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20주년 아카이브전시 중에 미술관 설계를 맡은 건축가 렘 콜하스의 스피치에서 exploit(착취하다)라는 단어가 있었다. 저지대를 매립하고 자연을 개발하며 살아 온 네덜란드인의 문화에서 익스플로잇은 영어의 operate, make use of에 가까운 뉘앙스다. 캡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다고 잘 번역했다.

언어에서 이런 가짜 친구 혹은 거짓 짝말(false cognate)문제가 종종 있다. 겉모습은 같은데 내용은 다른, 말하자면 어휘의 사이비다. 같을 사 다를 비, 같은데 달라 공자도 경계했다.

네덜란드어 exploiteren (엑스플로이터런, 운영, 활용하다)를 그대로 사용한 렘 콜하우스는 영어의 착취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아니라 운영 관리라는 중립적 의미로 썼다. 일견 같은 라틴어 어원을 공유하는 두 낱말이 발음은 살짝쿵 같은디 문화지형에서 배양된 뉘앙스는 정반대다.

이런 비근한 예시는 영스 한일 영러 영프 등에서도 생각해 보았다.

영어의 마침내 finally는 스페인어로 últimamente (울티마멘테, 최근에)인데 다시 영어로 ultimately라고 하면 궁극적으로, 최종적으로 같은 무거운 종결감이 생긴다. 번역을 왕복할 때 정신 똑디 차려야하는 이유다. 거짓 짝말 사이에서 의미 이동(semantic shift)을 하다가 평행세계로 가버리는 수가 있다.

한국어의 괜찮아는 일본어 平気 (헤이키)다. 담백하게 문제없다, 아무렇지 않다 정도의 일본어 일상 표현을 다시 한국어식 한자 감각으로 평상시의 기운이라고 직역해버리면 갑자기 동양철학이나 무협지 같은 기기묘묘한 분위기가 생긴다.

잘 지내?에 대한 러시아어 대답 중 하나인 нормально (나르말나, 그럭저럭)는 실제 회화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데 영어 대화에 그대로 옮겨
How are you?
Normal
이라고 하면 기계적이고 사회성 없는 인물같이 들린다.
노멀은 영어로는 소소다. 노멀의 대체어는 обычно (아븨치나, 평소처럼, 늘 그렇듯)이다.

프랑스어 actuellement (악튀엘망)은 영어 actually처럼 사실은이 아니라 현재는(currently)에 가깝다. 알파벳뿐 아니라 한자도 마찬가지다. 중국어 勉强 (미엔창, 억지로 하다)는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부정적 뉘앙스인데 일본어로는 성실하게 공부하다 벵쿄다. 마치 같은 씨앗이 파종된 기후와 토질에 따라 다르게 발아하듯, 단어를 공유하더라도 각 문화적 토양에서 배태된 정서마저 공유하지 않는다.

다언어 화자들은 이런 섬세한 번역 뉘앙스 차이를 언어 간 의미 간섭(cross-linguistic semantic interference)혹은 화용론적 전이(pragmatic transfer)로 체감한다.

사전적 의미로서 어휘와 더불어 그 언어 공동체가 오랫동안 축적한 언어습관에 민감해지고 신조어처럼 언어가 해당 언어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내적 화학적 변화를 취득하는 것을 매섭게 캐치하게 된다

단어의 외관이 같아도 속모습은 다를 수 잇고 국경과 기후를 건너며 성질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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