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북서울 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 나가서 별도 유리공간 헤르츠앤도우 돌고래 소리나는 360도 사운드 스케이프

2.국현 젊은작가전 김영은 소리청취



후각보다는 청각이 넥스트 트렌드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청각적 건축, 감정 경험, 몰입된 침잠.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다른 감각을 추가한다고 했을 때 시청각이 더 밀접하게 연관되고 시후각은 다소 임팩트가 적다.


이전에 비엔날레와 아르코에서 하고 올해 리움으로 오는 구정아 작가가 후각을 제안하는데 전달력이 쉽지 않다. 럭셔리 향수 브랜드와 협업가능성은 있어보이지만 이를 담론화하면서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쉽지 않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단독작가였던 구정아의 전시를 들여 온 아르코에서도 1층은 삼베 차양에 스토리를 전달했고 2층은 넓은 공간에 향을 배치했는데 관람객이 이동하면서 향이 계속 흩어지니 소구력이 부족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가 이슈다.


그렇다고 청각이 완전히 대체 감각의 지배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촉각을 제안하는 조각의 기세도 만만치 않기 때문.


다만, 미술의 인접분야인 영화를 참고해보았을 때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다양성 트렌드에 맞춰 장애인이 공적 영역에서 역할이 주어지는 가운데 할리우드에서도 청각장애인 배우 기용이 두드러진다. 프랑스 원작을 리메이크한 <코다>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것은 그에 대한 반증이다.


말은 하지만 못 보는 시각장애인 배우보다는 말을 못하는 대신 수화, 제스쳐와 얼굴표정으로 보여주는 청각장애인 배우가 스크린 테스트에 적절해보인다. 연상호의 <얼굴>에서 박정민과 권해효가 시각장애인 연기를 출중하게 보여주었으나 배우 본인들이 장애인은 아니었고 시각장애인이 캐릭터인 연기였다. 시각장애인으로 시각장애인 이외의 롤을 주기가 쉽지 않다. 한편 요즘 자막이 영상에 대부분 달려 있어서 오디오 없어도 괜찮고 혹은 더빙배우를 쓸 수도 있어서 범용성이 더 좋다고 보인다.


시+청각이 함께 가기 페어링이 적절하다. 갤러리에서 사운드를 전시의 일부로 포함하는 건 행정적으로도 수월하다. 



다만 청각을 별도로, 혹은 시각과 함께 어떻게 논의하고 미술담론을 꾸밀 것인가?


서론 중 :


이 파장으로서의 소리는 갤러리 벽의 수직 표면에 튕기면서 그 사이를 뚫고 진동한다. 소리 나는 작품이 벽들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소리는 방음 공간에서 빠져나온다. 결론적으로 “사운드아트는 벽을 통과할 뿐만 아니라, 모퉁이를 돌고 바닥을 지난다.


1장 중 : 


-소리의 반향을 흡수하게끔 미묘하게 조정한 텅 빈 갤러리는 관람객의 주의를 공간과 그 공간을 자기의 감각을 통해 알아차리게 되는 방식으로 돌려준다. 애셔가 그랬듯 브루스 나우먼은 갤러리 내부의 물질 구조를 통해 텅 빈, 소리로 채워진 갤러리 공간을 만든다. 이 갤러리 공간은 소리를 약화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신체를 감각하는 관람객의 인식을 활성화한다.


-블레서와 샐터가 기술했듯 이런 방식으로 “벽이 들리게 된다. 혹은 벽이 그 자체로 소리 에너지의 원천은 아닐지라도 벽은 청각적 징후를 가지게 된다.” 블레서와 샐터는 ‘청각적 건축(aural architecture)’을 논의한다. 이 개념은 ‘듣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experienced) 공간의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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