빅뱅 직전 우주는 왜 없지?

왜 최초로 쿼크와 전자가 만들어졌지?

쿼크와 전자 중 뭐가 먼저지?

같은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이런 꼼꼼한 읽기를 교과서 끝날 때 까지 진득하게 해야하는데

대부분 중간에 퍼지거나, 시각화된 삽화만 보고 대충 이해하거나, 전자! 양성자! 그 다음 뭐지? 하는 식으로 이해없이 개념만 암기하거나, 연습문제 4지선다를 요령으로 맞춰놓고 알았다고 착각한다.

바로 옆의 주석 쿼크까지 읽지도 않는다. 6종류가 있다는 데 무슨 종류일까? 찾아보지 않는다


7. 교과서로 시작하는 것은 맞다. 온갖 궁금증을 쉬는 시간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쉬고 싶은 선생님은 참고서나 교양서를 토스해준다. 그런 교보재를 포함해서 생각의 훈련 전체가 공부의 일환이다. 교과서만 보는 것은 아닌데 시작이 교과서였으니 교과서만 봤다고 말하는 거다


8. 물론 겸손의 표현일 수도 있다


9. 한편으론 고급과외정보를 알려주지 않기 위해 적당한 말로 둘러대는 것이기도 하다

과고 외고 자사고 국제고 등 경쟁이 치열한 곳일 수록 과외의 비중이 아주 높다.

한편 그런 특목고를 다니지 않는, 보통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방거주학생들의 박탈감이 클 것이다.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2)

10. "예전 물로켓시절의 난이도를 착각하는 부모님들이 계심. 나는 그런대화를 아예 하지말고 밥은 잘먹니? 이런대화만 하라고 당부드림"라는 댓글이 달려서

생각해보니 학부모 중에 아이들의 나태함에 손사래를 치며

우리 때는 문과도 화학까지, 이과도 지리까지 다 공부해야했었다, 우리 때는 11개씩 했는데 요즘은 탐구 고작 2개라면서, 본고사 수학은 더 어려웠다, 교련했다, 체력시험도 있었다,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사람은 미어터지고 교육열은 높고 적당한 교재와 적절한 정보가 없던 시절의 공부는 참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인맥을 통해 정보를 얻기 쉬운 경기고 서울고, 지방거점고에서 명문대를 잘 보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내용을 알면 풀고 모르면 못 푸는 지금으로 치면 유제문제의 비중이 더 높았다. 지금 문제풀이는 정말 정말 어렵다. 분명 개념 강의 잘 이해했는데 도저히 풀 수 없다. 미적 21번을 교과서만 보고 풀 수 없다. 생명과학 교과서만 보고는 유전킬러문제가 안 풀린다. 사회문화 도표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풀이 자체가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험범위다.

또한 본고사 수학문제는 일본 센터시험에서 베껴 개량한 것이 많은데 지금 수시 논술수학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특별히 더 어렵지는 않지만 그때보다 문제풀이 방법과 노하우가 개선되어서 더 쉽게 공부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수학은 개념과 문제가 변하지 않아 옛날 문제를 공부하는 게 득이 된다.


한편 탐구는 물리나 역사를 제외하고는 옛날 문제 풀어도 큰 도움이 안되는데 매년 출제경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특히 생명과학 같이 대학 내에서도 논의를 거쳐 발전하고 있는 학문은 더더욱 그렇다. 하버드도 생물학, 뇌과학, 생태학 등 생명 인접 학문이 정말 많이 설치되어 있다. 서울대의 동물학과, 식물학과가 분자, 미생물학과로 변하기도 하고 다른 학문, 예컨대 광산학과도 지구시스템과학으로 변하기도 하는 등 부침을 겪는다.


옛날에는 길이 뻔하고 삶이 평평해서 공부 외에는 생각할 것이 별로 없었다라는데 포인트가 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삶의 트랙이 선명한 시대였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것이고 시간을 많이 들이면 되는 것이며 공부 잘하면 대학 잘가고 취업 잘해서 성공한다라는.

지금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고려할 것이 너무 많다


아직 어린 뇌에 복잡한 정보로 가득하다

누구는 고등학교 자퇴하고 배달해서 월 천만원 번다더라, 명문대 나와도 돈 못 번다더라, 고시 패스해도 박봉과 야근때문에 힘들다더라,


인플루언서 되는 루트는 유투브 말고 틱톡, 치지직, 트위치도 있다더라

신작 게임은 10개인데.. 최신 나온 곡은... AR, XR, UX, AI, 홀로그램.. 데뷔 아이돌은 .. 이번 콘서트 라인업은 .. 카카오와 네이버 웹툰은 몇 천 개인데.. 걔 이번에 유학 갔대 걔 이번에 자퇴하고 창업했는데.. 걔 이번에 과고갔는데

정보의 홍수에 어른들도 과부하인데 아이들은 어떨까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3)

11. 고등학교 문과가 60%, 이과가 40%라는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 반반이라느니 상위권 고등학교에서는 이과가 70%라느니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실은 이렇다. 경험적으로 문과학생이 더 많다. 여고는 문과가 압도적이다. 문이과 선택의 직접적인 분기점은 수학에 대한 혐오 및 열등감이고 추가적으로 대입에서 실리적 효과여부다. 그런데 왜 이과학생이 많아졌다느니 이야기가 나올까? 왜냐하면 사탐응시를 안하기 때문에 통계에 안 잡히기 때문이다


문과학생은 수능에서 탐구영역을 응시하지 않고 수시로 대학을 간다. 그래서 수능 응시인원상으로 사회탐구 영역응시자가 과학탐구 응시자에 비해 적어보인다. 왜냐? 문이과 수능통합되어 문과가 이과를 깔아주기 때문에 정시를 응시하는 게 불리하고, 따라서 문과는 수시로 가는게 이득이다. 즉, 수능사탐 준비없이 학교내신사탐만 공부하고 1등급 받고 세특만 잘 쓰면된다.

문과의 최고학과인 법대가 없어지고 로스쿨(전문대학원) 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명문대 아무 학과나 성적에 맞춰가고 대학 가서 로스쿨 준비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말인즉슨 이전처럼 문과 최고득점자는 법대로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과는 아직도 피라미드 최고층에서 의대, 수의대, 치대, 한의대 등으로 인원이 빠진다. 심지어 최고로 머리 좋은 과고아이들은 과기대로 빠진다. 게다가 대학에서 설치학과도 많고 취직도 잘 되고 돈도 문과에 비해 잘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과는 문과에 비해 1등급이 낮더라도 같은 레벨 공대 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수리가 어렵지만, 부모도 그렇게 설득하니 자신도 미래를 위해 이과를 선택한다. 과학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배워온게 그거니까.


이과=정시 최고등급은 의학계열로 빠짐. 과고 등 브레인은 과기대로 빠짐. 게다가 이과학생은 적은데 모집인원이 많고 미래도 문과에 비해 보장된다고 함. 따라서 일반고에서 수시든 정시든 이과를 준비하는게 바람직하고 학교에서도 입결을 위해 머리 좋은 애들은 이과로 유도(올해의 입결은 학교의 위신이자 신입생 충원에 결정적 요인이라서 학교 입장에서 중요함)

첨부파일 사진은 서울대 권장과목이다.


이공계열은 모두 자기 학과에 맞는 핵심권장과목이 있다. 전기정보공학부에 물리학2가 있다는 말은 결국 물리학1도 공부해야한다는 말이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물리학은 단원간 구조적 연관성이 강해서 물리1의 1단원 역학이 물리2의 1단원 역학에서 심화되고, 2단원 전자기 3단원 파동도 마찬가지다. 화학1은 기초 화학2는 심화변주에 가깝고, 생명과학1과 2는 퀼트형으로 짜집기 되어있다. 내분비, 면역학, 분자생물, 세포생물, 생태학, 바이오윤리 등등. 생명2는 생명1없이 따로 공부할 가능성이 있으나 화2, 물2는 화1, 물1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인문대 역사학부 마저 수능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를 권장으로 두지 않는다는 게 주목할만 점이다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4)


12. (11)번 글의 요지는 이렇다. 문과 학생은 많은데 사탐 공부은 안한다. 대입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

이과 학생은 적은데 과탐 공부를 한다. 대입에도, 향후 전공공부에도 도움되기 때문.

문과는 현역을 구원하기 위한 수시로 대학을 간다. 70% 수시로 대학을 못 가면 같은 레벨의 대학을 갈 다음 기회는 없다. 이과와 재수생과 섞여서 문과가 고득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심지어 내신과 세특에 몰빵했는데 다시 수능 문풀을 해야한다. 문풀의 이야기는 (1-9)번 글에 적었다.


13. 이공계열은 과탐 1+2 같이 영역을 지정하기에 무조건 과탐을 응시해야한다. 특히 의대목표로 정시로 대학을 갈 경우 과탐 공부를 해야한다. 게다가 과탐 공부를 안하면 어차피 대학 전공 공부를 따라갈 수 없다. 물리1+2를 모르는데 열역할을 어떻게 공부할 것이며, 화학1+2없이 유기화학을 이해할 수 있는가? 전공 교차로 어떻게든 들어간다고 해도 어차피 공부해야할 과목이다. 그래서 과탐 공부는 하는 게 이득이다. 


사회탐구는 그렇지 않다. 사회문화의 베이스가 되는 과목은 문화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언론정보학인데 고등학교 사회문화를 1등급을 받았다고 이 과목을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완전 다르다. 역사나 경제가 그나마 비슷하지만 그 역시 방법론 문제에서 갈리고 최신 주제는 다루지 않고 있다. 역사학 학술대회 논문주제와 고등학교 역사는 차원이 다르다. 고등학교 역사는 한국사검정시험 정도에만 관련성이 있다. 자격증 취득용이다. 고등학교 경제에서 일부 미시경제, 거시경제를 배우지만 기초 미적을 포함하는 경제수학이 없는 경제개념이라 내용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학에서 사회탐구응시를 지정하지 않는다. (11)에 보면 서울대 수시 면접과목에 보면 인문사회계열은 경제학과의 수학을 제외하고는 어떤 학과도 사회탐구 과목을 권장하지 않았다. 전공공부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략 10년까지는 사회탐구 강사 라인업이 좋았는데 15년 개정후 역사강사는 돈 되는 공무원강의로 빠지고 이제는 거의 없다. 특히 윤사, 생윤 같이 배우기 쉬운 과목을 제외하고 비주류 사탐과목은 강사가 별로 없다. 애들이 공부를 안하니까. 게다가 메가스터디 같은 인강사이트가 EPL 같은 패스제로 바뀐 이후 완강률과 강의시청시간에 비례해 봉급을 지급하기에 이과에 비해 문과선생이 매우 불리하다


아무리 스타강사라도 애들의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숏폼에 익숙한 세대는 더더욱. 개별 강의 구매 때도 완강률이 10% 미만이었는데 패스+이적제로 바뀌면 현우진 같은 스타강사나 과탐계열 강사가 아니면 이전과 같은 수익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전에도 공부해야지! 하는 초기의 열정으로 들어왔다가 이후에는 흐물어져서 수업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익을 본 것. 수능뿐 아니라 제2외국어도 그렇고 모든 학원이 마지막 4주차 학생 출석률이 현저히 낮다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5)

14. 초중학교 때 학원에서 선행학습해서 그래도 수학은 좀 하는 것 같고 대입에도 유리하고 미래도 보장된다니 이과를 선택한 아이들.


학습스타일 및 성향적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물리,수학 vs 화학, 생물파가 갈린다. 전자는 개념, 원리, 구조, 메타인지 위주이고 공부량보다 집중도로 승부를 본다. 머리 좋은 애들은 맨날 게임하고 있다가 시험기간에 잠깐 보고 고득점을 받기도 한다. 후자는 암기할 것이 너무 많다. 해부학, 생리학은 온갖 그리스라틴어 명칭을 외워야한다

대충 전자는 놀다가 공부하는 스타일, 후자는 항상 공부해야하는 스타일이다. 아무리 머리 좋은 의대생들도 교수님 스케쥴 때문에 하루에 1학기 분량 9시간 수업하고 그날 저녁 9시에 바로 시험보는 살인적인 공부량을 따라가긴 벅차다.(실화)

문과도 알파벳(유럽), 표음문자파와 한자(동아시아), 표의문자파가 있는 것과 비슷. 전자는 문법, 구조적 이해 후자는 서예, 시각문화에 강하다.


물론 화학에 수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화1<<화2<<<일반화학<<<<물리화학, 갑자기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화2 산과 염기 단원에서 약산/약염기의 해리, 완충용액, 적정 등이 수리와 결합되며 Acid-Base Equilibria + Titration를, 산화환원 반응 기초를 배우다가 갑자기, 갈바니 전지, 전기분해 수식이, 엔트로피의 개념만 배우다가 자유에너지, 연료전지를 거쳐 Thermochemistry + Thermodynamics에 이르러 너무 어려워지기도 한다.


15. 문제는 생명과학에 있는데, 수리를 어느정도 한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는데 너무 머리가 좋은 애들이 많아서 물리, 수학에서 성적이 잘 안나온다. 대신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생명과학1을 많이 선택한다. 다행히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선택자도 많고, 대학에서도 설치학과가 많다. 17-18세기의 물리학, 19-20세기의 화학이 있다면 생물학은 21세기의 학문이기 때문. 자연계 생물학뿐 아니라 공대의 생명공학, 농대, 바이오메카트로닉스, 생태학, 뇌과학 등 빠질 곳도 정말 많다. 한때 생명계열에서 의전원으로 빠질 수 있는 루트도 있었다.


생명과학1 교과서를 펴보니 오 그래도 좀 할만하다. 1단원은 늘 과학방법론에 대한 인트로이고 2단원은 소화 배설 등 인체에 관련된 것이다. 먹고 싸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주제라 이해도 쏙쏙된다. 용어도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3단원에서 발생. 뉴런 축삭돌기에서 다들 허물어진다. 갑자기 한자+일본어 유래 한자+그리스어, 라틴어 기반 영어가 쑥 들어온다. 머리가 어질어질. 축삭돌기의 축삭은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굴대, 쉽게 말해 막대기다. axis를 번역한거다

내분비학, 면역학, 생리학, 신경학 등과 관련된 3단원은 용어가 어렵고 4단원 유전은 문제 난이도가 헬이다. 킬러문항은 다 유전이다. 개념은 다 알아도 문제가 안 풀린다. 나, 이과 잘 선택한거 맞아? 고뇌하기 시작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선택을 되돌릴 수 없으니 버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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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은 205마크입니다 사계절 1318 문고 148
조은오 지음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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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난장판


크리에이티브업계

기획자는 콘텐츠 완성 이후의 유통 전략을 잘 모름

제작자는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음

배급자는 콘텐츠 기획 의도를 이해 못한 채 마케팅만 함


IT

서비스 구조와 사용자 니즈를 파악하는 PM은 기술적 제약을 모르고

개발자는 유저의 맥락을 이해못하고 기능만 구현하고

CS나 마케팅 같은 운영팀은 구조를 몰라서 서비스 출시 후 클레임 감정노동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토스하기에 바쁨


교육

교육부(관리자)와 교사(현장 실무자)와 학생(최종 교육소비자)가 완전 따로 놀음

정책을 다루는 교육청은 커리큘럼, 평가방식, 예산분배 같은 제도설계만 하고 교사는 현장에서 교육, 평가, 진도관리, 상담하면서 제도를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 애를 쓰는데 학생은 이 두 어른의 생각을 완전 이해못함

어른들은 학생을 성장을 겪는 주체가 아니라 제도의 대상으로 파악하기 바쁨. 정책은 현장을 모르고 교사는 정책을 불신하고 학생은 시스템의 실험대상이 됨



문득 이 책이 생각남
















https://brunch.co.kr/@roysday/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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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제곧내다. 제목이 곧 내용, 즉 결론이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믿는 흐름은 실제가 아니라 측정시계나 세포노화 같은 관측자의 입장에서 발생하는 착각이라는 것이다. 시간의 실체를 부정하고 사건 간의 관계성과 열역학적 비가역성만을 인정한다. 과거만 고정되어 있고 바람이 나를 스쳐지나갈 때 현재가 느껴지며 미래는 내 뒷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리스인이나 오세아니아인의 해양민족 특유의 비선형적 시간관이나 불교의 윤회적 시간관이 현재→과거→미래라는 선형적 시간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로벨리는 시간 자체가 본질이 아닌 인간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비교되는 흥미로운 시간관이 하나 더 있다. 수학의 시간이다. 구조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주사위를 두 번 던질 때 나오는 수 중 3의 배수가 존재할 확률 같은 경우의 수 문제에서 분명 두 번 던지는 과정 중의 시간의 흐름이 있으나, 무작위 추출이라는 확률적 분석의 시간은 정지된 것으로 가정한다. 그래서 시간의 방향성이 무의미하게 설정되는데 이런 맥락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생략되거나 멈춰 있다고 간주된다. 로벨리는 그래도 흐름이 있다고 했으나 통계적 모델링에서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한편 통계학이 다루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분명한 시간의 변화와 맥락적 진화를 전제한다. 따라서 수학적으로 정태적인 모델 안에서 시간은 사라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시간성이 통계의 근간을 이룬다. 흥미롭지 않은가? 통계학자가 배우는 시간은 정지되어 있는데 통계학자가 연구하는 대상의 시간은 흐른다니. 4년 전 통계청장이 세바시에 나와 인구주택총조사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의 발달사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더 것이 기억난다. 모두가 안 하거나 모두가 하고 있으면 물어볼 이유가 없고, 애매하게 하고 있을 때 정밀한 조사를 위해 물어보는 질문들이 매5년마다 바뀌어간다고. TV가 있는지부터 반려동물이 있는지까지.


그러나 로벨리의 생각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간을 생각하는 사람의 정신을 제외했다. 물리학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구성하기 위해 필수로 요구하는 지각의 구조이고 인간 정신 내부에서만 발현된다. 둘째, 시간은 인간 언어와 이야기 서사의 도구로 만들어진 문화적 산물로 존재론이 아닌 기능적 도구다. 셋째, 시간은 생명이 출현한 이후에만 작동하는 특수한 현상이다. 하여 생명이 없는 영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기적 기억과 목적이 시간성을 창출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시간이 없고 변화의 관계성만이 실재한다는 로벨리의 주장은 오히려 관찰자 없는 수학적 우주를 상정하며 인식 주체를 제거함으로써 이론적 모순을 낳는다. 또한 열역학적 시간만을 진정한 시간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생명이나 목적 혹은 의식 등에서 나타나는 베르그송적 시간경험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는 주장을 선형적이고 시간적 언어구조로 기술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는 이론 자체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는 Ted Chang원작의 <Arrival>의 동시적synchronous 헵타포드 언어를 어떻게 생각할지. 인과관계가 없고 과현미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언어말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을 수도 있을까? 시간의 정지말이다. 문득 일본애니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디오의 스탠드가 생각난다. 더 월드는 몇 초에서 몇 분에 이르는 짧은 시간 동안 외부세계를 정지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능력이다. 이 설정은 시간의 멈춤이 물리적 실재로 구현 가능하다는 전제에 입각해있다. 능력이 성장함에 따라 멈출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의 정지 속에서 상대의 몸에 구멍을 내고 피가 튀기는 등의 변화는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리학적으로 시간은 변화의 순서를 의미하므로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디오 본인이 움직인다면 그 자체가 변화이므로 시간은 멈춘 게 아니다. 모순이다. 게다가 디오가 사람을 때려서 상처를 입히고 물체를 움직인다는 것은 운동의 발생, 에너지 전달, 분자 간 반응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간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힘=질량×가속도인데, 가속도는 시간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완전히 정지시키는 게 아닌 조금 더 유연한 모델로는 마블의 퀵실버나 DC의 플래시가 생각난다. 이 캐릭ㅓ들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극도로 높여 상대적으로 주변 세계가 정지해 보이게 만든다. 시간 정지가 아니라 시간의 상대적 인지속도의 차이를 극대화한 효과다. 이 방식은 일반상대성이론이나 생리학적 반응 한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상상이다. 상대적으로,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생명체가 그 속도를 견디며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건 비현실적이다. 공기저항, 마찰열, 시각처리, 반사신경 등도 초월해야 하기 때문. 초고속으로 주변 물체와 충돌하면 에너지 전달량이 어마어마하게 커져 현실에서는 즉사하기 십상이다.


디오 더 월드의 시간정지든, 플래시나 퀵실버의 시간지연이든 픽션에서 펼치는 상상의 나래로만 취급하기엔 아직 재미있는 생각의 실타래가 남아있다. 그래도 그 능력들을 현실가능하게feasible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타협해보는 게 좋을까?


일단 시간정지는 뇌의 처리율을 변화시키는 능력일 수 있다. 커피가 주는 효과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주파수를 빠르게 공명시키는 것이다. 왜 어릴 때는 방학이 너무 긴데 나이가 들면 깜빡깜빡할까? 작년에 왜 어제같아질까? 어렸을 때는 경부선 타고 귀향하는 길이 천년만년 같았는데 왜 지금은 눈 깜짝할새일까? 뇌에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주파수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커피가 그 주파수를 원래 리듬대로 조여 인식속도를 빨라지게 한다. 단, 5분간만. 그래서 사람들이 커피를 그렇게 쪽쪽 수혈하는 것이다. 실제로 머리가 좋아지는게 아니라 시간을 정교하게 인식하는 것일 뿐인데 능률이 좋아진 것 같은 플라시보 효과를 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뇌처리율을 높여 외부세계가 멈춘 듯 인지되도록 만드는 착각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인식의 흐름이 빨라진 것이지 물리적으로 빨라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물리적인 효과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특정공간 내에서만 시공간을 왜곡하거나 중력장을 생성하여 국소적 시간버블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수식과 이론은 생략. 아니면 최근 회빙환+시스템관리자계열 웹툰에서 상상하듯이 운영자 권한으로 시간을 편집하고 정지한다는 설정도 있다. 마치 게임에서 일시정지하고 캐릭터를 이동시킨 뒤 다시 재생하는 것처럼. 시간은 실제로 멈춘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에 개입하는 API같으 고차원적 존재가 일시정지-수정-재생한다는 급진적 생각이다. <테넷>도 리와인드라는 카메라의 기능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것이고, 멀티버스 세계관도 게임의 캐릭터 사망 후 리로드, 리플레이를 스토리로 재해석한 것이듯, 한 콘텐츠의 시간에 대한 생각은 다른 미디어에도 영향을 준다.


카를로 로벨리까지 경유할 필요 없이 시간은 절대적이며 전 우주에 균일하게 흐른다는 전제는 이미 현대 물리학에서 부정되었다. 다만 그렇다면 이제 어떤 시간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가 관건이다. 변화가 있으면서도 시간을 부정하는 주장은 개념적으로 자기모순에 가깝고 시간 없이 순서를 말할 수 없다는 언어적 한계가 있다. 시간정지나 시간지연, 다른 시간선 모두 흥미롭지만 인식주체 없는 외부세계만을 상정하는 환원주의적 시야를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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