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설화에 기반했는데 영어로 쓰여진 다른 소설을 난쟁이 똥자루로 만드는, 영어로 말하면 dwarfing하는 책이다. 문학적 은유와 표현의 수준은 훨씬 좋다.
그런 표현이 난무하는 인트로에 놀라 샀다가, 아니 이 표현을 어떻게 영어로 쓴 거지? 하고 원서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남극의 중성미자 관측소의 입자물리학, 전후 한국, 구미호, 심청, 에밀레종, 나무꾼과 선녀, 바리데기, 디아스포라 한인여성의 이주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교직한다. 300페이지를 꾹 참아 책의 줄거리와 정서를 천천히 따라가야 어떻게 이 테마가 엮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p424 p478 p555 같은 부분이다.
2021년에 뉴욕타임즈 북리뷰에 언급된 책인데 22년 애플TV 창립작으로 선정된 파친코 드라마 열풍에도 불구하고, 태 켈러의 호랑이가 덫에 걸렸을 때, 김주혜의 작은 야수들의등 다른 책이 우후죽순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5년이나 걸렸을까?
그 이유는 한국설화에 기반했으되 한국적 정서와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진의 파친코는 영어로 썼지만 한국인의 감성에 기반한 책이다. 정체성 찾기, 결국 주류에 동화되지 못한 체념이 네러티브의 얼개로, 어떻게 세월의 모진 풍파를 딛고 살아남았는지 생존서사가 중요한 메시지다.
그러나 엔젤라 미영 허의 <우리, 메아리처럼>은 미국인의 감성에 기반한 책이다. 이민자로서 미국쪽에 더 동화되었다. 편가르기하여 소속을 나누는 것은 아니고 어떤 편이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웨덴 표현, 북유럽 설화, 개그 코드, 스타워즈 비유, 혹은 주인공들의 대화가 미국드라마, 현대미국소설의 정서에 가깝다는 뜻이다. 예컨대 p386 같은 이론 물리학자들은 약쟁이 개그 같은 부분은 미드, 미국현대소설의 감성이지만 한국적이지는 않다. 이를테면 이창동 감독의 <버닝>의 스티븐연 캐릭터가 보여주는 이민자 정서다. 그러니 미국평단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고 한국어로 번역은 더뎠을 것이다. 번역자는 정말 고생 많았다.
또한, 이민진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이주한 옛 할머니의 이야기를 썼고, 이민자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에 더 투영했다. 한편 엔젤라 미영 허는 p367 p403 같은 부분에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최대한 자기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니 이민진의 <파친코>는 <국제시장>의 스토리에 익숙한 한국인이 읽기에 편하지만, <백만장자..>나 <우리, 메아리처럼>은 유학파, 이민자가 아니면 힘들 것이다. 그것도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는 3세는 공감이 어렵다. 이제 막 이민간 사람은 살아남기 바빠 서점의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어렸을 때 한국 기억은 아주 조금있는 상태에서 미국에서 중고등 교육 받고, 이민1세대 부모와 갈등이 있는 2세 정도여야 이 책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 독자층이라고 생각한다. 북미 감성에 익숙하고, 영어로 소설을 읽을 수 있는데, 한국도 완전히 잊지 않았다. 이렇게 독자의 풀이 좁은 편이다.
아울러 미국식 유머와 문화적 클리셰, 물리학 어휘, 고전설화 같은 허들이 제2차 창작으로서 번역의 난도를 훨씬 높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설화가 등장하는 파트는 정말 한국인이 쓴 것처럼 다듬어져 있어서 원서의 영어표현은 어땠는지 궁금하게 만든 것이다. 만약 미드를 재밌게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동진의 다음 이 달의 책에는 언급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