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독서경험상 한국출판시장에서 나온 우리말 단행본은 책의 2/3지점을 넘어가면서 오타나 편집오류가 나온다.

미리듣기 1분 안에 풀청취나 구매를 결정하도록 후크를 전진배치한 케이팝의 C-A-B-C구조처럼 작가와 편집자도 도서의 앞부분에 흥미로운 내용을 배치해 구매를 유도하는데 일단 이미 잡은 물고기에게 신경을 끄게 되니 뒷부분은 상대적으로 힘을 빼는지도 모르겠다. 마감에 시달려서 그럴 수도 있다. 카페인 한 잔의 효용은 백 페이지까지뿐이고, 2/3 넘어가면서 쓴 이와 가꾸는 이의 집중도가 떨어지나 보다. 오타와 편집오류는 대부분 성인독자들이 읽다 지쳐 나가떨어져 안 읽는 구간에 숨겨져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나

예를 들어
문학동네 시부야의 초급반 p261 Freindly나 p23한 동안, 은 눈을 의심했다. 대기업 맞지?

을유문화사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엔 권투선수가 권수선수로 되어있었고

2천페이지 넘어가는 문예춘추사의 셜록홈즈 통합본에선
p606 분확실한 사실은
P620 놓게습니다
가 있어서 순우리말인가 했다.

메디치미디어의 모두를 위한 반도체 특별 과외 p349에선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글을 복붙했을 때 자주 발생하는 자간 오류가 있었다. 처음에는 의도한 효과인가 했다.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익의 에이아이 버블이 만드는 부채의 종말에선 빅 사이클이 박 사이클로 되어있었다.

이제 가물가물한데 해외저자가 쓴 비커밍 김정은의 번역서에는 김정은과 김정남을 혼동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인트로와 에필로그만 읽는 자도 있기에 책의 후미에 오타가 있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삼백페이지 책이라고 치면 70-90%에 해당하는 210-280페이지 구간에 오타가 많다. 이는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서 잘 발견하기 힘든 오류다. 레오스트라우스는 고전저자는 2/3지점에 정말 말하고 싶은 말을 숨겨두었다고 했는데.

왜 우리말 단행본이냐면 영문이나 일문단행본에선 오타를 발견한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책의 만듦새가 좋다. 물론 영문의 경우 내가 주로 학술서를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자신의 학적 권력과 명예가 결부되어 있는 글은 정성을 다해 수십 번 읽기에 거의 오타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다. 소명출판의 국문학 박사논문 관련 서적이 대부분 그렇고 성균관대 출판부 지의 회랑도 그렇다. 글항아리도 좋다.

그렇지만 한국은 책이 빨리 만들어지고 한국어의 과학성에 힘입어 가독성이 좋아, 읽는 자도 빨리 읽는다. 오타가 있어도 큰 장애물이 아니다. 표음문자는 표의문자 독해에 비해 달려가는 정도로 빨리 읽게 된다. 빨리 나아가는 자는 주변 사물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다.
일일이 한자에 읽는 표기를 달고 복잡한 한자의 횟수를 검토해야하는 일본어 출판시장의 노동자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이만저만 아닐거다. 물론 그만큼 전문성도 매우 높겠다. 그네들의 한자 이해도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겠다. 물론 한문종주국인 중국의 수준은 더 높겠고 한국이나 일본이 모르는 한자의 용례를 더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 책이 일단 가볍고 짧은 편.

문자가 어려우면 지식노동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할 일이 많은데 허들이 높고 커뮤니티가 폐쇄적이 된다. 문자가 쉬우면 일반인에게 고밀도의 지식이 잘 확산되어 일반인도 어느정도 지식노동자의 수준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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