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수사단 시즌2 첫 게임 블랙룸 3화 보았다. 지난 주 금요일에 올라왔다.


엔딩크레딧에서 이제 익숙해진 제작사 teo가 보인다. 데블스플랜과 피지컬100도 만들었다. 극장영화에서는 엔딩크레딧 순서가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기싸움의 원천이라고 들었다. 알파벳순인지, 등장순서인지, 데뷔순인지, 주연순인지, 심지어 감독과 까메오를 어떻게 보여주느냐도 모두 정치적 권력의 문제다.


미수단은 제작과 연출 관계자들이 먼저 나오고 연기자 6명은 나중에 뜬다. 연기자보다 제작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제작사가 전면에 부각될 수 있는데는 부유한 넷플이 돈을 주고 제작사가 (하청의 형태로) 협업하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네임밸류 있는 감독 일인에 의지해 투자가 붙고 제작팀이 꾸려지는 형태가 아니다. 외유내강과 서울액션스쿨이라는 큰 팀을 유지하고 있는 류승완 감독과는 조금 다른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는 극장 영화에 대한 고대의 믿음을 유지하며 식솔을 먹여살리기 위해 주기적으로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충분히 존중받아야할 모습이나, 그의 대에 명맥이 끊기고 후대 감독은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 프로덕션에서 자기의 커리어를 운용해한다. 오늘날의 크리에이터는 봉준호 박찬욱 등이 쌓아온 명성이 없어 시장 진입이 힘들다. 아울러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감독들은 30년에 걸쳐 대중의 대뇌피질에 자기 이야기를 학습시켰다. 살인의 추억이 무엇인지 다들 알고 공동구역JSA도 안다. 감독과 동시대 사람들은 아주 밀도있게 작품을 학습해 바쁜 사회생활 와중에도 작품이름을 들으면 저마다 자기 식대로 설명할 수 있다. 이제 출품되는 작품은 모른다. 


시간은 많고 사회에서 할 일이 없던 중고등+대학 학창시절, 진출준비기 백수청년시절에 본 작품은 기억나고 결혼하고 애들 먹여 살리고 대출빚 갚느라 시청 절대 시간이 줄어드면 픽션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매일 힘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어린이들의 넘쳐흐르는 급식힘이 태권도로도 충분히 배출되지 못해 육아에 시달리는 어른들은 최근 트렌드를 다 습득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어린이도서는 약간 이전 시대의 위인들이 등장한다. 구매력있는 학부모들이 익숙한 유명인물들을 다룬다. 알아야 사니까. 이것도 다 특정 시기에 자리잡은 아련한 기억을 소환한다. 작품을 만드는 감독은 폭발하는 인구에 비해 부족하던 시기에는 누구나 아는 작품이 있었다. 라면을 만들면 날개 돋힌듯 팔리던 시절, 없어서 못 팔았지 있으면 팔리던 시대, 공급부족 수요과잉엔 일반명사로서도 흡족한 판매량이 나온다.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많던 시대에는 일단 제품이 나오면 팔린다. 공급이 많아지면 다품종 소생산으로 종류가 다변화되어야한다. 대중은 구매욕을 자극하는 새로움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기 집 창고에 물품을 쟁여두고 나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광고홍보가 중요해진다. 마케팅으로 없던 구매욕까지 만들어줘야, 유명하다고 해야, 좋다고 광고해야 팔리는 시대다.


지금은 초양극의 시대다. 벽을 높이 올린 중세사회다. 이전 포스팅에서 테크기반 중세사회로 이전하고 있다고 쓴 적 있다. 플랫폼 제공자는 영주, 셀레브리티는 시스템을 떠받치는 성직자, 개발자는 시스템 보수운영하는 기사와 장인. 98%는 농노다. 모두가 다 봤다고 해서 FOMO를 자극하는 책 한 권(정의란 무엇인가와 유발하라리의 책이 그랬던 것 같다)과 영화 한 편이 있고, 그외 수많은 다양한 취향의 책과 영화가 있다.


이번의 왕사남 현상처럼 600만 관객이 넘어 사람들이 다 존재를 알게되면 유명세가 유명세를 낳는 궤도에 올라가고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부익부 빈익빈 마태복음 효과가 발생한다. 반대로 적은 제작비로 50만 100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며 근근히 영화를 만드는 명맥이 이어질 것이다.


몹시도 촘촘하게 분화된 취향의 공동체는 98% 농노의 영역이다. 예컨대 공포도 바디호러 좀비 일본귀신 등으로 세분화된다.

 지역적 선택권도 미국외 아랍 페르시아 인도 아프리카 수없이 많은 나라의 작품으로 넓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다 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 서로 공통의 화제로 이야기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 유행어 하나로 전국민의 월요일의 단합되던 시대, 무한도전과 1박2일 키즈인 시대가 지났다.


부속효과로, 한국어로 말하는 옆집의 취향 다른 이웃보다는 외국어로 말하지만 번역기와 지피티로 자국어로 변환을 통해 같은 취향을 지닌, 그러나 만날 일 없이 멀리 사는 외국인과 더 친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제작사가 엔딩크레딧에 먼저 등장했다는 말로 시작해 시대 진단까지 의식의 흐름으로 생각을 전개했다. 료이키텐카이! 돌아가서, 개인의 카리스마와 명성에 의해 일이 진행되고 이에 조직이 따라붙느냐, 조직이 먼저고 플레이어를 선택해서 붙여주느냐 정도의 차이로 생각해본다. 제작사 우선 시스템은 시대 흐름으로, 역사에서도 개국 초기에는 개별 인물이 중요했으나 이후에 길드나 협회 등조직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점도 있다. 메디치라는 초부유 은행가, 혹은 교황청 주교와 그의 의뢰를 받는 수많은 하청 조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역사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지니 일단 여기까지만. 미수단으로 돌아가자.


제작사 우선 시스템에서 연기자는 레거시 영상에서와 달리 자기 정체성을 지닌 배우라기보다, 응시당하는 하나의 플레이어고, 시청자는 유제로서 게임 하나을 학습한다. 배우처럼 반드시 잘 할 필요 없고 그때그때의 실망 분노 기쁨도 모두 자연스러운 서사의 일환이 된다. 쫄깃한 서사는 시청자의 몰입도를 증가시킨다.


문제는 한 번 플레이해서 분량을 뽑아내는 촬영과정에서 얼마나 재미있고 자극적인 요소를 추출해낼 수 있을까 하는 편집팀의 역량이다. 예컨대 DDR게임 화면과 플레이어가 같은 화면에 드러나는 연출이 재밌었다. 여기서도 배우는 플레이하는 일종의 체스말의 위치다.


연기자가 반드시 가장 잘하는 플레이어는 아니다. 시청자는 일단 게임 하나를 보았고, 당연히 자기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럼 방송은 일종의 광고다. 희대의 사진가 존 버거는 모두가 소장해서 일생에 세 번은 읽어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예술비평서 <다르게 보기Ways of Seeing(원서는 1972 출판)>에서 광고에서는 사건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넷플에 정기적으로 제출되는 게임 예능은 사건과 서사를 지닌 광고다. 첩보물, 조폭 느와르, 비극적인 멜로영화는 시청자가 따라 할 수 없으나 게임은 시청자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직접 해보고 싶어할 것이다. 사극 영화 세트장이 적절히 관리되면(물론 이는 지역단체끼리 협의가 어려운 부분이다) 관광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과 비슷하게, 넷플 게임 예능 포맷을 따라한 지역별 지역특색 리얼타임 게임장 같은 것이 소규모로 만들어지면 어느 정도 유입 효과가 있을 듯하다고 생각해본다. 



건축물처럼 거대한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파일럿 시스템으로 해볼만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보드게임, 방탈출 형식이 IP를 지닌 제작사에 의해 우선 성수 홍대에서 팝업스토어로서 만들어지고,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이다.미수단2 블랙룸만을 예시로 하면 판소리 중중모리 DDR이라든지, 팔공산 바위 디오라마라든지. 단양 대나무 퍼즐맞추기라든지.


지방창생의 일환으로서 지역특색 방탈출 게임을 만들면 도장깨기를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는 국내외 게임예능 순례자도 생길지도 모르겠다. 세금낭비의 대명사인 억 단위 흔들다리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는 방안이다.


또 생각해본 것은, 사건과 서사가 있는 광고로서 게임 예능에 UFO 외계인 등 미스터리 네러티브는 부가적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익숙한 설정이므로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메뉴얼도 없고 제대로 습득할 시간도 없다. 용병이 납치할 때 너무 고분고분 따라주는 첫 화의 장면처럼 그냥 시키는대로 따라한다. 만약 미국이었으면 돈 터치 미! 하면서 난리났을 것이고 일본이라면 좃또마떼! 하면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적 상황은 대개 아주 잠깐 대충 설명이 제공되고 빨리빨리 현장에서 플레이하며 경험적 지식을 습득한다.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미국이나 정확한 메뉴얼 리딩 사회이 일본과는 전혀 다른 한국만의 문화적 문법을 반영한다.


본부신호가 끊어졌다는 것을 표시하는 SMPTE 컬러바는 90년대를 소환한다. 미술팀과 연기자 모두 아직은 익숙한데,시청자 중 MZ세대는 이 감각을 모르기에 30년대는 와이파이 끊김 신호같이 다르게 표현할 듯하다.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는 여기서 끝. 늘 그렇듯 두보처럼 휘리릭 휘갈기고 말아서 오타와 비문이 있다. 많다. 틀린 부분도 있다. 부정확하기에 부족하고, 끊임없이 다른 전문가를 통해 배운다. AI에 결과물을 의지하지 않기에 불완전한 부분도 드러난다. 1년 이상 매일 이렇게 스스로 혐오할정도로 어설픈 노트를 대충 써서 올렸는데, 독자는 나의 글이 AI출력물이 아니고 사람이 썼다는 증언인으로서 초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