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플에 올라 온 <위키드 포굿> 보았다. 이제 알겠다. <위키드>와 한 세트였다. 두 묶음으로 된 4시간 반짜리 영화였다. <위키드>의 도입부와 <위키드 포굿>의 엔딩이 수미쌍관을 이룬다. 두 영화를 다 보아야 복선들이 다 해명된다.

오즈의 마법사 원작의 네러티브는 그대로 둔 채 주변부 인물을 두텁게 기술했다. <위키드 포굿>에 가서야 원작의 도로시가 지나가는 컷으로 네 번 등장하는데 (컬러 변환 입성, 지하실 갖힘, 양철맨등과 만남, 마녀 퇴치) 이렇게 원작과 연결점이 흥미롭다. 비유컨대 원작에 기댄 큰 아치형 서사라고 할까, 백도어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양철맨,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 등의 캐릭터가 왜 나왔는지 설명된다.

악역으로 나온 양자경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조수미를 생각해본다. 성악 실력 하나로 유럽 클래식 문화의 심장을 재패하고, 동양/여성/빈곤국/학생의 사중 차별을 이겨낸 그녀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이다. 빌런으로 타자를 상정하는 것이 제국 내부의 주류 관객에게는 편하다. 이런 점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 메카닉 소년만화에서도 서양 기술의 정점인 변신 로봇을 타는 것은 순수한 소년이다. 미국 수퍼히어로문화에서 세계와 우주를 구하는 것은 미국인이다.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만달로리안과 그로구>에서 뱀형 외계인인 헛은 아랍인을 타자화한 오리엔탈리즘 캐릭터처럼 보인다. 빌런은 제국 혹은 자국 외부의 인종적, 문화적 타자며, 양자경도 조수미도 그런 타자의 역할을 떠안은 대신 메이저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얻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창의성보다는 주어진 문제를 기계적으로 빠르게 풀도록 훈련받는 한국교육의 실패를 생각해보았다. 만약 한국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비화를 이렇게 오리지널하게 그려냈으면 리뷰어들에게 욕을 진탕 먹었을 것이다. 원작의 아이디어는 그대로 하되 외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형식이어야 인정받았을 것이다. 문학을 읽고 자기생각을 적도록하는 미국교육에서 가능한 성공작으로
표준을 직접 생성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이 오리지널한 작품에 대해 인정할 수 있다. 그런 풍토에서 그동안 없었던 창의적인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완성된 꼴로 가꾸어 유통배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작권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인지하고 있다. 한국은 공식을 적용해 유제를 단시간 안에 풀도록 훈련받아와, 시판 재료를 잘 가공하는 걸 삐딱한 레시피보다 선호하며 도면을 보고 위탁생산하는 케이스 메이킹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보다 당장 이윤이 되어 선호한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매직의 구현범위와 당대적 이해다. 엘파바(신시아 에리보)는 그리머리라는 전통적 염력 및 키메라 변형 영창 마법, 골드브룸은 디젤 펑크의 기계공학, 마담 모리블(양자경)은 기후 조종으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비현실적 능력이 상상되는 중에 아리아나 그란데는 아름다운 인플루언서로서 대중의 마음을 얻고 관심을 집중시키는 능력을 보인다. 오늘날에는 대중 노출과 어텐션 리텐션도 마법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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