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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의 글

6·25 전쟁이 끝난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1956년 3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의 금관 창고에 도둑이 들었어요. 도둑은 서봉총 출토 금관과 금령총 출토 금관을 감쪽같이 훔쳐 달아났습니다.

중략

어떻게 문화유산을 도둑맞을 수 있었던 걸까요?

박물관 수위가 그날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 3시간 동안 금관 창고의 열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한 틈을 타 범행이 이뤄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국의 분위기는 좀 묘했습니다. ‘큰일 났다’는 경악보다는 ‘이제 어떡하지’라는 고민에 가까웠던 거예요.

이상하죠?

사정은 이랬습니다.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한국은행이 보관하고 있던 금덩어리들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피란’시켰어요. 이 과정에서 극비리에 신라 금관도 함께 보냈던 것입니다.

1952년 박물관 운영을 위해 금관 모조품을 만들고 보니 너무 잘 만들어진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조품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은 채 전시했습니다.

만약 모조품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그럼 진품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 뻔한데 대답하기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1956년에 도둑맞은 두 금관은 전부 진품이 아닌 모조품이었던 겁니다. 도난 7개월 만에 마침내 범인이 검거됐어요.

경주에 사는 당시 20세 상습 절도범이었는데요. 훔친 금관을 지니고 경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신문을 사서 보곤 모조품이라는 걸 알고 실망해, 냇가 모래 속에 파묻었다는 거예요.

그동안 홍수로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미국에 가 있던 진짜 금관은 1959년 무사히 돌아왔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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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스릴러 범죄물과 거시경제에 지리에 문화유산 요소가 융합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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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잘 쓴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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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다른 도난 기사는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6/03/05/MRDHTSLEDRHE5O7UF6MIJTSD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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