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변화를 갈무리하고 내년의 유행을 예측하는 트렌드 서적 중에 선언자처럼 메시지성이 가장 강한 책이 송길영의 시대예보나 김난도라면, 여러 필진이 참여해 다양한 자료와 팩트에 기반한 진단이 소구력을 높여주는 책은 카이스트 미래전략이다. 매일경제신문사의 서적도 비슷. 개인이 쓴 책 중에는 최근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이나 중국 AI 미래 지도가 가장 좋았다. 물론 문체가 건조해 읽으며 신나지는 않지만 이런 글이 지적 허영이 없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논할 수 있고 1차 사료로부터 배움이 되는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책이다. 책이나 음식이나 고영양 건강식이 자극적인 맛은 없는 건 당연.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끝까지 읽었는데 마지막에 삼남매를 둔 삼성 파견 직원 가정에서 일하는 쓰레기 청소업자 위훙 아주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장녀는 서울대 박사과정, 차녀는 홍콩대 졸업, 막내 남동생은 대입 준비. 선전의 부동산이 폭등할 때 여러 채 구매했다가 코로나 시절 격리로 인해 홍콩으로이주하며 팔아서 천문학적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아주머니도 한국어를 배우며 친해져 월급도 1100위안(그것도 많았는데)에서 1만 위안으로 올랐고 그 부동산 열쇠를 맡기고 관리시켰다고 한다. 한국어를 할 때는 중국어와 달리 더 부드러워진다는 부분, 서울이 선전보다 깨끗했다는 점, 부산에 갔더니 분리수거를 종류별로 나누고 씻어서 버렸다는 점 등에서 한국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보였고, 흔히 언급되는 한국 화장, 성형 같은 스테레오타입은 적었다.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을 이르는 숭군다, 들나물의 일종인 뽀리뱅이, 꽃이 펑펑 터진다, 팀장이 말을 반복하는 게 마치 맷돌 돌리는 거 같다 같은 엄마의 구어체 표현은 번역자의 2차 창작의 결과 더 맛깔나게 번역되었다. 고맥락적 어휘가 맣아 난도가 높은 번역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만큼 재미도 있었겠다 싶다. 품은 많이 드는데 지적 희열은 자신에게만 귀속되니, 꽤 훌륭한 A급 역자가 아니면 못할 작업이다.
그러나 역자는 그렇다손 치고, 이 글을쓴 저자 장샤오만은 사실 엄마의 생생한 표현을 채집한 것에 지나지 않고 자신만의 문학성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영국 불세출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잡과 미화원의 노동구조를, 독일 사회학자 로자의 소외과 가속으로 미화원의 삶의 양상을 일부 진단하지만,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 충분히 전문적인 인류학적 민족지를 기술한 것은 아니다. 엄마의 보이스가 한껏 뭍어나는 좋은 인터뷰집을 꾸려 중국의 밑바닥 계층의 시선으로 사회노동 발전사를 쓴 것이다. 자신의 보이스는 감춘채. 이는 현명하면서 제한적인 선택의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학원을 다시 생각해본다. 최근 읽었던 이 두 책 모두 정말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술자리나 카페에서 언급될만한 일상적 사람의 가십거리를 모아놓은 것 같다. 그 자체로 이미 어떤 사회적 군상에 대한 소셜 코멘터리가 된다. 아메리칸 학원의 문학성이 훌륭할까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경성 최대의 천재 영문학자 최재서의 손녀 수잔 최의 플래시라이트쪽이문학적으로는 더 감각적인데 접근은 좀 어렵다. 두껍고 조금 어렵고. 이민진의 이야기는 쉽다. 웹소설 같기도 하다. 자기복제적 캐릭터나 디킨스적 세례가 논란은 있을지언정 드라마화 하기엔 적절한 것 같다. 자녀 교육, 유학과 이민사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에 대한 당대성 있는 이야기라 몰입감이 높다. 장샤오위안의 책은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고향없음의 허무가 곁들어진 무진기행과 더 닮았고, 이민진의 책도 약간의 공허가 느껴지긴 해서 위대한 유산이 자꾸 생각난다.
공교롭게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도 다리병 난 미화원 엄마를 둔 모녀이야기로 시작하고, 아메리칸 학원도 개포동에 사는 삼 남매 교육에 대한 엄마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도 엄마의 중증 알츠하이머 투병기로 서문을 열고, 박희병의 엄마의 마지막 말들도 엄마 간병기가 전체인 이야기인데, (이 둘은 모자관계), 역시 자식과 분리불가능한 엄마 이야기로 시작하는게 글의 흡입력을 높여주는구나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