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분야였는데 훗날 진입해 이해하게 된 것, 하나는 디즈니와 마블 영화이고 또 하나는 일본철도다. 주관심사인 영화, 전시와 관련이 있어서 이해도가 넓어졌다.


디즈니와 마블 영화가 한창 전세계를 풍미하고 티켓부스에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을 때 세계와 단절된 채 공부하고 있었다. 관심 주파수에 존재가 잘 인지되지 않았다. 어벤저스와 뮬란만 보았고 나머지는 몰랐다.


왕족이나 용같이 존재한다고는 알지만(믿지만) 실제로는 본 적 없고 때에 따라선 거의 평생 볼 일이 없는 아이돌과 유명배우처럼, 디즈니와 마블이 만든 팬들의 세계는 나와 떨어진 상상의 존재였다. 비근한 예시로 해리포터도 있는데 책을 읽었고 영화는 몰라서 다소 차이는 있다. 영화 피날레 2부작으로 대장정이 끝난다고 마케팅으로 난리를 쳐서 겨우 보았다. 지금 영화를 많이 보는 삶을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마블과 디즈니 각 시리즈 서른 편 이상 되는데 코로나 이후 몰아보기(빈지워칭)했다. 특히 디즈니 영화는 당시 1만원에 구독해서 티켓값 혹은 대여료가 상당히 굳었다고 아싸!했다. 황량한 아리조나 사막 배경에 차가 삶의 일부인 미국문화의 거리감이 느껴져서 한국에서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던 <카>시리즈와 아시안 디아스포라를 다룬 <메이의 새빨간 비밀>까지 다 보았다. 디즈니 드라마도 안달로리안, 시간변동관리국TVA가 나오는 로키도 보았다.


이런 시리즈 작품을 보며서 한 세대의 머리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상상적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전근대 시절엔 신화와 우화였을 것이고, 근대 시기엔 장편소설이었고, 현대엔 영화가 픽션의 공통분모를 담당한다.


10년도 이후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의 최신 버전, 알파세대가 훗날 디즈니 마블 작품을 보려하면 그 어마무시한 시청시간을 그대로 따라와야한다. 이는 마치 이들의 부모세대가 자기가 태어나기 몇 십 년 전에 발매된 전쟁과 평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작품을 읽는 것과 비슷한 일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수 백 시간을 들여 50편 이상인 알프레드 히치콕과 감상시간 3시간 이상 걸리는 세르지오 리오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았다. 어떤 이들은 수 백 시간을 들여 장편소설 토지(20권), 태백산맥(10권). 자기 생애의 어떤 비어있는 시간에 탐닉한 픽션이 하나의 단단한 취향의 공동체를 만든다. 그것은 음악, 영화, 패션, 미술 모든 것에 통용된다.


절대시간은 줄일 수 없어도 절차시간은 줄일 수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현지 학회가는 교통시간 없이도 좋은 논문을 읽어볼 수 있다. 물류망이 확충되어 펭귄북이 페이퍼백으로 파는 고전소설을 미국 깡촌 시골에서도 받아볼 수 있어 대도시까지 나가는 이동시간을 아껴준다. 강남 대치에 가지 않아도 인강으로 볼 수 있다. 섬에 나오지 않아도 로봇팔이 최고의 의사로부터 수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중세시기 필사본이었다면 다이아몬드와 같이 희소하고 값비싼 책이 인쇄혁명을 통해 지식의 대중화가 이루어져 사실상 모두에게 정보가 풀렸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이 화폐다. 고급정보가 내 앞에 있으나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도서관에서 로봇이 책을 간편하게 정리해고 찾아주지만 책을 안 읽으면 소용이 없다. 독서시간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AI가 정리와 요약은 잘해주어 절차상의 시간은 아껴주어도 프로세싱하는 필수시간은 아껴줄 수 없다고 송길영은 경량문명의 시대에서 말했다. 최고의 수학학습 프로그램이 곁에 있어도 누구나 코사인법칙은 외워야하고 공간도형과 삼각함수는 손으로 그려서 풀어야한다.


절차적 과정은 생략할 수 있으나 창작물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절대 시간량은 줄일 수 없다. 해가 떠서 뉘엿뉘엿 질 때까지 시간의 변화를 느슨히 감각하며 사각사각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독서시간과 고요한 방, 백색 어둠 속에서 영상물을 보는 시청시간은 줄일 수 없다. 요약본이 있더라도 한계가 있다. 남의 요약은 보조는 해줄 수 있어도 음미하는 과정은 자신의 것이다. 요약자는 창의적인 학습을 경험했고, 기학습자는 남의 정리본에 기대 자신의 생각의 결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아예 정보량이 0인 사람이 시간을 아끼고자 요약본으로 대신 감상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오리지널이 아니면 중간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다이제스트본을 보는 이유는 사회생활이 바쁘고 할 것은 많은데 FOMO로 인해 아는 체를 하기 위함이라 딱 그정도의 효용만 주고 시간이 지나면 뇌내에서 정보는 다 휘발되고 만다. 애초에 자신의 감각기관으로 축적하고 보관한 정보가 아니기 떄문이다.


무엇보다, 관람하면서 받는 나의 느낌, 떠오르는 생각, 포착하는 디테일 같은 과정 속의 신비는 오직 자신만의 것이고, 이는 불완전 이해를 포함한 정식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잘못 생각했다가 생각을 수정하는 것까지 포함해 과정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스토커 같은 작품을 얼마나 요약해줄 수 있을 것인가. 2배속하면 감독이 연출한 방식으로 시네마토그래피가 내 안에 습합되는 순간을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라 안 하느니만 못 하다. 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 등장인물을 정리해줄 수는 있어도 대신 읽어줄 수 없다. 러시아어를 배워 왜 이 남자이름이 오비치로 끝나는지 여자이름이 왜 브나로 끝나는지, 문화를 학습해 왜 애칭이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며 점차 이해도가 증가해 불완전 학습이 완전 학습이 되어간다. 의식의 흐름으로 쓴 율리시스처럼 이해가 어렵다는 것마저 자신의 것이다. 책 영화 전시 등의 문화생활이 일단 내가 직접 보고 맞든 틀리든 나의 머리로 생각을 해 본 다음, 다른 접근방식을 제공하는 좋은 평론을 읽으며 생각을 보완해나간다. 좋게 판단했으나 남은 나쁘다고 주장할 수 있고, 나는 형편없다 보았으나 남은 일품이라고 칭찬할 수 있다. 좋다 나쁘다는 맞다 틀리다, 선하다 악하다의 영역이 아니다. 취향의 호오를 분별하는 문제는 바를 정(正)과 틀릴 誤(오), 어긋날 違(위), 혹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파벌싸움하는 대상이 아니다.


무엇이 좋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무엇이 나쁘다 그 예시는 무엇인가? 이이렇게 호오를 공적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예시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를 일별하는 지식의 탐구과정 사슬 전체가 과정 속의 신비다. 너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는 나쁠 수 있다. 괜찮다. 그런 미적판단은 양립가능하며, 나의 감상이 너의 감상을 막지 아니하고 되려 교학상장이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네가 아는 것은 절대선이 아니다. 


X세대도 혈의 누 같은 국한문소설을 읽어야 개화기 시절의 감성을 이해하듯, MZ세대도 스파게티 웨스턴과 누벨바그를 알기 위해 요약본 없이 자신의 시간을 들여 시청해야하며, 알파세대도 언젠가는 디즈니 마블을 학습해야 21세기 초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시리즈 작품을 보면서 생각한 것들이다.


엔화가 싸고 한일 문화교류가 많아지고 저렴한 LCC 티켓이 많아져 일본 여행이 편해지면서 일본 전시를 다니게 되니 일본 철도에 대한 심도 높은 이해가 부산물로 생겼다. 승차권과 좌석권의 차이도 알게 되고, 동력 차이, 철도망, 노조미, ~계, 등의 고유명사에 익숙해지고 지리, 물리, 전기전자에 대해 알게된다. 재밌는 일이다. 아래 영상을 통해 더더욱 잘 알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BupUbztYzk


피겨스케이팅 야구 바둑 아이돌덕질 클래식 말고 또 모르는 분야는 롤이다. 페이커가 유명하다 것만 알겠지만 어떤 점에서 레전드 플레이인지 전혀 모르겠다.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른다. 박수는 칠 수 있지만 이스포츠느 영원히 모르도록 남겨두고 싶다.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분야를 더 깊게 파는 것도 시간이 부족하기 떄문이다. 만약 정말 더 시간이 있다면 책(신문잡지), 영화(드라마애니), 전시(미술만화웹툰)의 인접분야인 연극, 뮤지컬, 전통공연, 클래식을 보겠다. 티켓값도 10배 이상 비싸고 헤메에 옷에 치장도 해야하고 교통시간도 들어서 안 하는 것들이다. 가끔 영화 안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전시 안의 녹화 영상 상영이나 방송 유투브에서 대리 감상은 했다. 예컨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윌리엄 켄트리지는 여러 전시에서 보았는데 작년 내한 연극은 못 갔다. 시간과 돈이 더 생기면 스포츠, 이스포츠, 바둑, 아이돌 같은 (대단하지만 잘 모르겠는) 분야 말고 내가 선택한 분야의 지적 해상도를 높여줄 수 있는 분야에 시간이라는 화폐를 투자하겠다. 일본열차 영상을 보고 생각한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 여기서 끝. 아, 비슷한 계열로 비행기도 있다. 전시탐방에 간접적 도움이 된다.



옛 포스팅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7021042


유명한데 난 잘 모르고

아무리 알고 싶어도 전문가 앞에서 뭔가 벽이 느껴지는 분야는

피겨스케이팅 야구 바둑 아이돌덕질 클래식이다

이 분야 팬이 대화에 끼면 목사님 설교를 듣는 새신설마냥 순한양이 된다 이게 맞다 박수치라하면 고분고분 따르고 만다

김연아가 뛰면 오오 하지만 정작 무슨 점프인지 난 잘 모르겠다 해설자가 트리플 악셀이라고 하면 그제서야 따라서 박수치는 정도. 그래도 시즌 때 좀 챙겨서 보다보면 몇 회전인지 대충 감은 오지만 무슨 기준으로 예술성과 테크닉 점수를 주는건지는 알 수 없다

야구도 그렇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화가 만년 꼴찌고 부산은 갈매기고 뭐 어딘가에 지역구가 있고 게임회사가 구단설립했다는 것 같고 버스 642보고 웃는다는건 알겠다 병살타니 도루니 삼진아웃이니 하는 말은 알겠지만 그 이상은 까막눈이다

바둑에서 집을 지었느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아이돌 그룹 구분은 하지만 앨범과 신상정보까지는 모른다

클래식은 일단 들어가면 못 나오는 덕 중 덕으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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