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는 장편이 기대되는 작가다. <혼모노>같은 무속풍 단편도 흡입력이 있지만 대산문화 26년 여름호/인비인에 수록된, 한의학 학습한 탕약제조사 반려 피지컬 AI 옵티머스를 다룬 <고>를 보면 장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비유하면 반짝이는 크리스탈에 강한 빛을 쏘이면 멀리 퍼지는 것과 같다. 영화, 게임, 시사, 대중문화 등에서 레퍼런스가 보이는 착상 소재가 충분히 길게 디벨롭될 수 있어 보인다. 역량도 보이는데 중간에 급히 마무리한 느낌이 강하다. 그녀에게 관건은 시간이다. 가끔 웹툰/웹소설 댓글에서 보이듯이 가둬놓고 군만두 주면서 매일 글을 쓰게 하자.


김초엽은 단편이 좋다. 거의 중단편만 보았고, 중단편만 좋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가 이미 완성형이고, 장편으로 억지로 늘리는 건 좋지 않을 듯하다는 인상이다. 마치 이미 50호 캔버스에 유화가 잘 칠해져있는데, 고무줄 늘이듯 상하좌우로 잡아당기면 색채가 옅어지고 구도가 망가지는 것과 같다. 이 말은 작가로서의 역량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적절한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 중견작가가 되면 어떨지 모르는 일이고 지금까지 읽은 작품의 경향성으로 봐서는 그렇다. 예를 들면 한중 6명 작가의 단편 앤솔로지 모음 <다시 몸으로>의 수록작 <달고 미지근한 슬픔>을 읽으면서 장편을 솜씨좋게 요약한 다이제스트 글로 깔끔하게 쳐낸다 생각이 들었다.


길게 길게 쓰려면 어느정도 스토리가 호방하게 치고나가는 맛도 있고 일관성도 있어야하는데 그 제왕은 아직까지 황석영이다.


예소연은 주기적으로 글을 받고 싶은 정기구독형 작가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톺아보면서 시대와 호흡하는 글을 계간 잡지처럼 주기적으로 읽고 싶다. 무난하고 무해하며 하찮은 반려펫같아 몽니를 부릴 때도 귀엽다. 매일과 함께 걷는 글이다.


최근에 나온 한미중 탐독 시리즈의 이병한은 대기업회장이 좋아할 웅혼한 문체를 구사한다. 일필휘지로 동서양의 정치경제 역사문화를 종횡무진하며  시대의 병을 진단하고 솔루션을 선언하며 영어와 한문을 특이하게 조합해 사용한다. 그런 부류의 또 다른 최근 스피커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송길영이 있다. 송길영은 조금 더 분석적이고 미시적이고 독야청청하지는 않으나 고유한 문체가 있다.


자기만의 영한문 조어를 사용하면서 시대상을 분석하는 옛 대표 저자는 고 이어령이 생각난다. 그외 여럿 있으나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맥을 짚는 글의 특징상 유통기한이 지나면 색이 바래보이기도 하고, 행보가 썩 좋아보이지 않아서다. 고 이어령 교수가 언급하기 무난하다. 기호학과 문화상징, 포이에시스.


그런데 이병한의 글은 대기업 회장, 투자자는 시원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학자들은 팔짱을 끼고 볼 것이다. 전혀 다른 주제를 커넥팅닷하는 만큼 유비가  창의적이나 거칠고 탄탄하게 뒷받침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론 머스크와 코스모스 사피엔스=무궁아

밴스는 가톨릭 성당에서 신학의 미래를 각습

마가의 문화전쟁은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위정척사운동

테크노-유신은 미국판 흑묘백묘론, 뉴-아메리카의 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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