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1등이 되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드라마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보다, 돈이 생긴 이후의 삶의 변화에 주목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로또1등이 되어 13억이 계좌에 생기니 자신감이 붙어 회사생활을 주도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었다는 얼개인데, 한국 평균 로또 당첨금 13억이 강남에 아파트를 사기에도 애매하다는 데에서 기인했다. 로또 시작 초기에는 어떤 경찰관이 400억도 당첨되었다고 하는데 해외와는 비교가 안된다. 2022년엔 영국에서 2890억이 되었다고 하고, 미국 복권 다음 당첨금은 9000억원이라고 한다. 이정도면 정말 평생 써도 모자랄만한, 인생을 바꾸는 금액이다.

공팀장이 회사에서 받는 연봉 기대 수익을 합하면 30억이니, 최소 30억 가치의 인간이라는 대사가 울림이 있다. 나아가, 팀장이 회사 안에서 운영하는 예산도, 버는 금액도 13억 이상이다. 그러니 로또1등이기 이전에 로또1등 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개인에게 13억이라는 뒷배가 생긴 건 유의미한자신감을 주니 그 결과 매출 1420% 증가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도 달성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드라마 안에서 정팀장(오대환 배우)도 로또1등이 된 셈이다. 후배인 공팀장의 눈부신 성과로 승진에 밀릴 것 같자 자기 회사를 설립해 빌런이 된다. 그런데 그 회사가 등에 업은 해외 기업에서 끌어 쓴 돈은 13억 이상이다. CGM이 한국시장 장악하자는 정팀장의 의견때문에 낸 위약금이 매장마다 5억씩이다. 그러면 정팀장도 사실 이면에 로또1등에 당첨된 사람이기도 하다. 나아가, 대표이사 직함이 생겨 자기 사무실을 갖고 직원이 생기고 전무와 겸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늘 무시받아 자존감이 낮고 쭈구려 있던 정팀장은 돈보다 이런 지위상승이 더 로또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일확천금이 생겼을 때, 갑작스럽게 지위가 올라가고 상황이 달라졌을 때 변화를 보면 정팀장과 공팀장의 캐릭터가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그 캐릭터의 차이가 인생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공팀장은 계좌에 13억을 모셔두고 계속 출근한다. 일을 더 열심히 한다. 돈을 쓰는 데서 쾌락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정팀장은 입던 옷이 바뀌고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며 룸을 대절한 파인 다이닝에서 밥을 먹는다. 그 결과 정팀장은 몰락하고 공팀장은 승승장구한다. 공팀장의 경우는 돈이 생겨서 사람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화를 내면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잘릴까 두려워서 못했던 것을 더 대담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잘 나가게 된다. 반대로 돈이 생겨서 돈을 쓰는 데 집중하는 사람은 돈에 의해 몰락한다. 그러니 로또1등 당첨해서 인생역전하고 돈을 펑펑 쓰는 장면 묘사가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가 아닌 것이다.

원래 부자가 된 이후의 삶보다 부자가 되기 전까지 돈을 얻는 스토리가 더 흥미로운게 정설이지만 이건 부자가 된 이후가 더 재밌다.

보통 큰 돈을 얻어 인생역전하는 영화는 여럿 있는데 돈이 추동한 인간의 변화와 획득과정연출이 관전포인트다.

예컨대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가 있는데 빈민가라는 대조와 퀴즈쇼 연출의 긴장감이 더 재밌는 영화다.
쇼생크 탈출(1994)는 탈옥 후 간수장의 비자금을 챙겨 멕시코로 가지만 감옥생활과 비자금 강탈 부분이 더 재밌다.
마찬가지로 최동훈 감독의 케이퍼 무비 시리즈 범죄의 재구성도 마지막에 형사 속여 돈을 얻고, 도둑들에서도 태양의 눈물을 손에 넣는데, 결말의 반전까지 가는 생생한 연출의 리듬과 속도가 더 재밌다.
캐치미이프유캔도 결국 잡히지만, 중간에 수표 위조해서 해외에서 돈을 펑펑 쓰는데, 어떻게 창의적으로 돈을 위조하면서 <리플리>처럼 신분 위장하는가가 흥미로운 영화다.

또 하나 문득 생각이 드는 것은 한국인은 부자가 되면 대부분 해외에 가서 돈을 쓰는 것 같다는 점.

로또1등도 출근합니다, 와 접근이 비슷한 듯한 영화는 의외로 켄 로치다.

켄 로치의 명작 중에 엔젤스 셰어와 닮았다. 엔젤스 셰어, 천사의 몫이란 위스키 제조시 오크통에서 2%는 어찌되었든 증발되어 사라진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동네 사고뭉치인 주인공 로비는 사회 봉사 도중 만난 친구들과 우연히 위스키를 먹게되고 시음회를 갔다가 아주 귀한 위스키가 경매에 나온다는 걸 알게된다. 아이가 막 태어났는데 뭘 하려고 해도 시작할 자금이 없고 범죄 이력 때문에 취직도 되지 않는 그는 손버릇 나쁜 애와, 사오정처럼 멍청한 애와 함께 퀼트를 치마처럼 두른 어수룩한 하일랜더로 위장해 위스키 공장까지 걸어가서 위스키를 탈취해 돈을 마련하려한다. 100만 파운드(17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가치의 위스키고, 최종 경매 결과 115만 파운드(20억)에 코넥티컷에서 온 미국인이 모스크바 전화 의뢰인을 이기고 가져갔다.

로또1등이 되어 한화로 13억이나, 영국의 17-20억이나 금액도 비슷하다. 더 중요한건 캐릭터의 마음의 지향점이다. 여느 영화라면 위스키통 전체를 가져가 일확천금으로 인생역전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몰래 잡입한 위스키 공장에서 각 사람을 위해 4통만 빼냈고, 호스에 있던 것도 다 돌려주고
코르크 마개도 잘 잠갔다. 뒤에 반전연출로 두 병이 사라지는데, 남은 두 병 중 한 병만 팔아 10만 파운드(1.7억)을 받고, 남은 한 병은 은사에게 준다. 115만 파운드에서 2%만 취한 셈이다. 딱 천사의 몫 엔젤스 셰어 만큼만.

그리고 로비는 실수한 팀원에게도 돈을 엔분의일로 나누고, 갓난쟁이 아이와 아내와 함께 일을 하러간다. 그러니까 4천여만원만 가지고 간 것인데, 집보증금에 일을 하기 위한 착수금 정도만 필요했던 것. 승자 독식하지 않고, 경매인은 경매인대로 위스키를 가져가고, 다 해피한 엔딩이었다.

요컨대, 공은태에게 로또1등이나, 로비에게 4천만원이나, 이미 자기에게 있던 무언가를 확장해 준 매개물이며, 하고자 했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준 촉매제였던 것이다. 정팀장에겐 허영이었을 뿐.

같은맥락에서 독서가는 더 많은, 더 비싼 책을 읽으며, 미술가는 물감을 사고, 전시를 보는 자는 해외를 가고, 스타트업은 엔젤투자를 받아 서비스를 런칭하고, 만화가는 필선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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