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리고 죽음 ㅣ 연극 그리고 10
마크 롭슨 지음, 최성희 옮김 / 교유서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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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셰린의 밴시(2022), 쓰리빌보드(2017)로 깔쌈하고 맛있는 각본의 힘을 과시한 마틴 맥도나가 쓰고 연출한 <와일드 호스 나인> 보았다. 각본도 좋고 자막도 잘 번역했다.

이를테면, 사전적 의미는 공모하다는 뜻인 슬랭 (in) cahoots를 짝짜꿍하다로 적절히 번역해서 빠르게 치면서 흘러가는 자막 가운데 가장 인상이 깊었다. 아니, 이걸 이렇게 바꿨다고? 칭찬해!

실제로 말코비치 배우는 앞니가 살짝 벌어져 있는데, 약에 몽롱해져 발음이 샌다(have a lisp)는 대사가 나오고선 yesterday의 t를 f나 th로 하지 않나 계속 말을 뭉개는데 자막에선 예컨대 죽어서 죽고=듀거서 듁고 하는 식으로 술 취한듯한 말투로 잘 승화했다.

문학 독자는 기다려줄 수 있고 문장이 한 페이지에 가득 벼려져있기에 문장을 끝까지 읽을 인내심과 시간이 있으니 문장이 복문으로 길어진다.

그러나 긴 글은 빠르게 읽지는 못하니 가독성은 떨어진다. 가독성이 좋고 몰입해서 결국 팔리는 상업성을 추구하려면 대화가 많은 편이 좋다. 일부 독자는 대사만 읽기도 한다. 정무늬 웹소설작가 책의 통찰이다.

연극과 영화의 대사도 웹소설처럼 복문은 줄이고 단문 위주의 대사를 많이 넣을 필요가 있다. 사람이 발성을 하는 이상, 즉, 입으로 한 번에 한 음절씩만 발음되기에 음성단위가 선형적으로 나열되는 이상, 긴 문장은 복잡해서 전달력이 떨어진다. 글처럼 앞뒤로 왔다갔다 성수일치 문법분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작소설을 애니화하거나 영화화할 때는 반드시 각본가가 필요한 것이다. 소설의 모든 문장을 그대로 발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원작의 의도를 감안해 배우와 신에 맞게 다듬어야한다.

정교하게 벼려진 좋은 연극영화적 대사가 각본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좋은 대사는 시처럼 함축적이면서 한 호흡에 간결히 외워지면서도 그 안에 음미할만한 깊은 함의가 있다.

예컨대 마틴 맥도나는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붓을 놀렸다. 이런 문장을 들으면 한 번 보았어도 배우의 얼굴과 함께 박제되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

Do you ever get paranoid you‘re not being paranoid enough?
지금 충분히 의심하고 있지 않은 건가 싶어서 되레 불안해진 적 있는지?
(현재의 강박을 말하며, 과거의 강박을 호출해서 시간선 두 개를 겹침)

Don‘t pull rank on me. I‘ve killed people in countries you can‘t even spell.
내 앞에서 계급장 내밀지 마. 난 네가 철자도 못 적을 나라에서 사람을 죽여본 놈이니까!

단문이 깊고 짙어 각본의 힘이 느껴진다.

일견 단문을 잘 구사할 것 같은 버트란트 러셀같은 논리철학자도 <행복의 정복>에서 수식을 계속 넣어서 한 페이지에 한 문장을 구사하기도 한다. 칸트 같은 독일철학자는 말할 것도 없다. 시간을 들여 읽어야 이해가 되는 문장이다. 말이 아니라 글이여야만 뇌안에서 정보를 소화할 수 있다. MIT출신, 구글 딥러닝 엔지니어링 이사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레즈 커즈와일의 신작 <진화의 가속도>의 미주1번에는 <백년의 고독>에서 6페이지 달하는 한 문장 전체를 인용했다. 이런 문어체를 시청각 매체에서는 다 뱉을 수 없는 것이다.

눈으로 읽는 글의 복문은 영양학적으로 비유하면 담즙을 통해 유화하고 세포 내에서 재조립해야하는 느린 체내 지질 대사 같은 것이다. 깊지만 오래 씹어야한다. 반대로 입으로 뱉고 귀로 듣는 말의 단문은 단당류의 소화같은 것이다. 이해가 빠르다. 그렇다고 싸구려 설탕으로 맛을 내면 다 안다. 혹은 무늬만 설탕인, 인슐린 공회전 시키는 스테비아 감미료로 눈 가리고 아웅해도 다 안다. 누구나 단맛을 좋아하지만, 오묘하면서 건강한 단맛을 내는 건 상당한 노하우와 기술을 요한다. 그러니 마틴 맥도나의 영화를 보는 것이겠지.

그렇게 각본이 흥미로웠던 또 다른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연출작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에서 얼굴을 알린 스티브 부쉐미가 등장한다. 그의 목소리는 째진 하이톤이어 사기꾼에 걸맞아 몬스터 주식회사/대학교 시리즈에선 랜달 보그스 성우로 열연했고, 트랜스포머에선 스타 스크림으로 분했다. 얼굴은 언뜻 반지의 제왕의 뱀혓바닥 그리마를 닮기도 했다. A급 연극배우라고 생각하는 브래드 도리프인데, 영화 시리즈에선 사탄의 인형 처키로만 대중적으로 알려져있다. 사루만의 군대를 보며 감탄하는 리액션, 로한의 세오덴 왕에게 아첨하는 장면, 이 두 장면만으로도 연기의 신이 강림한 신 스틸러였다.

톰 웨이츠는 짐 자무쉬의 영화에서 늘 등장하던 노배우로,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마이클 케인경 같은 의미를 지녔지만 조금 음지에 있는 이다. 엔딩 크레딧에 보니 유타주 로케 팀이 있던데, 영화에서 주인공 크리스의 히피 형이 사는 곳은 바로 그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경계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다. 크리스는 죽으면 거기에 유골을 흩뿌려달라고 한다.

스티브 부셰미, 톰 웨이츠 말고 존 말코비치도 당연히 열연했다. <그녀her>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실험작 <존 말코비치 되기(1999)>의 바로 그 배우. 거의 무명 감독이 손에 쥔 좋은 각본에 중량감있는 배우가 탑재되어 화룡점정을 이루고 좋은 콤비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또 다른 작품은 데이미언 셔젤의 데뷔작 <위플래시>다. J.K.시몬즈의 카리스마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연출이었다.

말코비치는 이탈리아 어디에선가 남우주연상을 탔다는데 그정도로 대사 전달력, 능청거림, 감정변화, 아주 미세한 눈과 얼굴근육의 움직임 모두 일품이었다.

때는 72년 부근으로 보인다. 칠레 사회주의 맑시스트 아옌데 대통령의 하마사건이 일어나기 전인데, 그 공작도 공개문서에 의하면 닉슨과 키신저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국장 MJ 사무실 뒤에 닉슨 대통령 사진이 조총련 사무실의 김부자사진처럼 걸려있는걸 언뜻 본 것 같다.

그 시대배경에 따라 넙데데한 올드카, 콧수염과 구레나룻, 담배, 포크송, 헤어밴드가 동원된다. 채도 높은 의상이 보이는데 너무 레트로하지 않고 스타일적으로는 세련되었다. 페도라와 검은 셔츠에 빨간 넥타이하며.

케네디 암살 사건에 대한 탐구 자체가 미국에서는 하나의 추리물 장르로 성립했고 영화는 그러한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추구한다. 마지막의 라이플과 8mm카메라 정면샷.

마틴 맥도나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남성 버디의 맛깔 나는 대화가 나온다. 웨스 앤더슨도 상당히 연극적이지만 속사포의 1인칭 독백인 것과 달리 2인칭을 사용하는 대화다. 그리고 남성 버디 중 한 명은 내면의 아픔이 있고, 이랬다 저랬다하며, 대개 죽는다.

그리고 동물이 죽는다. 둘 다 고전 비극을 계승한 연극적 기법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별 의미가 없고, 죽음은 비극의 상징으로서 스토리의 중심을 잡는다. 최근 일곱 권쯤까지 나왔던 <연극 그리고> 시리즈 중에 <연극 그리고 죽음>이 있는데 상당히 괜찮았다.

이 영화와 그 책을 같이 버무려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연극 그리고 제국>이 조금 더 내 취향에 가까웠지만 말이지. 어쨌든 왜 말인지, 왜 말이 죽는지, 왜 그곳인지, 그에 대한 각 인물의 반응은 어떠한지 모두 생각해 볼 만한 화두다. 메타포와 실재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탐구해볼만하다. (<기사단장 죽이기> <1Q84> 최근 신작 <가호>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메타포와 실재에 대한 생각이 주된 라이트 모티브다)

말코비치를 여러 각도에서 잡은 얼굴을 보는데 왠지 한국배우 여럿과 겹쳐보였다. <오징어 게임>의 깐부할아버지 오영수 배우, 연세대 신학대 졸업한 배우로 <1987> 본부장 역의 오현 배우, <전우치>의 대감(쥐요괴), <짝패>의 살수<로또1등도 출근합니다> 홍대표의 김기천 배우가 모두 생각이 났다. 말코비치쪽이 이 개별 배우들의 단선적 특징을 종합하며 조금 더 키가 크고 천변만화하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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