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개봉한 <군체>보았다. 다소 바빠서 일단 빠르게 노트만 작성하고 게시
1.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공존한다.
새롭고 창의적이 좀비 연출이 좋다. 쿠키 영상 없고 무섭지 않고 잔인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고어하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서스펜스도 덜하다. 상업화하고 대중성을 맞추기 위해 뾰족하게 창의적인 부분을 일부 깎아내고 도려낸 흔적이 보인다.
대신 감독의 시그니처 연출과 플롯은 타협하지 않았다. 사회 제도 비판, 구원 없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같은 연출적 특징 말이다. 공포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인 밀실에서 문 열어줘가 한 번 나오기는 하는데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과연 러닝타임이 2시간이어야했을까 할 정도로 늘어지는 점이 있다. 그러나 늘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정보량이 많고 복선을 다 회수해야하기 때문에 디벨롭하는 절차상 연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 영화는 군체(무리)를 다루는 사회생물학과 미생물의 전염학이라는 아이디어를 차용해 좀비 영화를 만들었다. 이과들은 재밌어 할 아이디어가 많다.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생물학의 특징이 드러난다. 주인공도 조연도 빌런도 모두 박사급이다. (브레인스토밍이라 캐릭터명이 아니라 배우명으로 표기)
빌런인 구교환도 생물학 박사고, 좀비에게 뜯어먹히는 체인스 바이오 대표이자 구교환이 품는 앙심의 대상 김종태도 생물학 박사고, 미국 교수 이직 면접 앞두고 일진 구하다가 허망하게 퇴장하는 고수도 생물학 교수고, 전지현도 권교수고 신현빈도 공교수다.
왜냐하면 생물학은 전공을 살리려면 기본이 석사급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가장 학문의 외연이 넓어지고 세부분야도 분자, 세포, 뇌과학, 유전학, 생태학, 의공학 등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는 생물학은 학부수준의 지식으로는 택도 없다. 랩실 경험이 필수다. 박사를 마치고 창업해 대표를 할 수도 있고 연구원이나 교수를 할 수도 있어서캐릭터 기본 설정이 모두 박사급이다.
3. 초반 체인스 바이오 컨퍼런스 프레젠테이션에서 황색점막구균이라는 단어를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끝나고 찾아보니 정확한 학명은 황색망사점균이다. 코점막이나 피부농양을 시각화한 점막이 좀비 연출 미술 소품으로 활용된다.
4. 전지현이 베를린에서 보여 준 좌안을 살짝 안으로 몰아 짓는 불쌍한 토끼 표정이 세 컷 나온다. 사실 생물학 교수를 연출하기엔 너무 예쁜 여배우상이다.


5. 영화 <얼굴>에선 바로 그 제목 얼굴을 담당하는, 정말 못생겨서 소름 끼칠 정도이 그 얼굴을 담당했지만 뒷모습 밖에 나오지 못한 신현빈은 감독이 미안했는지 작정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얼굴을 수십 컷 이상으로 많이 보여주었다.
6. 구교환은 냉소적인 아싸 캐릭터를 매우 잘 표현했다.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어딘가 모난 점이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빌런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개성을 드러냈다. 좀비 거느리고 걸어가는 엔딩신이나 9층 누를 때나 좀비 통신 명령하는 얼굴 표정 등에서 보인다.
6. 한국형 좀비 연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런 부분은 참 좋다.
소통을 통한 지능 업그레이드가 될 때 미어캣처럼 발딱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자세 연출이 재밌다.
대형 상업시설 안이라는 비전형적 공간 안에서 진화하고 소통하는 좀비 무리도 특이한 아이디어다.
특히 후반에 나오는 좀비가 된 경찰특공대의 격발 액션은 메탈슬러그의 좀비화된 주인공이 생각난다.

좀비 특공대는 건물 옥상에서 러펠을 타고 다른 건물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정도면 좀비에도 출신에 따라 계급이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피지컬 기술이 생명인건가
전동휠체어 페이크연출도 재밌고 좀비는 차량 운전도 한다.
초반 빙글빙글 앤트밀의 복선은 엔딩에서 회수된다.
이 강강수월래를 소화하는 스턴트맨들의 정갈한 코리오그래피가 괜찮다. 정돈된 동작으로 좀비의 소용돌이가 깔끔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다가 소통 오류로 초기화되어 밀랍 인형처럼 프리즈몹한다.
(프리즈 몹은 모두가 같은 동작을 하다가 갑자기 약속한 듯이 정지하는 퍼포먼스로 플래시 몹의 한 종류다)
어떤 좀비 배우는 킹덤에서도 본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확인하는 건 어렵다.
7. 제도 비판+각자도생의 한국사회 비판이라는 감독의 철학은 충분히 반영되었다.
사업가는 이기적이다. 일진 커플은 호구를 데리고 다니며 비싼 스시 주문하고 결제를 떠넘기는데 이런 서브 빌런 캐릭터는 모두 중간에 나름의 이유로 퇴장한다. 이때 대부분 영화에서 주인공의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주인공이 직접 죽이게 하지 않고 상황적으로 처리되게 하는데 (보통 이이제의로 서로 죽이게 만들던지) 이 영화에서도 좀비들에 의해 처리된다.
특히 제도적 자원을 운용할 수 있는 경찰과 장차관이 무능하고 몸보신에만 여념이 없으며 구해주지 않는다. 대개 좀비영화에서 정의로운 형사가 나타나면 누구나 다 탐내는 배역일텐데 네임 밸류가 있는 배우가 아니라 메소드 연기하는 배우가 역을 맡은데는 이유가 있다. 몰입하기에 어려운 기회주의적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지옥>에서 보이는 기독교 비판이 아니라 바리새인으로서 기성종교제도비판이 핵심이지 종교성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군체>에서는 기독교비판은 없고 개인을 시스템이 구원하지 못하는 게 핵심인데, 연출적으로는 상황실을 버리고 도망가는 정부관료에서도 드러나고, 김신록이 통제실에서 남겨저 죽는 것으로도 표현된다. 정부관료는 명분이 중요해 책임전가만 하려고 공교수를 희생양 삼고 그 뒤에 숨는다.
이런 철학은 연상호와 최규석이 각본을 썼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재밌게 읽었던 (사실 다 읽었다) 최규석의 <송곳> <대한민국원주민>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같은 만화에서 보이는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의 결이다.
그런데 각본은 잘 정돈되었다는 인상은 아니다. 수많은 투자사의 입김이 들어가 좌지우지된 흔적이 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느낌이다. 중간에 트릭과 트위스트를 주려고 여러 번 꼬았는데 정리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스타필드 같은 컨템포러리 복합쇼핑몰의 스시집에 갖힘, 탈출, 좀비에 대한 이해를 통해 퀘스트 해결, 솔루션(백신) 확보, 최종 탈출이라는 큰 스토리의 얼개가 있다.
여기에 전례없는 창의성을 주기 위해 이런 포인트를 넣었다.
인간 백신화, 협조하지 않는 백신, 백신이 해결책이 아님, 백신 자체의 감염을 통한 진화, 1번 알파메일 제거를 통한 1차 솔루션의 실패와 반성, 양심이었던 김신록의 퇴장, 이에 흑화한 지창욱, 위기에 몰린 경찰이 나몰라라 흑화해 민간인에게 총질, 구조대 특공대가 좀비화(제도를 믿으면 안된다는 감독의 철학을 반영한 듯하다), 관료가 자기만 살기 위해 대피명령을 내리고 시스템의 하방인 공무원들도 그냥 그 말을 듣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가운데 민간인인 공교수의 자체적 해결 중에 전부인-현부인 미묘한 관계성 부각
또, 경비아저씨라는 나름의 개그를 통해 표현된 시큐리티 직원 지창욱이 누나의 죽음 후 칼을 들고 좀비를 20마리 이상 썰어버리며 다 쉽게 무력화할 수 있어 좀비가 처음 등장만큼 강해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감염자의 윤리적 생물학적 판단과 인권문제(제거의 대상인지 아니면 아직 구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내편인지 저편인지, 뇌사상태인지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있는데 이런 복잡하게 얽힌 고르기우스의 매듭을 공교수가 책임지겠다는 말로 너무 간단히 끊어 버린다.
연구비 횡령 의혹을 받고 자살한 아버지 때문에 권교수(전지현)에 대한 서영철(구교환)의 원한이 있다는 부분은 덜 다듬어졌다.
제도적 하자로 인해 연구비를 학생이름으로 받았는데 랩실의 지도제자가 이를 알고 지도교수가 착복, 유용했다는 제보를 했다는 내용은 경우에 따라 어떤 과학자들은에게 있어 권교수가 오히려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여지가 있다. 감독의 의도가 주인공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라면 이런 장치는 약간 설득력이 덜하다.
군체의 특성은 시골 창고의 비밀 실험실에 있는 침팬지로 은유되는데 특히 이 부분부터 설정과 복선을 다 드러내기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더욱 늘어지는 듯했다.
연상호 감독의 최근작은, 유난히 적은 제작비로 찍은 <얼굴>이 있었다. 독립영화 제작비보다 적은 2억 원으로 유명했는데 사실 나는 마케팅비가 13억이고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부분이 더 눈에 띄었다. 배우의 노개런티 출연도. 일본 영화 포스터에서 얼굴 안顔 자 안에 한글을 우겨넣은 부분은 재밌었다.
8. 고구마 캐릭터로 일진 커플이 있는데 이지메 당하는 학생 이소은이 너무 일진을 쉽게 용서해버렸다는 아쉬움이 있다. 피해자는 괴롭히는 가해자에게 정확하고 똑바르게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하기에 불링을 당하는 것이다. 일진에게 좀비보다 이지메가 더 지옥이었다고 말할 용기와 멘탈이 있었다면 애초에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이런 부분은 아쉽다. 결국 복수를 하게 되는 연출은 예상가능한 사이다다.
이 이소은이 어른의 말 잘 알아듣는 알잘딱깔센 캐릭터로 권세정 교수의 랩실에 들어올만한 대학원생 재목이었는데 (아직 고등학생이라 시간은 좀 소요되겠지만) 퇴장했다. 이 배우(이담희라고 검색된다)는 앞으로 다른 영화에서도 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 재밌는 연출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지만 흥행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작 <실낙원>도 기대 중이다. 특히 흥행은 정부 영화지원금 6천원의 혜택을 받아, 최대 혜택을 받는 조조로는 4천원에 2시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데 힘을 입을지도 모르겠다.
10. 서영철 박사의 생각은 BCI나 클라우드에 기억을 업로드하는 포스트 휴먼적 아이디어다. 그런데 이렇게 군체의 디폴트 상태가 4족보행에 인간인식 오류가 있는 엉망진창에, 포스트휴먼이 초기재료/숙주인 인간상태보다 열화된 버전인데다가, 점액 흘려대고 관리도 안되며, 통신오류나면 업그레이드 패치는 무효화된다면 연구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