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예일대 2026년 졸업반 학생 축하차 동문 강연 온 이민진 작가가 1989년 학창시절에 예일에 없던 한국 프로그램을 런칭하려고 애썼던 일과 기쁜 마음으로 최초로 한국사 강의를 수강했다가 인종차별적인 백인 남성 교수에 의해 중간평가F를 받았던 기억을 회고한다.
1989년 당시 유명한 일본사 전공 교수가 예일의 최초 한국사 강의를 열었다는데 구체적으로 지명하지는 않지만 높은 확률로 97년에 퇴임한 Conrad Totman이었을 것이다. 주한미군으로 54년 복무했었다는 기록도 있다. 동아시아사 전공인 백인 남성 다른 교수는 몽골사 유라시아사하는 피터 퍼듀가 있지만 08년에 합류했기에 때가 맞지 않다. 아직도 만연하지만 구미학계에 일본학이나 중국학 전공 교수가 한국을 겸해서 가르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고.
이민진은 간염보균자로 진단받아 2-30대에 간암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어 건강을 조심하기 위해 수강하던 강의 중 2개를 취소하기조차
했다는데 한국사만큼은 철회하지 않았다. 방학 때 엄마 모교인 연세대에 다녀 온 뒤로 한국을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는 의도적으로 한국계 학생 대부분에게 C, D, F를 주었다. 아무런 선행 가이드라인도 지침도 없던 상황 속에 열심히 했는데 다분히 차별적인 평가였다. 그러면서 교수왈 아시아학생은 대개 수학 과학 전공이고 역사학 에세이 쓰는 법을 모른다고 했다.
37년 후 이민진 왈 : 교수 이 씨발놈아 나는 사학 전공생이었다고 i was a history major motherfucker!
교수는 중간평가 F를 주며 코멘트에 "아이고, 내 팔자야, 뭔 말을 해(ah, me, what's to say)" 한 마디를 남겼다.
그렇게 역사학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녀가 최종 B-받고 이 수업을 계기로 많은 것을 깨닫는다. 물론 현대중국사 C+, 조각C을 포함해 다른 성적도 대부분 B였기도 했고 동아리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백도 없었기도 해서 대학원 진학은 포기하고 로스쿨에 가게 된다.
그리스인의 시간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익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이지만 개인적 경험과 인생의 중요한 결정과 버무리니 흡사 소설처럼 흡입력이 있고 개념이 진부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 한국사 강의를 얼마나 듣고 싶었고 한국에 진심이었는지는, 전혀 한국에 대한 강의가 없던 1989년의 예일대에 한국학 개설 태스크 포스를 런칭하기 위해 자기 돈으로 친구들 200명에게 편지를 보내, 친구들의 부모님으로 하여금 총장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 한국학 개설해달라고 요구하게 했던 일화를 통해 뒷받침 된다. 미국 군인 3만 5천 명이 죽은 한국전쟁은 미국사이기도 하다면서. 동기 부모님 중 한 명은 1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고, 총장에게 아주 사나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대학 아카이브에 남아있다고. 그 사료를 2달 전에 읽게 되었다고 했다. 그 결과 36년 동안 한국학 강좌가 이어지고 지금은 2번째로 인기많은 언어강의가 되었다. 개인적 건강,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실제적 노력, 동기 등이 합쳐져 심지어 수강생 전공조차 몰랐던 교수에게 부당하게 아시아인 혹은 여성이라는 편견으로만 평가받은 억울한 감정이 전해진다.
https://youtu.be/n6XStr7ErSg?si=cO6O3IgpfstnWxv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