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4102509490004606


이도현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이 이래저래 추천한 책은 거진 읽었다. 나고야대 명예교수 미야지 아키라의 번역서 <열반과 미륵의 도상학>, 성백효의 <한문공부와 번역이야기>, 데니스 수마라의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하는가> 등등.
















시간의 세례를 입고도 살아남은, 묵힌 장같은 좋은 양서를 보통 샤라웃했다. 우리전적을 탐구하는 그의 전공에서 배태된 감식안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난 무술에는 큰 관심은 없어 넘기곤하니 그의 관심사와 완전 공명하는 것은 아니다(나름 선긋기)

1992년에 나온 중앙아불교 도상자료 모음집, 1945년 출생 예산이 배출한 걸출한 희대의 한문학자의 조언서, 2002년에 나온 캐나다 캘거리대 교육학자가 정보과잉의 시대에 문해력 증진을 주장하며 상호구성하는 텍스트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


그러나 이 모두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교양, 학술서고 한편 모두에게 숨겨진 보물같은 책도 있다. 역자로서는 품은 항하사만큼 들었으되 모래톱에서 잊어버린 악세서리를 찾는 것처럼 독자를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책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무료로 원문보기를 할 수 있는데도.

https://www.nl.go.kr/korcis/data/boardDetail.do?bdIdx=797&currentPageNo=1



1년쯤 전에 올라 온 스레드지만 잊지 않고 있다가 짬이 날 때 읽었다. 별감방일기는 고종 20년간의 액정서의 업무일지를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액정서는 왕실의 잡무와 심부름을 담당한 기관이고, 왕실 경호인 별감이 소속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별감방일기는 경호인의 업무일지라 할 수 있고, 거칠게 비유하면 왕실도 건드릴 수 없던 비자금 은닉거래장표에 가깝다. 일기지만 매일 쓴 일기는 아니고 몇 달 간격으로 띄엄띄엄 작성되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4102509490004606


연구총책임자 장유승 교수는 한국일보 기사에서 흥미를 북돋게 배경을 더 서술하며, 왕실이벤트 때마다 각종 명목으로 반강제로 뜯긴 예시를 나열했다. 나아가 별감은 한양 기생의 뒷배로서 유흥업소 운영을 했다고 말한다. 봉급은 쥐꼬리 같으니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을까. 우리나라도 싱가폴처럼 국가공무원에게 연봉억대로 최선의 대우를 다하고 책임과 의무를 물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경우 공무원 박봉과 각자도생의 계보가 더 오래된 듯하다. 마치 착복의 계보가 있는마냥, 일제, 625, 군부정권,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양태만 바꾸어 뒷돈 챙기기가 지속되었다. 정경유착, 연예계와 기업인의 밀월관계, 조폭의 마약밀수 같은 이야기는 영화드라마의 단골소재다.


역사의 맥락은 흥미롭지만 번역서는 건조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처럼 나름 건질만한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니 사극작가가 읽을리 없다. 여성영웅소설이 나오는 야담처럼 재미도 없다. 장부를 번역했으니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 주었고 문안했고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 나열했을 뿐이다. 심지어 저본은 한문인데 처음 장부가 시작한 1864년에는 반듯반듯 적다가 1882년엔 글씨가 괴발새발이다. (전근대 한문서적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기 때문에 pdf에 원문사진이 있어도 뒷페이지에서부터 거꾸로 오름차순으로 읽는다) 다행히도 적는 문구가 대동소이해서 그래도 눈치껏 알아볼 수 있다.


여기서 1차사료와 고군분투하는 전문가와 2차사료를 토대로 대중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가 갈라진다. 어느 누가 더 고귀한 것은 아니고 각자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 보이는 곳에서 무대와 소품을 만드는 제작자가 있고, 그이들이 제공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무대 뒤의 노고는 베일에 싸여 관객들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스테이지 프로듀서가 없다면 멍석이 애초에 깔릴 리가 없다. 고전번역위원들이 일견 쓸모없고, 아무도 읽지 않는 도서를 번역할 때는 누군가 언젠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에 호응하여 원문을 보았다. 역시나, 지난한 작업이었으리라, 한 눈에 알 수 있다.


연구원들은 저본에 없는 부분도 승정원일기로 보충했다. 용어정리를 하면서 격기役只(음식차려대접)같은 이두도 설명을 베풀었다. 역지 아니다. 한문의 음과 훈을 빌어 표기하기에 이두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사알(심부름꾼) 같이 고려시대부터 있던 직책은 으레 업계에서 상식적으로 알기 대문에 생략하지만 사약(열쇠담당)은 풀이를 제공했다. 격기(음식을 지어 올림)은 서술했으나 敎是같이 상식적인 표현은 생략했다.


특이하게 눈 여겨 본 부분은 1880년대에 일어 가타가나로 표기되어 일본과 교류가 있었다는 점(엄씨가)이다. 경진년(1880) 11월 26일 기사에 일본국서를 중희당에서 친히받았다는 문구를 굳이 장부에 적은 점도 독특하다.


원문에서 국역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저자에 따라 필기체가 다르기도 하고, 그 시대에만 쓰는 용어가 있고, 이체자도 많다. 예컨대 사알인데 저본에는 알대신 錀(발음은 윤)되어있어서 문맥에 근거하여 수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알을 사약이라고 써서 수정했다는 모양이다.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1882임오년(고종19) 1월 15일 기사 p212의 각주에 저본의 錀을 알로 교정했다고 하여 찾아보았다. pdf p261(p170) 우측으로부터 7행에 있었다.


또, 1883계미년(고종20) 9월 3일 기사 p223의 각주에 사알을 연문으로 보아 삭제했다고 했다. pdf p252 우측으로부터 5행 가운데에 있었다. 둘 다 정말 알이 아니고 錀으로 되어있어서 교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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