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일당을 구조조정해야한다면 어떨까
말도 안돼! 는 맞지만, 한국이 걸어 온 길은 그 어불성설의 카오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견 외국에서는 한국이 다이내믹하고 변화무쌍하며 매번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난다고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만큼 익숙한 옛 것이 없어지며 정붙일 공간도 믿을 사람도 없어진다는 걸 뜻할 것 같다. IMF로 구조조정이 일회성이 끝난 것이 아니고 08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사모펀드,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어쩔 수가 없다는 자본의 논리, 윗선의 지시에 따라 동고동락했던 사람을 자르고 버리고, 종국엔 잊으며 변동과 감축의 역사가 지속된다. 매년 대규모 자본의 결정에 따라 F&B 트렌드가 바뀌고 매장이 생겼다 없어졌다하고 간판과 인테리어를 교체해 새단장하니 상전벽해같은데 내부의 모순과 진통은 시스템을 하방에서 떠받치는 자들이 견디고 있다.
운좋게 살아남은 자는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부각되고 모두 그 알 수 없는 운을 바라며 오징어게임처럼 살아가는 것일지도
역설적으로 일본에 여행가는 사람들은 지금은 잊혀진 아날로그 감성에 취하러 가는데 10년, 20년 전과 비교해도 거의 바뀌지 않는, 한국과 닮았으되 다른 풍경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한국은 너무 바뀌는데, 일본은 안 바뀐다고. 그때 그 노포 그대로 있다고. 그 사장님 노부부 그대로 있고,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강남 센트럴 지하만 해도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다섯 번 이상 대규모 리모델링을 거쳤는데, 분수 앞 영풍문고가 있을 때도 유니클로가 있을 때도 수제버거가 있을 때도 있었고 코로나 후로도 두 번쯤 모습이 바뀌었다. 그러니 홍대 성수는 말해 무엇하랴. 임대료 인상으로 모습을 감추거나 밀려난 아기자기한 개인 까페와 베이커리가 얼마나 많은지. 반면 도쿄나 오사카는 말할 것도 없고 소도시는 시간과 함께 거의 그대로 늙어간 것 같다. 물론 토라노몬힐즈나 아자부다이힐즈처럼 구역 전체를 재개발한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극히 예외 아닌가. 일본 경제정책을 보아하니 10년 후에도 풍경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잠시잠깐의 엔저와 값싼 항공권, 일본의 관광부흥 보조금으로 인해 일본에 다녀 온 이들이 지금 2배 이상 비싸진 가격으로 잠깐 못 가더라도 그곳은 그대로 있을 것 같다. 변수는 쇼와태생 노사장님들이 7-80대 이후 이제 돌아가실 시기라 후계자를 못 찾으면 아예 가게문을 닫는다는 것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없애느니 모두가 조금씩 십시일반하자, 하는 것이 일본의 디플레정책이었다. 서민물가는 낮게 유지한다. 초기에 시설을 갖추고 버블기에 대출금을 갚은 이들은 자기 노동력만 투입되면 먹고 살 수 있으니 가게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매일 출근하는 주인들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상은 이어진다. 자동차나 기계처럼 점점 감가상각되지만 단기간에 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적정 교체기간은 거의 만료되었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그대로 간다. 그렇게 사람도 풍경도 늙어간다. 그런 구조적 요인 속에 우리가 여행가서 보는 익숙한 풍경이 완성된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새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면 기기 구입비, 인테리어비 수많은 비용이 생긴다. 약간의 자본금만 있으면 시작은 할 수 있고 모회사에서 빌려주기도 하는데 어쨌든 단기간에 대출금을 회수해야하니 물 들어올 때 노저어야한다. 망하면 고스란히 빚이다.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소비자는 옛 가게보다는 마케팅하는 새로운 가게를 찾아가기에 이런 분위기는 강화된다.
거칠게 비유하면, 일본은 늙은이의 멱살을 잡고 있고, 한국은 젊은이의 멱살을 잡고 있다고 할까. 일본은 너무 바뀌지 않고 한국은 자꾸 바뀐다. 일본은 경직되지만 안정적이고 한국은 새롭지만 불안정하다. 일본은 사람을 줄이는 대신 모두 가난해지는 길을 택하고 한국은 일부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버리는 길을 택한다. 대개 버려진 이들은 2중대로 가거나 외국으로 가는 것 같다. 프로선수 선출이 되지 않으면 코치로, 피티강사로, 군대 부사관으로, 무용수가 되지 않으면 필라테스로, 외국유학으로 등등.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였어도 상관없다. 더 우수한 사람이 있다. 학력이 높아 서울대를 나왔어도, 유럽유학 석박사에 밀리고, 이들은 다시 미국유학석박사에, 이들은 또 다시 아이비리그졸업 미국조교수출신에 밀리는데, 다시 돌아가 서울대라는 한국대학 졸업자는 미국 명문고교 출신 아이비리그 학부생에 다시 밀린다. 이정도면 새로 환생해야하는게 아닌가? 부모가 빵빵해도, 더 부자, 더 권력자 친척라인이 있으며 어느 정도 먹고 살아도, 금수저가 있고, 금수저는 다이아몬드에 밀린다. 신흥 인플루언서가 어느 정도 조회수가 나와 만족하고 있어도 더 높은 인지도를 지닌 레거시 연예이이 등판하면 순식간에 어텐션을 흡수해 급속도로 성장해 양민학살한다. 한국인은 학벌부터 핸드백까지 티어표를 만들어 계급화하고 서로 계급전쟁을 한다. 그런 상대평가의 끝이 없기에 악순환의 반복이다.
다시 원피스로 돌아가 보자.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가게든 흔한 일이다. 처음에는 외환위기 때문에 함께 으쌰으쌰 해보자하는 종신고용 조직문화가 붕괴되었다. 그 붕괴는 이제 폐허가 되어간다. 처음에는 국가위기니까, 외국 윗선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었는데. 이후에는 자본이 시켜서 잘하던 사람들을 갈아치우고 그간의 노력과 경험이 폄훼당한다. 요즘 AI로 인한 인력감축은 오랜 역사가 있고 최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한건 항상 묵묵히 진심을 다한 이들이 먼저 갈리고, 중앙과 가깝게 줄을 선 이들이 남는다는 것이다.
원피스 일당 중 필요없는 이 셋을 버려라! 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혼란이 발생한다. 어떤 기준으로 버릴 것인가? 누가 나가도 상처가 된다. 제일 쉬운 건 현상금 기준이다. 의술은 중요하지만 선장은 알아서 잘 살아나니 버린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팀기여도나 공격력 기준으로 버린다고 할 수도 있다. 우솝이나 로빈이 나갈 것이다. 여기서 면피성으로 공격력 삼대장 중 하나인 상디가 버려지는 시나리오도 있다. 가장 최근 합류한 자기 발로 징베가 나갈 수도 있다. 나미는 공격력이든 팀기여도든 최하위지만 원작자의 최애기 때문에 즉 윗선에서 간택했기 때문에 버려질 수 없다. 프랑키 장군이 메리호와 합체해서 장부상에는 없어진걸로 요식행위를 할 수도 있다. 아무리 공정하려고 해도 이런 온갖 자의적 기준이 사람들에게 내상을 준다. 누군가 나간 팀은 이전의 동지의식은 없고 이윤이라는 목표 하나만 남는다. 선장이 없어지는 시나리오는 없다. 아무리 무능력하더라도 CEO나 대표는 남는다. 나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한국이 겪어 왔다고 생각한다. 나간 이는 말이 없다. 상처받은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살거나 다른 조직에 들어간다.
혹은 밀짚모다 일당은 대기업이기 때문에 없앨 수 없고 휘하 산단이 없어질 수도 있다. 배리어배리어 열매의 그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수도, 소인족이 없어질 수도 있다.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 프리랜서, 계약직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일본은 밀짚모자 일당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거다. 대신 모두가 고통을 나누겠지. 사반세기 넘게 함께 한 동료를 내 손으로 자를 수는 없다. 자연적인 요인으로 사라질 수는 있어도, 즉 늙어 죽을 수는 있어도. 대신 어느정도 부족함이 있어도 장기간 품고 간다. 지금 당장 퍼포먼스를 보여주는게 중요한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일당의 동지의식은 선택적 정의이기도 하다. 보편적 정의는 아니다. 우리 편이면 끝까지 보호한다. 내 사람만 챙긴다. 다른 쪽은 적이다. 로나 키즈처럼 잠깐 동맹할 수 있어도 결국 나와 너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있다. 어쩌면 일본의 수많은 섬이 제한된 인구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존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항상 거기있던 사람,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며 드러나지 않던 사람을 몰아내고, 지금 당장 문제가 보이지 않으면 당분간 더 버티라고 하며, 나간 사람은 애써 잊고 해외에 버리며 익숙한 풍경을 없애며 살아 온 한국이 밀짚모자 일당 중 누굴 버릴지 생각해본다. 누구든 버려지고 누구든 남겨지고
털면 무조건 이유는 만들어질테다 휘하산단으로 좌천이 행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