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20주년전 <우리의 여름에게> 다녀왔다. 26팀의 단체전이다. 각 작가마다 뻣뻣한 컬러마분지로프로필과 작품설명을 인쇄하고 이를 DIY, 즉 이케아 가구를 알아서 조립하듯이, 스스로 접어 만드는 회색 종이파일에 수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각 작품의 조형을 단순화해서 전시장지도에 작가명과 함께 그려넣어 어떤 작품을 보았고 앞으로 어떤 작품이 남았는지 쉽게 기억나도록 했다. 영민한 감각의 큐레이팅이다. 출품 작가 수가 많은 단체전일수록 전시장을 거닐며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뒤죽박죽 헷갈리기 마련인데 이런 상징성 강한 이모지가 관객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게 하고 이전 작품의 특징을 정확히 기억하도록 이바지한다.
계속 글이 밀리고 있는 관계로 일단 이 글부터 빨리 쓰고 넘어가자. 26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상적이어서 쓸 내용이 많지만 일단 위에서 DIY를 언급한 김에 남다현 작가 한 명만 글을 배설한다.
남다현, <2008년 7월 12일 청구3차 106동 507호> 2017-2026, 혼합재료, 가변설치, 경기도미술관
작품 사진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전시장에서 실물을 보아야 작품이 스티로폼 등으로 조악하게 만든 물성이 느껴진다. 높은 완성도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아우라가 아니라, 전혀 반대 측면에서 저가형에서 느껴지는 허술함이 있다.
사실을 토대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만들었으되(리메이킹), 의도적인 허구성을 드러내 사물을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게하는 소격효과를 준다. 이 작품 페이크네! 이거 어디서 본듯한데, 확실히 실재는 아니네! 하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이미지의 재현(불가능성)문제를 매우 선명하고 직설적으로 전하는 작가의 의도다.
레퍼런스로 DDP, 타데우스 로팍, 아트선재 등지에서 본 톰 색스나 모빌의 알렉산더 칼더가 떠오르기도 하다. 톰 색스도 합판으로 나사의 최신부품을 불완전하게 재현하는 브리콜라주 기법으로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공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는데, 남다현 작가는 이를 한국적 토양으로 옮겨서 한국의 일상적 풍경과 물건을 재현하는데 노력을 경주한다.
학예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적절하고 좋은 글이다.
˝대상이 지시하는 바는 대단히 구체적이며 고증적이지만, 재현된 표면에는 작가의 의도적인 조악함과 허술함이 드러난다.˝
˝소환 방식은 과거를 완벽하게 복원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왜곡되고 유실된 기억의 틈새를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실천이다˝
남다현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인식한 것은 2022년 제주현대미술관에서였고 그때는 제주 고속도로 표지판을 리메이킹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선 알루미늄호일로 만든 것 같은 지하철 개집표기, 보증금 환급기를 보았고, PS Center에선 환전소와 그림책을, 2025년 한옥 테마 단체전이었던 사비나미술관에선 고양이와 함께 툇마루 일부를 만든 작품이 있었다. 비슷한 갈색 고양이가 이번 경기도미술관에서도 한 번 더 보인다. 그리고 이번은 아파트 내부의 광경이다.
별로 많지 않은 책장 속에서 예림당 출판사의 초등 학습문화 와이 시리즈가 눈에 띈다. 게임기가 어지러져있고 전혀 학구열이 높은 분위기가 아닌 집에도 전과처럼 와이 책 시리즈가 이렇게 많이 구비되어있다. 돈을 이렇게 많이 벌었으니 티웨이항공사를 구매한 것이 아닌가.
직관적이고 이해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디테일을 하나씩 관찰하며 음미하는 맛이 있다. 전혀 이런 물성으로 복제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콘센트, 닭다리가 특이한 질감을 준다.
실재와 실재에 바탕을 둔 사물의 재현이 묘한 어긋남.
그런 작품의 방향성과 작가의 여러 정보가 합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것일 수도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추측해본다.
작품은 실재하는 사물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보자면
한국이름은 남다현인데 영문명은 다훈(dahoon)으로 되어있다.
미대생이 아니라 미술사학과를 나왔다. 실기가 없고 인문학 계통인 미술사학과는 미술대와 전혀 다르다. 자연계열과 공학이 다르고, 물리천문이, 고고미술이 한 집 두 살이를 하지만 사실 다르듯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학을 나왔고, 캐나다는 미국과 같은 앵글로색슨의 나라 같지만 프랑스어가 공용이며 총기가 없는 등 차이가 있다.
토론토대를 졸업했는데, 캐나다의 수도는 모두의 생각과 달리 토론토가 아니라 오타와다.
몇 가지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올해 7월 말 BB&M과 전속 계약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갤러리의 설명은 이렇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알렉산더 칼더, 백남준 등 미술사적 거장들의 대표적인 모티프를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로 재구성합니다. 익숙한 예술적 아이콘은 이 과정에서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형태로 다시 등장하며,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흐립니다.
이러한 재료와 형식의 전환을 통해 남다현은 미술사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온 권위와 위계에 질문을 던지고, 예술적 가치와 정당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살펴봅니다.
나아가 남다현은 ‘걸작’이라는 개념을 시대와 문화의 소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작품을 통해 이미지가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생산되는 오늘날, 작가는 창작과 복제의 의미를 다시 질문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작업은 작업재료비는 매우 높게 들지 않는 반면, 이해가 쉬워 관객접근성이 좋고, 작품 방향성이 명확하고, 자본주의 비판이나 이미지 재현문제 등 여러 이론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 범용성이 좋다. 무엇보다 노동집약적이다. AI시대에 인간적인 것을 찾는 이들의 가장 유력한 대피처는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부각되는 것들. 이진법에 기반한 전자신호에 의해 쉽게 복제되지 않는 것들. 그런 의미에서 남작가의 작품은 미래적 의미도 크다. 그저 문제는 이 모든 걸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제작해야하는 것이고, 그에게 시간이 즉 화폐일 것이다. 노동집약적 작품은 결국 시간이 가장 큰 문제다.
언젠가, 10년쯤 후에 중견작가가 되면, 국공립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 거대한 전시장을 다 채울만한 양은 충분히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