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에서 아시아계 캐릭터 첸 저우의 전형적이고 납작한 캐릭터 묘사 하나만 단독으로 문제가 아니다. 계층 사다리이동 및 인정욕구가 높은 앤디와 거울상이라는 점, 퍼펙트한 인도계 비서 아마리에 비해 유난히 더 희화화되었다는 점에서 캐릭터의 문제가 부각된다. 이는 비단 친 저우만의 문제가 아니라 셀린 송의 <더 머터리얼리스트>와 같은 결의 뉴욕사회 안의 성공방식과 이상적 인간상에 대한 지적으로 나아간다.


사실 첸 저우는 영화 스토리 안에서 앤디에게 유의미한 기여를 하는 인물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처럼 우주비행선 파일럿이자 사령관에게 중국계 이름을 쓰고 싶은데 잘 몰라서 복붙한 흔적이 역력한 다이아크리틱(악쌩뗴귀) 붙고 남성캐릭터에 계집녀변을 어색하게 쓴 Yáo Li-Jie 妖라는 이름도 아니다(백인의 상상력이 가미된 이상한 명명이다). 秦舟 진나라의 배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시아 여성이 대개 순종적이고 인정욕구가 높으며 학교성적이 좋고 눈이 찢어졌다는 서구백인중심적 시각을 반영해 캐릭터가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아시아계의 반발이 있다. 특히 한중일 동아시아인의 주류편입열망, 정통성, 성취욕과 결부되어 특히 문제가 복잡다단해진다.





백인끼리는 마이너리티가 자신이 대변하고 있는 소수자성의 특징을 부각시키는 것이 왜 문제인가 생각한다. 라틴계, 흑인계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뉴욕갱스터 영화에 많이 보이듯 아이리시계, 이탈리아계가 있다고. 메이저는 소수자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의문이 들겠지만 소수자는 존재론적으로 불안해 주류로 편입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소수자성을 팔고 싶지 않다. 모든 문제의 고갱이는 소수자는 주류가 되고 싶다는 데 있다. 그리고 주류-비주류 문제는 저 멀리 미국이라는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서울사람이 별 차별의 뜻 없이 상경한 지방사람에게 사투리 한 번 해봐! 하는 데서도, 지방에서 사투리 교정 강의가 있는데서도 마이크로 어그레션 문제가 있다. 소수자는 자신을 표준에 맞추어 교정하기를 요구받고 주류는 태어나보니 자기가 정통과 표준이었기에 딱히 외부 경계를 자각하지 못한다.


이에 더해 아시아인은 자신을 인종이나 국가라는 큰 집합에 대한 부분집합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제도 안에서 열심히 노력해 성취를 이루어낸 개인으로 생각한다. 보통 서구인이 개인주의적이고 동아시아인이 집단주의적이라고 간주되는데 특이한 방식으로 개인주의가 튀어나온다. 한국인끼리 있는 학교 첫 수업시간에 자기 소개할 때 안녕 나는 남한에서 왔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마치 북한사람이나 다른 국가인이 있을 것이라는 모종의 암시를 주어 불편한 분위기가 된다. 안녕 나는 한국사람인데, 라고 첫 운을 떼는 사람도 없다. 모두 한국사람일게 뻔한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출신 도시를 말할 수는 있지만 한반도는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을 선명하게 논하기엔 국가의 사이즈가 너무 작다. 미국의 인디애나주 하나 크기다. 작은 사이즈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호남과 영남과 제주의 차이는 매우 크지 않고 서로 이해가능한 말씨이며 기후적으로도 같은 영역에 위치한다. 일본의 도쿄-간동과 오사카-간사이-후쿠오카 정도로 초고속 기차로도 4시간은 떨어져있어 식생이 다르고 교류가 적어야 식습관 말씨 문화에서 큰 차이가 보인다. 옛날 사람들이 도보로 이동하려면 1달은 걸렸어야 하는 거리다. 일본의 간토-간사이 차이는 최소 한반도에서 신라(경주)-고구려(국내성) 정도의 차이여야하는데 저 윗쪽은 정치적으로 다른 집단이고 교류가 없어 한국 안에서 영화같은 픽션을 제외하고 그 차이를 느끼기 쉽지 않다. 외국 나가야만 그 차이가 감각되고, 그래서 한국인은 한반도 안에서는 절대 쓰지 않을 "나는 남한에서 왔어 I'm from South Korea"라는 말을 외국 나가서 그제서야 쓴다. 그리고 사우스라는 말을 아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우스코리아를 한 덩어리로 대한민국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외국인들은 확실하게 남북 위치성을 그리며 한국을 복수의 국가 중 개별적이며 부분적인 집합으로 이해한다. 외국인 아재조크 from North or South?라는 말이 한국인들이 극혐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튀어나오는 것은 이런 사고방식이 기반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극혐을 하는가, 한국인에게 한국은 정통의 기준점이지 여러 집합 속에서 평가당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오브제화될 수 없다. 설령 그래야한다면 최고, 최선, 최대 등 뭔가 특별해야한다. 그러나 제국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패권국의 사고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레거시 머니는 다르게 생각한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한 생애에서 다 감각하기 힘들정도로 큰 다양성을 경험했다면 카테고리화해서 사고하게 된다. 유일하고 특수한 무엇으로 개인의 특성을 적시하기 메모리가 모자란 까닭이다. 이집트도 로마도 중국 역대 왕조도 모두 그랬다. 외부 집단에 대한 차별과 경계는 어쩔 수 없는 집단문제이지만 힘과 권력이 있는 제국/자본이 운용주체가 되면 제도적 폭력이 된다. 받아들이는 입장은 다른 법이다.


캐나다 드라마<김씨네 편의점>의 주연 배우 폴 선형 리는 너무 완벽한 백인 영어를 쓰지 말고 일부러 한국 아저씨 이민자의 어눌한 영어발음을 하라고 주문받았다고 차별을 말했다. 그런데 백인입장에서 차별과 동아시아 입장에서 차별은 다소 결이 다른 것 같다. 전자는 대서양 삼각무역때부터 이어져 오는 역사적 인종적 차별이고, 후자는 주류집단과 동화되고 싶은데 배척당하는 인정투쟁에 가깝다.


비슷한 예시로 이를테면 디즈니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2021)>가 있다. 시청각적 완성도는 높은 편이었으나 중국, 동남아문화를 뒤섞어버려 끔찍한 혼종의 비빔밥이라고 여겨졌다. 이민자 국가로서 전세계 인종과 문화의 거대한 샐러드인 미국에서는 재밌다고 생각되는 분절적 요소의 융합이 정통성이 중요한 아시아국가에선 근본을 알 수 없는 섞어찌개로 여겨지는 것이다. 바게뜨 모자를 쓰고 바이킹 방패를 들고 이탈리아 수트를 입고 피쉬앤칩스를 먹으며 바르셀로나 광장에서 러시아어를 하는 장면을 문화와 집단의 동질성을 자기 정체성에서 떨어진 객체화를 할 수 있는 서구인 시각에선 웃긴 조합으로 생각하겠다. 하지만 청나라 변발을 한 이가 사무라이 칼과 화살을 들고 한복을 걸친 채 팟타이와 똠양꿍을 먹으며 베트남어로 대화한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문화적 동질성, 정통성, 대표성이 매우 높은 까닭이다. 


첸 저우는 대여섯 신 나오는데 학교성적 우수함을 자랑하며 어필하는 신, 주인공과 대화하는 신, 구내식당 프로즌 요거트 맛있다는 신, 휴대폰 스파이 침투신, 마지막 복도에 걸으며 승진축하받는 신 정도로 기억한다.


첫 번째 등장신의 스테레오타입 캐릭터 묘사가 트레일러를 통해 바이럴되었고 이미 이게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더 싫을 것이다. 학점GPA 자랑하는 긴 대사가 하이톤에 너무 주절주절 길고 앤디는 첸 저우가 쏟아내는 학적성취와 위용을 다 듣지 않고 중간에 알았다고 말을 자르기 때문이다. 훌륭하다고는 했던 것 같다.


일단 캐릭터가 희화화되어서 불쾌의 감정이 생겼다면 그 이후에 수많은 보론이 따라온다. 아시아인은 이렇지 않다, 백인들이 문제다, 등등. 


그런데 이런 생각은 영화보다 이전에 존재했던 개인의 차별경험에 의거한 인식을 끌고 온 부분이 있고, 영화 내적으로 분석한 것은 아니다.

영화 안에서 첸 저우는 두 가지 점에서 캐릭터성에 문제가 있다.


인도계 아마리가 아무런 문제 없고 모든 명품 착장을 완벽히 소화하는 퍼펙트한 비서로 대조된다는게 문제가 된다. 왜 영국영어 쓰는 인도계 아마리는 스테레오 타입이 없고 중국계(동아시아계) 첸 저우는 스테레오 타입을 반영했는가?


아마리(라틴어로 to be loved라는 말이긴하데)는 아무런 문제발언을 하지 않고 상사에게 징징대지도 않고 용건만 말하고 고고하다. 심지어 주인공 앤디의 부족한 면을 지적하기까지 한다. 이 업계에서 일했다면서 샤넬을 왜 남에게 무료로 주었다는지 의아해한다. 첸 저우가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인턴이기 이전에 이미 굽혀들어가 앤디를 선배대접을 하며 우러러보는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다. 15년 전에 일했다는 말에 눈 깜빡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매우 높아보인다. 요청하지 않았는데 굳이 먼저 숙이고 들어가 업계선배로서 대접하지 않는다. 주어지 업무 안에서 해야되는 일에 집중하고 일을 못해 쿠사리를 먹지도 않는다. 영어로 치면 seamless하게 연출 속에 유려하게 녹아있어서 아마리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있었는지 싶을 정도로 영화 안에 녹아있다. 배우라면 무조건 따내야하는 조연역할이다. 아마리의 대칭은 미란다의 서포팅 역할을 잘 소화한 나이젤이다. 둘 다 문제점이 부각되지 않는 일당백의 우수한 능력자다.


그리고 이런 비서 아마리가 나이젤과 거울상이라는 점의 연장선에서 앤디의 대칭으로서 첸 저우가 있다. 첸 저우는 앤디의 부족한 점을 닮아있다.


상사에게 인정받으려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다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내는 앤디와 거울처럼 똑 닮았기 때문이다. 단점이 같아 공명되어 N극과 N극 같은 극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여기서 심각한 점은 같은 인물상임에도 아시아 인종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한 결 더 열화되었다는 데 있다.


첸에게는 부모가 논 팔고 건물 팔아 마련한 아이비리그 졸업증명서는 있으나 주류 백인 사회 네트워크가 없다. GPA3.86로 예일대를 졸업한 후 등록금을 트레이드 오프하기 위해 뉴욕 패션인더스트리까지는 착지했으나 그 이후 장래는 보장되지 않았다. 소심하고 위축된 책벌레가 런웨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직업전문성으로 인정받기 원했던 것처럼, 즉 여성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대접받고 싶었으나 결국 그 외의 방법을 동원해 성공해 살아남아야했던 것처럼 첸 또한 자기가 소중히 생각하는 학업성취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아야한다. 그리고 그것은 도청이다. 여기서 큰 문제가 부각된다. 카페테리아라는 오픈공간에서 컨설턴트에게 두드려 맞고 한 마디 못하는 미란다도 그 나름의 문제가 있지만 미란다가 살아남을 것인지 자기 특집부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당장 할 필요도 없는 쓸데 없고 직분에 맞지 않는 고민을 하는 앤디에게 대화를 몰래 녹음해 들려준다. 앤디의 마음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준 것은 훌륭하고 이를 통해 정보전에서 승기를 잡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정보는 영화의 최종결말을 감안했을 때 대단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앞서 앤디에 대한 유의미한 기여라고 했는데 그런 보조적 기능을 한 것은 맞지만 런웨이 잡지사를 구사일생으로 판을 뒤엎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법 도둑 녹음은 앤디가 뉴욕에서 살아남은 꽌씨보다 조금 더 범죄에 가까운 일이다. 둘 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순간적인 선택이고 내가 한 일도 아닌데 나에게 닥치는 문제를 처리 하기 위해 벌어지는 상황 속에 우연히 말려들어간 면모가 있지만 그럼에도 안 그래도 희화화시킨 첸 저우에 이런 연출까지 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강화한다. 심지어 업계 최정점의 기득권인 미란다 편집장도 PC주의, 디지털전환, 재벌승계 속에 앞머리가 계속 힘없이 흘러내릴 연출을 할 정도로 힘이 빠져있어 앤디 시절보다 더 팍팍한 상황인데 첸 저우는 비백인으로서 앤디보다 더 힘겹게 살아남아야한다.


앤디는 어땠는가? 앤디는 뉴욕에서 살아남기 위해 꽌씨를 통해 자신의 것이 아닌 리소스를 사용해 해리포터 미출간 원고를 구하고(1편) 모든 잡지가 실패한 특집기사 취재대상인 상속녀 인터뷰를 따낸다(2편). N으로서 이상적이지만 결국 현실은 원하는 방향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공 들여 쓴 기사는 고용을 종용한 회장에게 고평가를 받지 못했고 조회수도 높지 않았다. 이후에 하는 성과를 정확히 말하면 기자로서 직업정 전문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에게 외모와 매력자본을 통해 얻어낸 결과다. 


에밀리와 같은 방식이지만 에밀리보다 성과가 있다. 에밀리는 대화가 자꾸 미끄러지고 겉돌아 성격차이가 있어 보이는 벤지를 돈을 때문에 억지로 비위 맞춰가며 옆에 붙어있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랑도 일도 둘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앤디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호주출신 디벨로퍼와 사랑이 이루어지고 직장도 구해낸다. 물론 뉴욕사회에서 인맥 네트워크도 참 중요하지만 어쨌든 이 해피엔딩의 결과는 자기모순적 측면은 분명히 있다. 여자가 아닌, 사회인이자 한 명의 기자로서 얻어낸 결과는 아니다. 이는 앞서 말했던 <더 머터리얼리스트>가 그리는 점과 같다. <센스앤센서빌리티>로부터 한 발짝도 가지 못했다. 영화 <작은아씨들>에서 플로렌스 퓨가 관객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성으로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공하는 어려움에 대해 거의 설교하듯이 일갈했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교육받고 예쁜 백인 여성의 무기를 없었다면 세렌디피티와 같은 만남들이 성사될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가 옳은 것인가? 남성이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늘 항존하고 체제의 결함 속에 분투하려는 불완전한 개인들의 호의가 있을 뿐.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언론계나 학계에도 대안은 없다. 예술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 해결해나가는 개인은 있다.



다시 앤디의 열화버전인 첸 저우의 캐릭터 문제로 돌아가자. 여기서 영화는 시종일관 앤디의 성공과 로맨스를 그린다. 그녀의 수많은 노력은 낭만화하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결과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1편까지는 앤디는 괜찮았다. 그녀는 젊은 사회초년생이었고 아직 일처리에 익숙하지 않아 리에종 업무가 미숙해도 귀엽게 봐줄 수 있었다. 뉴욕사회와 경제도 성장 중이어서 그녀의 실수와 철부지 없음을 받아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 번의 실수가 추락으로 이어진다. 사회에 여유가 없어 좌충우돌하는 앤디 캐릭터를 곱게만 보아줄 수 없다. 기자로서 15년을 근무했고 뉴욕에서 꽤 오래 거주했는데 연차에 필요한 성숙도가 없고 여전히 사회초년생 같다. 2편의 앤디는 1편만큼 사랑스럽지 않다. 그녀는 성장하지 않았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직급에 필요한 완숙도를 갖추지 못했다. 계속 특종 기사로서 혼자 일하는 외로운 늑대로서는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런웨이 정도의 중량감을 가진 조직에서 더이상 사회초년생이 아닌 부서 담당 에디터로서 그녀는 아랫사람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친절한 대화는 하지만, 조직의 리소스를 운용할 역량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계속 사회초년생 때 상사에게 문제해결을 기대했던 방식을 답습하고 미란다는 여전히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고 노력했서 이렇게 짜잔하고 일을 해냈지롱! 하고 징징대는 그녀를 차분하게 지켜본다. 거의 <미생>의 사수급으로 불심이 강한 보살이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고 하지만 듣지 않고 여전히 아기같다. 1편에서 에밀리와 앤디는 자매처럼 투닥거리며 엄마 미란다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읽힐 수 있었다. 그런데 에밀리는 독립해서 나갔고 앤디는 집 나갔다 돌아왔고 엄마는 자기 문제가 있고 늙었고 구성원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15년 전 그 어린애의 모습이다. 1편과 같은 몽타주지만, 앤디가 미란다 집에 방문하고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는데 미란다는 위에서 내려보는 권력구조 그대로다. 그래도 에밀리는 광고주로서 전 직장상사를 동등한 테이블에서 대하고 딜을 칠 정도로 성장했다. 에밀리만 발전이 없고 이런 치기 어린 어린애를 받아주기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2000년대 초반 1편 때는 없었던 MBTI식으로 영화의 주연 둘 성격을 비유하면, 있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N에 감정이 풍부한 F의 앤디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선택지만 생각하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이(down to earth한) S와 T 성향의 미란다의 이야기다.

2편에선 NF의 앤디를 보는 ST의 미란다의 고뇌가 느껴진다.


물론 앤디는 네러티브상 런웨이를 구해내고 미란다의 소원을 이루어준다. 그러나 최종 창업주의 레거시 머니에서 은둔형 상속녀로 자본이 옮겨갔을 뿐이다. 이 역시 앞서 말했던 인맥을 통한 해결이지 직업전문성을 통한 해결은 아니며, 타이타닉의 부표와 같은 임시방편이다. 미봉책이다. 런웨이의 간판이자 중추역할인 미란다의 사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첸 저우가 주니어 에디터로 승진을 하긴 했으나 정확하고 엄정한 인사고과를 통한 것은 아니다. 앤디가 첸 저우에게 일을 맡기고 솔루션을 가져오게 하는 직무를 통한 성과도 아니다. 앤디는 그정도 성취욕이 있고 자기입증하려는 첸 저우를 보고 소싯적 올챙이시절로 생각해야했었다. 그래서 미란다가 자기에게 했을 법하게, 프로젝트를 주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줘야했는데 그게 아니다. 첸 저우의 기여는 도둑 녹음뿐이었다. 


메시아적 구원같은 기적에 의해 런웨이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밴드웨거닝한 것이다. 편승해 승진한 것이다. 영화 내내 앤디는 첸 저우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관리직으로서 면모를 보여준 적 없다. 3편이 나온다면, 나와야한다면 톤은 어둡게 반전시켜 런웨이는 망하게하고 서로 이간질하는 정치복수물이 되어야할 스토리의 방향이 맞다. 앤디는 런웨이를 끌고 갈 힘이 없고(2편에서 입증하지 못했고) 미국의 이길여 여사의 죽음은 주니어들보다 선명한 미래다.


그래서 이렇게 아미르의 대조점으로서도, 희화화된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앤디의 열화 거울상으로서도, 첸 저우 캐릭터는 수차례 훼손되었다.


어제 영화 보고 쓰고 싶었으나 이동 중에 정거장 도착해서 핸드폰으로 쓰다 만 끊은 내용의 일부.




그래서 영화를 볼까? 말까? 에 대해서는 늘 나는 안 좋은 영화라 할지라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웠기 때문에 글을 썼고, 영화는 여러 캐릭터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는 캐릭터 스터디로서 재미가 있다.


아직 못 다 쓴 글: 상속녀는 사샤 반즈는 킬빌의 이렌 오시이(루시리우)다. 타이거맘으로 능력으로 유리천장을 뚫은 게 아니라 기존의 돈을 이혼으로 인해 남성에게 상속받았다. 에밀리가 공략을 시도했다 실패한 그 벤지 반스의 돈. 돈이 많은게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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