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썼지만 동일 집단 속에서는 집단 외부를 호명하지 않는다.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동일한 서울의 학교 개강날에서는 안녕 나 남한 사람이야라고 자기 소개하지 않지만 뉴욕에서는 I‘m from South Korea라는 말을 뱉는다. 균등한 지역단위는 말할 수 있다. 서울 어디 살아, 용인 살아

이런 소속집단의 체감크기는 상대적이다. 고령화 인구소멸 지방에선 나 고창, 영월 사람이라고 안하고 읍내 최씨 아들이라고 할 것이다. 영화 호프애선 성애(정호연)가 다친 해술 어르신을 학교 임시치료소에서 돌봐 주며 자신을 방앗간집 광순이 딸로 소개한다.

같은 지역단위에서도 다양한 집단이 존재하는 경우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서울, 송도와 제주의 국제학교처럼 국적 인종 문화 배경이 이질적인 사람이 모여있는 클래스에선 자연스럽게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 아이덴티티에 민감해지고 관련 담론을 습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혼혈이란 무엇인가. 문화와 국경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매일 눈을 마주치는 한 소속집단 안에 이질성이 있어야 친숙해진다. 한국어에 능통한 프랑스계 세네갈인이 영어로 대서양 삼각무역에 대해 설명하고, 증조부모가 연해주에 강제이주당한 카레이스키로 자이니치 엄마와 일본어를 쓰는데 전화로 교사로 은퇴한 우즈벡 할머니랑은 러시아어가 더 편한 교환학생이 중국인 친구와 일본으로 여행가서 한자 전파시기에 따른 오음, 당음 등 음독의 다양성에 대해 논한다랄지..

균질적인 집단성 안에 녹아 있는 자가, 이질적인 타자를 마주하지 않았는데도 그 외부를 상상할 수 있다면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은 천재적 선구자이자 외톨이다. 왜 저래, 쟤 좀 특이해, 생각이 남달라,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해? 좀 편하게 살아, 같은 말을 들을 거다. 서울 학교에서 서울사람, 남한사람라고 자기소개하는 것처럼.

나는 플라스틱시대를 살아
인류세사람이야. 우주식민지시대 초반이지.
그러니 오디세이에서 맷 데이먼이 청동기시대가 끝나간다고 말하는 것은 특이한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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