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원(Eternity) 보았다. A24가 제작사이자 배급사다. 판권이 비싸고 협상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그만큼 작품을 제작하고 선택하는 안목도 좋다고 들었다. 우리에겐 찬란이 있다.
미국적 사후세계란 무엇인가, 에 대해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해리포터 덤블도어 백색의 장면에서처럼 사후세계를 철도역 정거장으로 시각화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보편적이 장면이지만, 천국으로 떠나는 정거장 이전에 어떤 사후세계로 떠날지를 정하는 신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코엑스 박람회 부스같은 곳에서 온갖 애프터라이프를 소개하고 팜플렛을 주며 모객하고 피칭하는 게 정말 미국적 장면이다. 또한 죽음 후에도 첫 남편과 현 남편 둘 사이에 고민하는 것도 미국적 정서를 환기한다. 현실 가족 막장 싸움을 토크쇼로 만든 The Jerry Springer Show만큼 자극적인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복선을 깨알같이 제시하고 모두 싹 줍줍해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제시된 모든 단서와 디테일은 모두 재활용되니 친환경적라고까지 할 수 있다. 다음 소재는 모두 2번 나온다. 바텐더, 마시 바에서 영업하지 마, 조앤에게 편지, 캐런, 오크데일, 첫 대화의 다툼, 아카이브, 한국전쟁...
영화에서 한국이 두 번 언급된다. 67년 전 사별한 첫사랑이자 전남편 루크(칼럼 터너)가 한국전쟁(Korean War)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스위스 같은 숲 속 낙원에 들어간 후반부에 사람들에게 자랑할 때 나는 전쟁참가했어, 라고 하자 곁에서 첫 번째? 두 번째?(1차대전? 2차대전?)하고 묻는다. 루크가 한국(Korean)이라고 대답하고 그것도 전쟁은 맞지(괜찮지)(which counts)라는 대사로 끝난다. 플롯상 전쟁에 참가해서 일찍 죽었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굳이 한국전쟁일 필요는 없고 베트남전이라고 했을 수도 있는데 최근 한국의 문화적 힘이 쎄져서 대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통해 미국적 저승은 현세의 사적 관계가 이어지는 곳이며 사후 코디네이터가 따라 붙어 행선지를 정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이라는 점을, 그리고 낙원은 또 하나의 재밌는 여행지라는 경쾌한 상상을 읽을 수 있다. 심각하고 딥한 터치를 주지 않았다.
반면 한국적 저승은 더 잘해주지 못한 죄책감과 이승의 관계에 대한 한을 주된 감정으로 한다. <영원>과 정반대의 감정이다. 쿨하지 않다. 또한 취미 공동체 같은 미국적 저승과는 달리 한국적 저승은 각자도생의 연장선으로, 심판이라는 일종의 사후 경쟁게임에서 도덕적 승리를 서사의 축으로 잡는다. 바로 모두가 알고 있는 웹툰 원작, 천만 관객 신화의 신과 함께 2부작 (2017, 2018)의 내용이다.
저승의 7개 지옥을 통과하는 얼개와 불교와 무속의 상상계, 그리고 산 자의 죄책감이란 동양적 정서를 공유하는 대만 박스오피스 1위하며 상당한 흥행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본 또 다른 한국적 저승은 3일의 휴가(2024)인데 엄마(김해숙)가 저승에서 3일의 휴가를 받아 딸(신민아)에게 찾아오지만 보지 못하는데서 오는 서로의 한과 상호관계의 아쉬움이 부각된다.
이런 한국적 죄책감보다 쓸쓸함과 아쉬움이 강조되는 와비사비의 일본적 저승은 기억 편집형 저승이다. 영어 제목은 wonderful이 아니라 after life일정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제안하는 일본적 사후세계에 대해 예시다. 이 영화를 보면 일본에서 천국이 어디인가? 는 중요하지 않다. 천국 가기 전, 지나 온 생을 마감하는 게 중요하다. 이 중간역인 림보에서 7일동안 가장 소중한 기억을 선택해야하고 생전의 기억을 각자가 각자의 호흡과 단어와 억으로 전해주는 구전설화가 영화를 입체적이고 깊게 만드는 장치다. 행복했던 기억이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꽃처럼 피었다가 낙엽으로 사그라든다는 와비사비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쓸쓸하지만 찬란한 드라마 <도깨비>에서 차담하는 장면이 이 영화와 가장 닮았다. 그러니 죽은 다음에 어떤 천국에서 즐기고 놀까하며 여행지 선택하는 듯한 <영원>과 같은 감정이 아니다.
경쾌하다고 부박한 것은 아니다. 감독은 선택에 대한 고민과정을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로 삼는다. 선택이 늘 문제다. 첫 사랑인가 현 남편인가. 핫 가이와의 뜨겁고 젊은 사랑인가, 편한 남자와의 정과 안정인가. 못살아보아 아쉬운 삶인가, 알던 그대로의 연장선이가. 남자를 선택하는 문제는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와 연관되어있다. 그런데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가 아쉽기 마련. 시스템적으로 절대 선택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막아두었지만 이를 돌파하려는 시도가 클라이맥스까지 이어지는 서사적 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