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넷플 일드 <지옥에 떨어집니다>에 대해 쓰면서 <국제시장>같이 한 사람의 생애를 두고 현대 경제성장사를 일별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는데 댓글에 <파친코>가 생각난다고 누군가 달았다. <파친코> 보려고 마음먹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보았다.


<파친코> 시즌2는 아직 보지 않았다. 시즌1는 2022년 상반기에 나오자마자 애플tv에서 보았는데 UI가 완성되지 않아 플레이하는데 기술적 결함이 조금 느껴졌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티빙에서 볼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흥미가 가거나, 먼저 알게 되거나, 구할 수 있는 버전부터 보는 편이라 가끔 시리즈 순서가 뒤죽박죽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다 보고나서 재음미하면서 내용을 재구성한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예컨대 아오야마 신지의 기타큐슈 3부작을 거꾸로 새드베케이션(2007)→유레카(2000)→헬프리스(1997)순으로 보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코케르 3부작을 섞어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친구의 집은 어디에는가?(1987)순으로 보았다.


현대미술 전시장에서 정시에 상영되는게 아니라 계속 상영되고 있는 영상작품을 볼 때와 비슷하다. 중간에 시작해서 결말을 보고 도입을 보게된다. 모든 작품을 첫 시작을 기다리다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앉아서 일단 보기 시작한 후 나중에 머리에서 짜맞추는 경험을 하다보니 형식적 순서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파친코 시즌2를 보기 전에 시즌1을 복습했다. 시즌1을 보는데 1-3의 서정적 연출과 달리 4화에서 갑자기 연출적 감각이 달라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2022년 이후 다시 보니까 디테일이 보인다. 지난 4년간 매일 최소 영화 1편을 보려고 노력을 경주해 2천 편 이상의 경험이 쌓이니까 예전과 달리 눈에 밟히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고한수가 선자를 벽에 밀치며 위협하는 세 컷,성악가 죽음 연출, 배 안의 촬영구도, 지하 교회의 유리창에 밖의 아이들 모습이 일렁이는 광원효과 등 갑자기 4화에서 너무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왜 감독이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면서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감독이 바뀌었다. 1-3화는 <콜럼버스> <애프터앵>을 연출한 코고나다였고 4-6화는 저스틴 전이라고 한다.


특히 4화의 마지막은 특이하다. 사실상 미국 인디 성장영화의 연출적 문법을 차용했다. 중요한 계약을 파토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비를 맞으며 달리다 도쿄 지하철 앞 버스킹 밴드의 락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춘다.


아마 미국관객은 이 장면을 정서적 해방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연출이라 생각하겠지만 동아시아인은 너무 서구식 감정 투영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드라마에서는 캐릭터는 늘상 참고, 감정을 삭히고, 울고, 침묵하고, 책임을 끝까지 견딘다. 그런 전근대적 감성을 상징하는 선자 엄마와 선자의 모습이 나오다가 갑자기 현대 도쿄에 사는 출세 지향적인 솔로몬이 할머니의 마음과 교감한 후 계약을 망치고 거리로 뛰쳐나가 신체를 해방시켜 역사적 리얼리즘보다 현대적 개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의례, 문화, 분위기에 억압된 존재가 잠시잠깐 자기 몸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다. 이 장면에서 특히 감독이 한국-미국 두 문화권을 오가는 디아스포라 미국인 시선을 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은 너무 미국적이고 어색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미국인은 한국적이다가 드디어 미국 인디감성이 나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파친코 원작(영어) → 드라마 시즌1 → 파친코 원작(우리말) 의 순서로 보았다. 그리고 이제 드라마 시즌1을 한 번 복습하고 시즌2를 본다. 이민진 작가의 어메리칸 학원도 곧 나온다고 들어서 때마침 잘 되었다.




그리고 솔로몬이 할매집에 가서 보는 책 이름은 ローレンバコール 私一人 Lauren Bacall의 By Myself로 주제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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