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싱어게인4 파이널 1차 TOP7의 무대를 보았다.


2009년 슈퍼스타K1 이후 16년이 넘는 동안 한국 관객은 음악경연 프로그램의 달인이 되었다. 파이널쯤 가면 처음 순서에 배치된 가수는 올라갈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뒷쪽에 임팩트와 몰입도를 주기 위해서다. 공연장이나 영화관에 지각하는 관객처럼 방송을 늦게 트는 사람들은 앞부분을 조금 미스해도 충분히 뒷 순서에서 완성도 있는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그 효시를 찾아보자면 쌍팔년도 대학가요제 무한궤도(신해철)다. 가장 늦게 불른 가수지만 곡 처음부터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앗아갔다.


순서는 이렇다.

김예찬 <우리 후회하지 말아요>

슬로울리(서희) <Wait For Me>

규리 <누구도 받지 않을 마음이라도>

이오욱 <두렵지 않아서>

서도 <사랑이야>

김재민 <Fancy Like This>

도라도 <I want You>


역시나 뒷쪽으로 갈수록 좋았다. Top7중 김재민과 도라도가 완성도와 임팩트가 있었다


김예찬은 극한의 다이어트의 노력이 인상적인 재도전자로 시청자 투표는 1위에 머물렀지만 이번 무대 자체는 그녀의 최선은 아니었다. 고음은 훌륭하지만 장기간의 경연으로 인해 피로하지 클라이막스에서 힘을 쥐어짜는 듯했다. "우리 연인으로 만나요" 의 코드 진행과 전달력은 매우 좋았다.


슬로울리(서희)는 천재적 기량을 가지 가수인데 프로듀서를 잘못 만났다. 선곡 미스다. 이번을 계기로 김형석 작곡가의 총기는 끝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이상 할 말이 없다. 2022년 SBS 싱포골드에서 박진영이 과하게 자기 색깔을 넣어 망친 헤리티지 매스콰이어의 무대가 생각난다.


규리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때 좋은 형태의 가수인 것 같고, 감정을 쏟아내는 라이브 무대 체질은 아닌 것 같다. 더 좋은 곡은 그전에 있었다. 그래도 최근 트렌드는 경연 프로그램 상위권에만 있어도 자기 음악이어갈 수 있으니 앞으로 기대가 된다.


시원한 직선으로 뻗는 고음이 멋들어진 락커 이오욱으 조원상 프로듀서를 잘 만났다. 적절한 베이스라인이 고음의 미성을 고층 고딕성당의 무게를 서포트하는 비계처럼 잘 뒷받침해준다. 슈퍼밴드1에서 기타 4대로 콜드플레이의 Adventure of a Lifetime을 편곡할 때 베이스기타를 치다가 일렉사운드를 스위칭할 때부터 프로듀싱 능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최근 <체인소맨 레제편>에 삽입된 요네즈 켄시의 Iris Out의 멜로디를 베이스로 잡아 베이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은 그다. 이오욱의 꾸러기 표정은 소년미가 뿜뿜 나온다. 가수의 퍼포먼스도 일품이었고 전달력도 좋았고 편곡도 훌륭했다.



조선팝의 서도는 안신애 프로듀서를 만났다. 어쩌면 옛날에 태어났으면 박수무당을 했을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옛 전통의 정서를 전달하는데 큰 소질이 있다. 화음이건 코드건 분석을 멈추고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마지막 우는 모습의 눈물 한 방울이 노래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번외로 안신애 프로듀서는 6년 전 2019년 채널A의 보컬플레이에서 더바버렛츠 멤버로 경연대회에 나와 넘치는 끼를 분출한 적이 있다. 흥이 넘쳐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말괄량이였다. 이 아이를 어디에서 받아줄꼬.. 하는 엄빠의 걱정이 오늘 화면에 잡힌 그녀의 차분한 모습에서 약간의 안도를 얻었다. 물론 중간중간 잡히는 화면에서는 여전히 끼가 넘쳐보였지만 말이다. 얼굴 느낌상으로는 서도가 더 나이가 있어보이나, 안신애가 86년생 서도는 96년생이다. 남동생하고 대화하는 듯한 안신애의 누나 같은 모습이 낯설다. 프로듀싱은 가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작업한 좋은 결과물이다. 원래 더바버렛츠의 작곡은 안신애 담당이었을 정도로 실력파다. 온스테이지에서 나온 더앰비규어스컴퍼니의 탄력있는 춤과 한국관광공사의 영상으로 유명해진 이날치의 <범내려온다>도 베이스 프로듀서의 힘이 컸다. 조선팝이 흥하려면 글로벌 컨템포러리 감각을 지닌 서포팅 롤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서도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


그러나 김재민과 도라도의 무대는 이전의 훌륭하고 짜임새 있는 노래를 모두 잊게 만들 정도로 괜찮았다. 김재민은 왼손을 수평으로 두고 관객 호응을 유도하며 왼쪽을 쳐다보는 자기만의 퍼포먼스가 이제 시그니쳐로 각인되었다. '디기디기'의 전달력이 좋다. 백업 코러스가 들어오고 세션이 받쳐주었을 때 더 빛난다. 라이브 무대를 지배하는 컨트롤 능력이 좋다. 모름지기 모든 예술가는 자기 안의 씨앗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아야한다. 내 재능이 돈과 기회와 상황이라는 외부조건을 만났을 때 크게 터질 만한 것인가? 아니면 소규모로 조그마하게 관리해야하는 것인가? 예컨대 영화 각본이 투자사를 만나면 비싼 특수효과를 넣고 다양한 로케와 유명배우를 화면에 담을 수 있게 된다.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 어시를 고용해 필선이 더 많아지고 배경이 화려해지며 애니로 2차믹스, 캐릭터는 굿즈시장으로 진출시킬 수 있다. 음악은? 더 큰 무대, 더 많은 선율, 더 좋은 음향기기.. 이를 감당하고 누릴 수 있는 자가 있고 벅찬 이가 있다. TOP7 무대 중에서는 이오욱, 김재민, 도라도 셋이 이를 증명했다 고 본다.


도라도는 외국인으로서 옛 한국적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이 훌륭했다. 이방인은 늘 소속된 공동체에 자기 포지션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도, 심지어 미국에서 태어난 동양인 교포도 계속 손님 취급당하며 공동체 안에서 자기 PR을 한다. 심지어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마저도 백인들에게 손님 취급을 받는 미국에서 한인3세가 되어도 인정 투쟁은 그치지 않는다. 언어를 잘 하기 위한 노력에 더해, 자신이 소속 공동체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를 늘 어필해야하다. 나는 도움된다고. 필리핀인으로서 한국어를 연마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었고, 더 중대한 과제가 그녀의 앞에 있었다. 왜 한국시청자들이 필리핀인의 노래를 들어야하는가? KPOP 걸그룹이 외국인 멤버를 넣어 발족시키는 것처럼 해당 국가 시장 진출을 위해서? 싱어게인은 전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이에 도라도는 이방인일지라도 한국적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고 실력으로 증명하는 동시에 한국의 옛 발라드 가 충분히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치 동양인이 옥스포드나 하버드에서 영문학, 서양고중세, 유럽철학을 전공하는 존재감이 서양의 지역성을 보편으로 승화시키는 역할과 같은 이치다. 같은 맥락에서 도라도가 한국노래를 불러주는 자체가 국위선양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경연곡은 공교롭게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왔는데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1988)

박정운의 오늘 같은 밤이면(1990)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

윤종신의 환생(1996)

에 이어 로이킴까지 왔고

이번에는 이제 막 따끈따끈 나온,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커스터마이징 곡까지 불렀다


도입부 "아무래도"의 전달력과 코드가 좋아 순간적으로 집중된다. 중간에 키전환하고 분위기 바꾼 것도 설득력 있고, 싸비도, "네가 고른"의 터지는 발성도, 클라이막스의 풍성한 고음처리도, 중간중간 묻어나오는 그리운 옛 8-90년대 터치도, 자연스러운 한국어 모음처리도, 마무리까지 모두 좋았다. 프로듀서 김도훈의 멋진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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