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생각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인식 유통 번역 삼중구조가 만드는 시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1. 동시대미술이론은 현재진행중이며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다중의 사건을 인식하고 적합한 어휘를 동원해 설명하려한다. 그런데 발생 중인 사건은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조차 같은 속도와 밀도로 체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네러티브에 천착하는 이는 몰두한 나머지 다른 이슈에는 둔감할 수도 있다. 컨템포러리 미술의 중요한 주제 신체, 사건, 여성, 노동, 소수자, 빈곤, 인권, 생태, 비인간 등은 모두 비배제적이고 비경합적이지만 저마다 우선순위가 있고 이슈의 첨예성과 시의성을 다른 시차로 인식한다.
2. 그런 맥락에서 글이 유통되고 사람들에게 학습될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마 부족한 대학의 관련 학과와 국공립 미술관의 이벤트에서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MMCA에서 하는 아카데미 강좌는 분절적이나마 여러 네러티브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려고 한다.
이를 포괄적인 개념어휘로 통합하는 것은 어쩌면 현대미술의 느슨한 속성을 감아했을 때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통합하지 않고 다양성 그 자체로 나열하고 전시하는 것이 최선의 일일 수도.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읽어 왔던 수많은 서구 학자들 역시 그 시대의 예외적 인간이었다. 제도적 수혜 속에 성장한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3. 한국에서 한국어로 생산한 지식이 도착어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번역되어 상업갤러리를 통해 외국에 전해질 시간도 필요하다. 반대도 유효하다. 비근한 예시로 BTS의 아미가 가사에 있는 한국문화와 역사를 번역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는 외국에서 유학해서 해외 학계의 언어와 접근방식을 습득한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와 번역하는 지식의 중개상 역할을 수행했다. 어쩌겠나. 서구에서 쌓아올린 지식의 금자탑이 더 밀도가 높은 것을. 이 마저도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러나 민화 등 전통미술은 이런 어휘로 잘 통약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부턴
해야한다. 그러니까 이제 지금부터 방점을 두어야하는 넥스트 어젠다, 다음 세대의 과업이다. 한국미술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 학창시절 내내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단선적이고 일방향의 독해 교육을 받은 이들의 지식수입을 잘 마무리하며 우리 콘텐츠의 해외 수출로 페이즈가 넘어가야한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역방향의 발산형의 발화 교육으로. 전자가 수렴형, 탐구형이라면 후자는 발산형, 스피킹형이라 할 수 있을까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해커톤 프로젝트 〈동시대 회화 진단〉교육자료집 다운
https://sema.seoul.go.kr/kr/knowledge_research/publish_detail?museumDataNo=1516914
이벤트
https://www.mmca.go.kr/events/eventsDetail.do
https://www.instagram.com/p/DWnC3cNk91H/?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시간이 없어서 뒷부분을 쓸까하다 말았는데 인용하셨으니 다시 펜을 잡아봅니다. 초치는 말일 수 있지만 전혀 희망적이지 않아요
이미 주어진 글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독해하는건 익숙해지면 쉬운 일이예요 왜냐하면 이미 정보와 체계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죠. 한 명의 학자가 일생동안 읽고 쓰면서 쌓아올린 이론틀을 제공하는 핵심 저작 하나를 오랫동안 품을 들여 습득하고 나면 다른 글도 읽을 수 있고 케이스에 적용할 수도 있죠. 비판적 미디어이론, 페미니즘, 생태환경 등등 기존의 사례를 이론으로 재해석하는 일도 가능하니 상대적으로 쉽게 터치 범위가 증가하죠. 교직에 있는 이들이 한 이론가에만 천착하는 것도 이런 범용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학공식 하나를 습득해서 여러 유제에 적용해서 푸는 것과 같은 이치고, 역행자를 포함한 수많은 자기계발이론들이 성공코드를 해킹해서 돈복사하겠다는 것과 비슷할 수 있어요.
그러나 영작은 차원이 다른 고난이도의 창작입니다. 없던 어휘를 그들이 이해하도록 재해석해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