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조숙진전에 다녀왔다. 설치될 때 한 번 보고 추후에 한 번 더 갔다. 방위명이 붙는 서울시립미술관은 각 위치별로 특성이 다르다. 남서울은 조각, 건축, 서서울은 퍼포먼스, 북서울은 윗층은 현대예술(마라맛), 아래층은 어린이특화(순한 맛)하는 식으로. 평창은 아카이브, 창동은 사진. 동서울이 없는데 만약 생긴다면 제4니 제5니 하는 예술의 구분법에 따라 만화가 생기려나.

구벨기에 영사관을 리모델링한 남서울미술관은, 1층은 권진규 상설전이고 2층이 기획전이다. 1년 전만 해도 삐걱삐걱거리던 계단을 수리하기 위해 잠시 문을 닫고 수리해 지금은 상태가 양호하다. 오디움은 2년 쯤전에 잠시 예약창 닫고 뚝딱거려본다고 하던 그 초고가 오르골에 대한 소식이 감감무소식인데, 아마 보수대상과 수준이 달라서겠지.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는 도가적 음양과 허적 개념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빈 나무 액자 프레임 218개와 세 칸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보게 배치된 토템 150개
가 양적으로 시각을 지배한다. 이 액자 작품은 2010년 스위스에서 작업한 <노바디(2014)>인데 비슷한 모티브를 차용한듯한, 다양한 프레임에 다수의 액자 작품을 올해 상반기 창동서울시립사진미술관 3층에서 보았다.

존재-비존재, 인간-비인간 같은 모순이 정반합을 거쳐 빈 공간이 물질 너머의 공간, 부재가 빈 공간이 되고 비존재의 자리가 되어간다. 이런 동양적 사유는 동양적 맥락에선 충분히 이해되지만 영어 해설을 읽을 때 잘 전달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빈 공간을 목재의 틈으로 구현한 점은 흥미로웠다. 합판, 목재, 인천 굴업도의 어구, 드럼통 등 폐기물을 사용해 생태적 사유를 나타내며 해당 물질을 취득한 공간에서의 작업을 영상으로 기록해 퍼포먼스로 전환한 점도 영리하다.

43분짜리 교차로가 큰 스크린에 상영되는데 브라질 해안가에서 십자 나무를 꽂았다가 클라리넷 연주자가 등장했다가 밤에 다 태우는 느릿한 영상이다.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는데 집에 돌아와서 볼리가 없다.

마치집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데 억지로 학원수업을 가고 시간과 돈을 써서 스카에 가는 것처럼, 아무리 온라인에 영상이 제공되어 접근성이 좋아도 미술관의 전시실이 아니면 특히나 이런 퍼포먼스 영상은 끝까지 보기 힘들다. 영화관과 달리 정시상영도 아니라 중간부터 보게되는 경우가 많아 나중에 머리 속에서 이야기(란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은 내용을 재조립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https://vimeo.com/49269795?fl=pl&fe=sh

하지만 특별히 기승전결도 없고 그저 반복수행하는 예술작가의 영상작품을 앉은 자리에서 다 보았을 때 정서적으로 환기되는 무언가가 있다. 전시서문이나 남의 리뷰나 소셜미디어 사진에서 볼 수 없는 클리나멘이 있다. 미세한 움직임, 디테일 같은 것들.

마지막에 10분 남짓한 영상이 네 편이 있다. 이것도 다 보면 작가의 세계를 한결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은 글로 전달하기는 참 어려운 법이고 보지 않은 자를 설득하긴 배로 어렵긴하다. 굴업도도, 니카라과도, 채플도 모두 이례적인 더위에서 작업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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