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보았다.
<하울..> 이후 오랜만에 만난 기무라 타쿠야는 녹음실에서 감독의 작품 중 의=of(の)가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라고 지적해주는데 순간 웃겨 헛웃음이 났다. 그래서 그런가 이 다큐는 소위 '의'를 붙여서 제목을 만들었다.
은퇴를 번복하고 10년만에 내고 아카데미상을 받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메이킹 영상 겸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왜 이 작품을 만들 수 밖에 없었는지, 감독이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지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감독은 끊임없이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상을 왜가리 닮았다고 디스하는데 실제 영화 캐릭터의 모태다. 얼굴이 작고 가냘퍼 보였는데 영화 마지막에 온천욕하고 있는 벌거벗은 할아버지 모습이 너무 뒤룩뒤룩 뚱뚱해서 놀랐다. 왜가리보단 폼포코에 가까운 옷 안에 숨겨진 속살이었다.
<그대들..>영화에서 스즈키 토시오는 왜가리고, 자신은 주인공 마히토, 키리코는 야스다 미치요, 큰할아버지는 파쿠상이다. 이런 유비는 의미있다. 다큐 영상을 보고 나니 은퇴를 번복하고 이 작품을 만든 까닭은 파쿠상이라는 죽은 동지의 유언으로 인했다라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프로젝트가 계속 지연된 것은 감독이 메이킹 자체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후술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먼저 곁을 떠나간 옛 동지들 생각에 다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파쿠상이 영화감독이 은퇴라니, 죽을 때까지 창작하는거다라고 말하는 듯했다고 중얼거리며 감독의 작업 테이블 옆에는 색채 담당 얏찡이 남긴 글귀 "한 편만 더"가 붙여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른 감독 파쿠상(타카하타 이사오)은 미야자키 감독과 애증관계이면서 평생 함께 한 동지였는데 이 다큐를 보면서 얼마나 그를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경미한 조현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뭔가 귀신이 씌인 것 같은, 옛 친구가 빙의한 것 같은 듯한 모습도 간혹 보였다. 예를 들어 천둥번개치거나 비가 내리거나 봄의 폭풍이 불거나 할 때 파쿠상이 집에 온다고 할지, 꿈꾸면 계속 파쿠상 꿈만 꾼다고 할지 중얼거림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프로젝트가 아닌데, 계속 콘티를 바꾸는 모습에서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듯한 모습이 있었다. 이는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도 증언한 바, 허구의 세계가 그에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정신과전문의가 아니니 진단은 할 수 없고 딱히 문제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인은 대개 하나 둘 정신문제를 안고 있는데 자신의 아픔을 훈련과 기술로 정제시키면 사람을 감동시키는 좋은 예술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감독의 행태에선 살짝 기이한 부분이 있었는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바로 몇 주 전, 일본 인디시네마전에서 조현병 걸린 누나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았다. 그녀도 현실과 허구가 분간되지 않는 세계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 중얼거리곤 했다. 감독도 그정도까지 심하지는 않지만 아주 경미하게 그런 부분이 보였고 그래서 기시감이 들었다. 물론 그녀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
다만 이 부분을 프로듀서의 "허구 속에 사는 감독"이라는 발언과 함께 접근하면 왜 작품 질질 끈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는 듯 보인다. 완성된 콘티를 계속 뒤엎고 파쿠상과 대화하면서 만드는 데 존재 의의를 둔 것 같다. 그러니 파쿠상을 함의하는 큰할아버지까지 가는데 4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녹음실에서도 큰할아버지 캐릭터가 뱉는 대사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가!"를 계속 반복 테이크를 시키며 듣는다. 이미 녹음은 완성이 되었는데도 마치 파쿠상이 자신에게 말하는 듯이 듣는 얼굴이었다. 파쿠상이 죽고 읽은 추도사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말 걸었다고 울먹이면서 말하는 부분을 나도 수 년 전에 보고 감동했었는데 스즈키 토시오는 그런 적이 없다면서, 감독은 허구와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그 버스정류장은 토토로의 장면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화는 토토로의 버스정류장 장면을 보여준다. 진실을 누가알까.

https://www.youtube.com/watch?v=u0u8cLX1VsY
그렇게 영화는 감독의 은퇴번복작이라는 이름 하에, 초창기 멤버는 모두 없어졌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종종 함께 했던 옛 동료와 후배들이 모여, 감독의 비위를 맞춰가며 작업한다. 이렇게 스토리가 계속 엎어지다가 금전의 기한 등 여러 한계에 부닥쳐 매듭을 짓게 된다. 이렇게 최종 스토리가 리좀식으로 만들어져서, 작화는 지브리 맞는데 스토리는 아리송하다라는 대중의 평가를 받게되었다.
일본은 으레 미학적으로 깔끔한 완성도를 추구하는 편인데 영화는 현대예술전시에서 볼 듯한 영상, 순간순간 휙휙 지나가는 프레임이 섞여있다. 감독의 붕 뜬 초현실적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표현법과 대상이 합치한다. 10년 전부터 찍은 VHS 해상도 낮은 카메라 영상도 있고, 익스트림 클로즈업도 있고, 핸드헬드도, 흑백사진 스틸컷도 있어서 미학적 콜라주 같고 전형적인 일본 다큐같지는 않다.
감독의 인터뷰 발언을 키키, 치히로, 하울, 토토로, 라퓨타, 포뇨, 폼포코 등 역대 지브리 영상의 장면으로 뒷받침한다. 감독이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키키에서 그림이 잘 안 될 때 조언하는 부분은 영상 안에서 실제로 그런 장벽에 부딪혀 산책하는 감독과 함께 나와 기존 애니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더해주었다. 에반게리온 감독을 데리고 왔기에 마히토의 처음 등장신이 에반게리온같다고 툴툴댄다. 유치원생 아이들 앞에서 한없이 인자한 표정이, 그때만 정말 살아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아카데미상도 받고 스태프들에게 전례없는 보너스도 주고, 개봉하고 토호시네마 전무가 찾아와 4억엔 벌어 대히트했다고 말해주어 이 모든 일들이 곱게 잘 마무리되었다. 파쿠상의 폼포코가 지브리 멤버들의 청년시절 모습을 그려 펑펑 울었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대들>은 폼포코의 미야자키 감독 버전이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WgMdhrZ-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