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 차이나. 6장 한국
한국의 LG는 이미 애플의 모니터 공급업체였다. 아이맥은 기본적으로 CRT 모니터 안에 컴퓨터를 집어넣은 형태였기 때문에 LG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다만 스티브 잡스는 확신하지 못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일본업체와 협력하길 원했으나 비용이 더 비쌌다. 그래서 한국은 차선의 선택지가 되었다(…)
LG는 매력적인 제안을 내세워 계약을 따냈다. 초기 금형제작 비용과 시제품 생산 비용을 자사가 부담하겠다고 한 것(…)
당시 LG가 이 계약을 절실히 원했던 이유는 한국경제가 아시아 금융위기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던 까닭. 동남아에서 시작된 통화위기는 아시아 전역으로 번졌고 한국경제도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혼란 속에서 한국 통화가치는 거의 절반으로 폭락했으며 은행은 달러표시 부채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지급불능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기술자들은 구미에 가는 게 멀고 어려웠으며 할 게 없었다. 룸살롱이라 불리는 사창가가 포함된 호텔에 머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