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금-일 주말이나 방학 때는 국중박과 마찬가지로 공교육에서 책임논란으로 포기한 현장학습의 외주를 맡게 된 사설교육업체가 데려 온 초딩무리의 넘치는 급식력 때문에 시끄럽고 번잡해 다소 방문이 꺼려지고 평일 오전이나 전시 끝물이 방문하기에 가장 적기다.

그렇지만 개인 관람객이 조용하고 쾌적한 관람환경을 원하는 것은 사적 관점이고, 공적 관점에서 자라나는 청소년인구가 역사문화에 관심을 갖고 빈번히 접촉하면서 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국공립미술관의 한영중일 전시서문 번역을 비교하면 흥미롭고 배움이 많이 된다.

한성부와 Hanseongbu와 번체인 漢과 간체인 汉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데 (성부는 같아서 생략) 다소 다른 느낌이다. 특히 일본어에서 한나라 한과 한국 한韓이 같은 칸이라 오묘하다.

한 언어로 배운 지식정보를 다른 언어로 새로 배워 접근 노드를 신규로 추가할 때 낯섦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익숙한 지명을 다른나라 발음으로 익히는 것처럼
고라니를 영어로 물사슴(워터 디어), 일본어로 키바노로, 중국어로 하록(河鹿 hélù 흐어루) 혹은 장(獐 zhāng 쫭)이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런 단어끼리의 차이뿐 아니라 문장 단위에서도 재밌는 점이 많다. 특히 학술적 사실을 열거해놓은 건조한 평서문이 아니라, 학예사가 문단의 끝이나 글의 말미에 살짝 끼워넣은, 사람의 목소리가 묻어나는 일기풍의 감각적 표현을 번역할 때 언어마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각 섹션마다 한 구절씩 골라보면

1. 마치 오늘날 회사에서 주무 부서를 따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일화는 과연 어디까지가 한성부의 관할 구역이었는가
This incident, much like disputes over which office or division is responsible for work today, provokes questions about the jurisdiction of Hanseongbu.
영어는 비슷한데
중일은 표현방식이
약간 다르다. 중국어 원문의 한자를 의도적으로 살려서 거칠게 번역해본다.

이 일화는(这段轶事 일사 한자 특이하다)
이 일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공사에서 자주 보이는 어디가 부문의 주책인가 하는 쟁론을, 그리고 하나의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한성부의 관할범위는 구경(도대체) 어디인가?

일본어는 이렇다.
마치 현대의 사회에서 담당부서를 둘러싼 의론같은 이 에피소드는 과연 어디까지가 한성부의 관할구역이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영어는 이벤트를 의미하는 인시던트, 한국어는 일화, 중국어는 일사, 일본어는 에피소드다.

2. 이처럼 다양한 기관이 모여있었으니 그야말로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Required to wear so many hats Hanseongbu always had a lot on its plate. (접시에 든게 많다)
(Being required ... , S V
=As S was required to .. , S V
분사구문 생략구조다)

중국어는 이렇다.

대량의 사무가 한 개 기구에 집중되었고.. 여차하여(그와 같으므로) 다양의 직능(职能)이 한 개의 관서에 회취하니(회이취, 집중되어 모이다 汇聚) 진실로 가히 말할 수 있기를 설령 삼두육비라 하더라도(팔 세 개 있는 신통력과 대단한 재간을 가진 이라 하더라도 sān tóu liù bì) 불충분했을 것이다.

일본어는 이렇다.
다양한 역할이 하나의 기관에 집약되었기 때문에 마치 신체가 얼마나 있어도 부족했을 바쁨이었다.

3. (그 속에서) 바쁘게 일하고 때로는 동료들과 어울려 하루를 마무리하던 사람들

(the site at which) people wrapped up another busy day with their coworkers.
-랩업, 바쁜 하루를 포장하고 감싸서 마무리하는 뉘앙스

在这里,有人忙碌处理事务,有人和同僚一起结束一天的工作(이곳에서, 어떤 이는 업무(사무)를 바쁘게 처리하고(망록처리, 處와 处는 같은 자인데 전자는조선한문이나 현대대만정체가 생각나고 후자는 현대대륙중국어가 생각나는 시차적 감각이 있다), 어떤 이는 동료와 함께 하루의 일을 묶는다(결속한다=마무리한다)

일본어
거기서 바쁘게 일하고, 때로는 동료와 한숨돌리며(식발 이키누키息抜き)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
-이런 표현 상당히 세카이계 애니스럽고 카도카와에서 나오는 문학의 구절같다.

4. 바쁘게 돌아가는 오늘의 서울
Modern Seoul with all its hustle and bustle
-모던 서울

如今车水马龙的首尔
-차수마용(츠어쉐이마롱)의 서울 (차가 꼬리를 물고 다닌다)

慌ただしく動く今日のソウル
-일본어는 분주하게(황망하게 아와타다시쿠) 움직이는 금일의 서울

이렇게 번역을 비교해보면 각 언어가 적절하다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달라서 재밌다.
처음에 기초를 배울 때는 몇 년이고 노력을 해야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오면 여행에서도 자동으로 공부가 되는 학습효과가 있다. 운동선수가 매일 잠깐 트레이닝해도 실력유지가 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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