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공구서가 나왔다.

초서를 읽기 위해 자형과 자소의 중간 변환과정을 촘촘히 보여주어 외국 알파벳 쓰기 연습하듯 공부할 수 있는 한문 공구서다. 안온한 마음으로 명상하듯 꾸준히 수행해 뒷페이지의 전문을 스스로의 힘으로 읽을 수 있게 되면

성북/대구 간송, 국중박 서예실, 예술의전당 서예관 (+가끔 글로벌 세아, 경기도 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을 방문할 때 보이는 초서 작품을 감상할 준비가 된다. 글자이자 이미지이자 수행성과 명상성이기도 한 서예를 해독하는데에서 순수한 지적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소-쇼(草書)를 쿠즈시(くずし)라고도 부르는데 반듯한 해서체가 붕괴된 것처럼 흘려 써서다. 고문서에서 근현대 편지를 읽기 위해 필수적인 학습이다.

초결백운가는 초심자를 위한 서적이라 글자당 용례가 하나뿐이다. 중급으로 넘어가면 사전이 필요한데 동경당출판사(東京堂出版)에서 나온 코다마 코-타(児玉幸多)선생의 쿠즈시해독사전(くずし字解読辞典)이 좋다. 사진 참조. 용례가 풍부해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초서를 이해하면 어설픈 간체자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이 다소 줄어들 수 있다. 言을 초서대로 축약해 번체/정자說(설)을 간체자说로 만든 것이다. 원글자를 과하게 축약해 버린 것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은 대륙 중국어를 쓸 때는 느끼지 못하고 홍콩과 특히 대만에 가서 축약하지 않은 번체를 볼 때 솔솔 생긴다. 여기가 현대인가 진한명청시대인가 기분좋은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데 원래 복잡한 자형을 알고 간소화된 버전을 아는 것과, 심플한 버전만 쓰다가 오리지널을 아는 것은 차이가 크다.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낫다. 오리지널을 알고 종개념으로 내려가야한다. 추사 김정희의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서체가 위대한 것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온갖 금석문을 다 섭렵하고 해서와 예서를 반듯하게 쓸 수 있는 수준에서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드로잉과 구상회화를 다 말끔하게 그리다가 큐비즘으로 넘어가 기하학적으로 조립한 듯한 그림을 그린 피카소처럼 말이다.

예컨대 간체자만 보다가 번체를 볼 때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글자는 이렇다. 뒤는 대만에서 쓰는 버전이다.

헬프, 돕다를 이르는 빵쮸帮助의 도울 방자가 원래 幫다.

가게 주인을 뜻하는 라오반老板의 널빤지 반을 이체자로 써서 老闆이다.

공장을 말하는 꽁챵工厂이 배울 때는 획이 없어서 외우기 쉬운데 공장 창의 厂은 원래 廠이니 심하게 줄였나 아니면 이게 맞나 고민하게 된다. 한국한자로 쓰기특급이다.

최근 교유서가에서 개정되어 나온 두툼한 <한자 문명의 무늬>를 쓴 고전번역원 연구위원 윤성훈(미수 허목 고문 서예 연구로 박사)은 그 서문에서 한국보다 일본 한문 콘텐츠가 풍성하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그 말에 매우 동의한다. 그래서 한문, 초서 사전은 일본서적의 지적밀도가 높다. 그러다가 일본 서예작품도 감상하면 지적 주파수가 넓어질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은 한문을 포기하고 한글 전용으로 가게 되며 디지털로 빠르게 질주했고, 일본은 현상 유지를 추구했기에 아날로그 관성에 계속 머물러 디지털 전환이 어렵게 된 측면이 있다. 일장일단이다. 한편 간체자의 취지는 초서의 원리를 참고해 획수를 대폭 줄여 대다수 중국인구의 문맹을 해소하려는 것이었으니 인구 규모가 큰 나라로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대만이나 홍콩은 작은 인구였기 때문에 교육수준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어도 이렇게 흘려쓰는 서체가 있는데 나스탈리크nastaliq라고 한다. 그치들도 붓을 쥐는 법부터 힘의 강약을 조절법에서 점 위치까지 모두 신경쓰는데 본질적 차이는 도구에서 온다. 털을 사용한 둥근 서예붓이 아니라 가로 사선이 긴 줄기붓인 칼람을 사용한다. 오래 전 원어민 선생에게(이름은 محسن이었다) 기울기를 이르는 마일(میل), 길게 늘이는 곡선 카시다(کشیده), 60도 펜각도 자비야(زاویه), 점 누크타(نقطه), 안착점 시르시(سرير) 등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배웠다.

아래 영상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E6bbyVnU0I

박사 학위는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자격 요건인 라이센스로서 의미가 있고, 그 라이센스를 활용해 아카데미에 자리를 잡고난 후엔 학위 논문 주제를 넘어 중소기업 사장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 과제를 발굴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어쩌다보니 한문학, 국문학으로 박사 받은 이가 외국 잡마켓에서 한국학으로 자리를 잡다보니 전공과 관련없는 Kpop 트렌드를 티칭해야하는 경우도 있고 담당교원이 적어서 언어, 역사, 사회, 문화, 정치경제, 북한까지 다 가르쳐야하기도 한다.

한국 안에서도 한문교육은 어려운데 외국에서 가능할까? 싶지만 동아시아학 안에서 중국일본학과 콜라보하기 좋다. 오히려 유치원생 가르치듯이 쉬운 클래스로도 굉장히 수준 높아보일 수 있다. 그럼 Super Easy Cursive Writing Class는 어떨까? 초결백운가는 유용한 교재로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러시아어나 아랍어의 필기 연습 과정처럼 기본 한자에서 초서로 이행하는 획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세분화하여 제시하는 단계별 교수법(Scaffolding)을 활용해 수업을 디자인한다. 창의적인 작문이 필요없다. 주어진 것을 따라하면 된다. 才는 재주 재로 명사로서는 skill, talent, 부사로서는 only, just인데 이 글자는 이렇게 이렇게 변해서 초서 구부려서cursive 쓰면 이렇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문초서 사료의 실제 용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막 뭔가 성취감이 차오르고 대단한 것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겨우 3획인데 말이다.

이런 교수법은 마치 무용이나 필라테스 클래스에서 매 수업마다 명확하고 쉬운 핵심 동작을 체득하게 하여 수강생에게 성취감과 동기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대단히 기술적으로 난이도 있는 안무나 동작을 알려주거나 시합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서 부담이 없다.

회화도 아니고 작문도 아니다. 순수한 어떤 반복된 동작이 주는 희열을 제공한다.

아마 이혼하고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지닌 미국 백인 중년 여성층을 타겟으로 한 프리미엄 문화, 예술 교육 콘텐츠로서 매우 현명하고 차별화된 전략이 되지 않을까. 미네소타나 애리조나나 요즘 캘리에서 이주 많이하는 텍사스쪽에 커뮤니티 칼리지, 주립대 평생교육과정으로도 아주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중국인보다 쉽게 원본이 이렇다 발음은 이렇다 혼내지 않고, 혼내지 않고 차분한 일본인보다 영어는 더 발음 좋은 한국인이 만드는 니시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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