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1959)>에서 찍힌 이 3-5살 아이들은 지금은 모두 70대다. 놀랍게도 이 아가들 얼굴에서 지금의 할아버지 모습이 쉽게 상상된다.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로맨스 <남과 여(1966)>에서 꼬망딸레부?를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깜짝 놀랐다. 옛 교과서적인 표현인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도의 감각이다. 요즘은 잘 지내? 라는 편한 말인 싸바? 꼬망싸바? 정도로 갈음한다. 영어에서도 썹? 하우즈잇고잉? 하지 하우두유두? 하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코미디 <안녕하세요(1959)>에서도 상대의 집을 방문할 때 고멘쿠다사이라 하는데 직역은 용서해주십시오고, 주인이 나올 때까지 예의있게 기다리는 살짝 고풍스러운 뉘앙스다. 요즘엔 현관벨이나 전화로 하기에 이런 표현은 유산으로 승계되지 않고 그것을 함께 썼던 사람들과 함께 늙어간다.
<비발디와 나>에서처럼, 정보는 없고 사람은 많을 때는 주변 사람에게 꼽주면서 추측성 대화가많았다. "이게 뭐지?" "야 너는 이것도 몰라? OO잖아" "아니거든 멍청아 OO야" "뭐래 병신아 OO한테 물어보자" 하는 식의 대화다. 설명서는 제공되지 않고 지식정보는 귀하고 인터넷이라는 더 큰 정보망을 사용하지 못할 때 대화다. 이때는 아는 사람이 귀했다. 한 기관에 오래 근무해 정보를 누적하고 있는 사람은 인간 데이터로 쉽게 자르지 못했다. 인간 챗지피티였다. 설령 종이에 문자로 적은 정보가 많다고 해도 그중에서 어디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사람이 필요했다. 없으면 처음부터 내가 선형적으로 데이터를 학습할 수 밖에 없다. 오스카상을 탄 영화 <빅쇼트>에서도 신문 기자들이 야구장에서 대화하는 신에서 마크 러팔로가 어떤 주제를 언급하자 선배가 느슨하게 야구를 보면서 그 주제 언제 어떻게 다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노년의 배움은 쿠사리 주는 대화형식인데 "대단해 최고야"라는 칭찬에 익숙한 자식, 손자세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무섭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