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게 읽었지만 압도적이라니, 심사위원의 평이 그정도인가? 싶긴하다. 과하게 일방적으로 칭찬만하는 주례사 평같아 신뢰가 가지 않고, 누구는 A는 B가 아니고 C에 가깝다, 같은 표현을 쓰는데 요즘 챗지피티가 쓰는 말투라서 곤란하다.


흡입력이 좋다. 술술 읽힌다. 일단, 스토리는 뒤에서 쫓아오는 타임라인 때문에 속도감이 붙는다. 3억 빚을 3개월 안에 갚아야한다는 줄어드는 모래시계와 관찰기록 1주, 2주하며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타임 시퀀스, 그리고 수해로 인한 급박한 전환까지. 재일과 수아가 같은 목적(물웅덩이)를 추구하면서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있기에 영원히 협업할 수 없다는 설정도 인상깊다. 그런데 원인 규명 및 확인이 바로 해결로 이어지며 기승전에서 너무 급마무리해 용두사미다. 마치 퓨즈가 꺼지며 잠이 들듯이 끝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 드라마화가 되기에는 구멍이 많다. 강남 클리닉센터를 운영하다 빚을 지고 구급센터 계약직으로 전락한 의사와 로봇관리자 두 캐릭터 밖에 나오지 않아 세계관이나 배경이 얕아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저자의 배경이 전문적인 문학 교육을 받지 않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꼭 어떤 교육을 받아야 훌륭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물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인도네시아인 수기안토, 베트남인 하, 네팔인 삼성, 미얀마인 등이 나오지만 개개인의 특성과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드러내는 캐릭터라이징이 덜 되어서 정말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잠을 등가교환해 노동만 한다는 설정은 이해하고 있으나, 비몽사몽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아의 잠 묘사 의식을 한국어로 완벽히 알아들을 수 있을까? 또한,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는데 해결은 구급대원과 로봇관리자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고, 총매니저나 시큐리티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뒷 부분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이스가 주어진 인물은 혈청 확인을 외주받은 과거의 인연인 민석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스타워즈 트루퍼스 정도의 NPC 같이 밋밋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시스템의 노동최적화를 위한 주파수가 필로폰 맞은 듯 잠 안 자고 노동하게 하는 궁극의 원인이라면, 감염 브로커는 왜 나온 것일까? 이 복선은 깔끔하게 회수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주목만으로 이미 한겨레문학상이 지향하는 점은 현명하는 획득했다. 깨끗하고 밝은 세계가 아니라 강남 뒷골목 시술의 명암, 지방물류센터에 전락한 사람들의 뒷 이야기는 시사적이다. 하청과 재하청, 김해사랑상품권으로 지급 같은 아이디어도 좋다. 나는 남자의 무지 위에 나의 거짓을 쌓았다, 라든지 군데군데 좋은 표현이 있지만, '노르스름하다'는 두 번이나 나왔고, 스타카토식으로 짧게 치고 가지만 탁월한 어휘력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아쉽다. 아울러, 1인칭 소설로 묘사와 대사로 진행하면서, 관찰 일지 같은 공문서 형식이 개입되 뜻밖의 글맛을 배가 시킨다. 중간에 예상외의 뜬금포지만 수아의 편지도 마찬가지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고 다양한 형식의 효과는 좋았다.


나아가, 컨베이어 벨트의 노동분류작업자 뿐 아니라 채혈하는 의사의 노동의 리듬과 노동자의 손에 대한 주목은 훌륭했다. 대개 이런 류의 소설에 없는 SF적 터치가 가미해 익숙한 듯 매력적인 킥을 주었다. 정확한 주사기 명칭, 과학 실험, 혈청 분리와 생화학 설명은 글 안에 잘 습합되어 있다. 일부 문과 출신의 작가들이 겉으로만 배워 글의 문체와 과학 설명이 따로 겉도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정말 이런 실험 프로세스를 잘 체화한 사람이 쓴 느낌이다. 그러나 시스템 속에 자기 착취하는 개인이라는 기존의 이론 이상으로 AI시대에 인사이트는 옅다. 목표 함수에 충실해 자기 보존을 위해 셧다운하는 기계는 여전히 스스로 의식이 없는 이전 세대 컴퓨터 모델이고, 의식이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윤리적 관계까지 한발짝 더 나아간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인상은 우수한 학부논문 정도로, 문제의식은 좋은데 덜 디벨롭되고 살짝 아쉽게 영글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심사위원은 너무 과한 평을 하는데, 출판시장도 안 좋고 대박적으로 매출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좋게 좋게 말하는 게 요즘 트렌드인 것 같다. 슈퍼밴드 같은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에게 후한 평가만 내리는데, 괜히 트집 잡아 시청자와 참가자 양쪽으로부터 욕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일지도. 나도 별점은 5점 주었다. 원래 성적 매길 때도, 심사할 때도 코멘트에 수정사항이 많다면 점수는 나이스하게 주는 게 매너이기에. 그런데 원래 잘 될 학생, 잘 될 작품일수록 더 나아지라고 애써 말을 하는 것이지, 아예 가능성도 없다면 무시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2026-10-16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을매일씁니다 2026-10-1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리가 있는 말씀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