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대홍수 보았다.


재난물에 게임 멀티버스와 우주 SF를 모두 섞은 종합 선물세트 영화다.


거대한 물의 벽은 인터스텔라(2014) 밀러 행성이 생각나고, 시간 도돌이표 멀티버스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2기(2009)에서 에피소드 14개 중 8개가 여름방학 반복 시퀀스에 사용된 것이 생각나며, 거대한 아파트 대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재난 탈출은 엑시트(2019), 다중 엔딩은 니어 오토마타(2017), 검은신화오공(2023) 같은 다양한 게임에서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연출에 참조했는지는 알 수 없고 비슷한 레퍼런스를 생각해보자면 이렇다.


10년 전이었다면, 적어도 엑시트 때 나왔으면에 좋은 반응을 얻었을 것 같다.


그런데 잠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평이 매우 박한 것 같다. 특히 전반부 억지 신파 클리셰에 물린 것 같다. 보여줘야할 것을 박해수의 대사로 설명하고 끝나며, 긴박한 상황을 찬찬히 설명하지 않고 급하게 움직이라고 윽박지르는 등 각본이 거칠고 엉성한 점은 있다. 그래도 욕먹을 영화는 아니었다고 본다. 감독이 어디서 어떤 트릭을 주려고 했는지 충분히 알겠다. 바뀐 것은 반복되는 클리셰에 분노하는 수준 높아진 관객이다.


관객은 여섯 살 먹은 신자인(권은성 분)과의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모성애를 느껴야하며

공적 도움 없이 각자도생해야만하는 한국사회의 극한 서바이벌 상황에 살아남기도 지겨운데 픽션에서마저 느껴야한다.


비신자 모인 곳에서 통성기도하는 기독교인이 위기에 설교하는 장면을 넣어 실질적이지 않은 대처를 풍자하고

재난 상황에서 공교롭게 산기가 온 임산부를 끼워넣어 얼마나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는지 보여주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생명이 탄생한다는 점을 굳이 보여주고 싶어 비현실적으로 산부 혼자 출산을 하고 남편은 진통이 오는 부인을 두고 다른데 갔다가 돌아오게 만든다.


소행성 충돌로 빙하가 순식간에 녹아 홍수가 몰아친다는 점은 알겠지만 쓰나미로 고생하는 이웃나라 일본도 그정도 높이의 파도가 그정도로 자주 몰아치지는 않는다. 물론 이는 나중에 빛나는 데이터 알갱이들로 충분히 설명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홍수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여아는 우연히 엘베 안에 갖혀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20대 불량 남성 둘은 약탈을 하고 다니며 사람들은 우왕좌왕한다.


이상한 점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는 나중에 우주공간의 생체기억 바탕 데이터 실험이었다고 정리가 된다.

그래서 전반부까지 온갖 클리셰와 억지 설정과 부적절한 대사에 이해를 강압받으며 분노하던 관객은 후반부에 가서야 이런 트릭을 위해서 전반부를 희생했구나 하고 이해한다.

신경망 알고리즘에서 수없는 반복학습을 거쳐 AI 이모션 엔진이 완성되기 위해 김다미는 몇 만 번의 리플레이를 겪는다.


<승리호> <더문> <정이> <고요의 바다> <별들에게물어봐>의 쎄한 반응을 볼 때 한국은 SF의 불모지인가? 되묻게 된다.

SF는 소련과의 군비경쟁, 스타트렉 스타워즈와 ET 등 픽션, 서부 웨스턴의 오랜 전통을 지닌 미국 풍토에서만 배양될 수 있는 이야기일까?


김병우 감독은 SF의 설정을 넣었지만 주된 것은 아니다 <전독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상현실 게임 설정이 더 지배적이다. 약탈꾼과 몸싸움하는 장면의 부감샷도 그러하고, 나트륨 금빛으로 빛나는 벽도 그렇고, 멀티엔딩 설정을 보아서도 그렇다. 참고로 부감샷을 잘못 사용한 예는 <하얼빈>의 이토히로부미 총살 장면이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긴박한 장면인데 너무 빠르게 지난가며 게임적으로 희화화했다. 좋은 예시는 <기생충>의 반지하 빈민동네 홍수장면을 전체적으로 보여준 신이다. 신중하게 잘 사용해야하는 카메라 연출이다.


우주든 게임이든 SF적 설정이 메시지에 부합되도록 노력을 경주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문제는 메시지가 적절히 설득되었냐는 부분인데 오늘날 한국인의 정서와 합일하지 못했다. 영화의 지향이 지금의 감각와 맞지 않고 시대를 벗어났다, 는 것이 문제였다.


일하는 엄마가 업무전화 받다가 엄마의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의 소원을 못 들어줬다는 죄책감 섞인 모성애가 반복구성되는 가상현실공간에서 다듬어지고 길러진다는 주제. 우주공간에서 실험체가 되어 새 인류를 위해 이모션엔진을 한 몸을 던져 책임지고 완수하겠다는 의지. 대홍수라는 재난에서 남은 잘 모르겠고 여력이 있으면 도와주겠고 할 수 있는 한에서 조금 신경은 쓰지만 어쨌든 최종적으로 우리 아이와 나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모양새. 이런 점이 올드하다고 본다. 올드하다고 나쁜 것은 아니고 보편적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 시청자는 신선하지 않으면 뒤쳐졌다고 생각한다. 온갖 프로모션으로 생쥐몰이하고 트렌드에서 밀려나면 생존게임에서 탈락한다는 위기의식이 만연한 한국의 극단적 Fomo 문화 속에 새롭지 않음=도태라는 등식이 성립된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영화는 낡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화는 글로벌적으로, 특히 동남아에서는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연말에 너무 쟁쟁한 경쟁상대가 많지만 말이다.


영화의 멱살을 잡고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김다미다. <마녀>와 마찬가지로 김다미 배우의 열연이 없었으면 영화는 완성되지 않는다. 박해수와 권은성까지 셋이 핵심이다.


특히 김다미 배우의 여러 표정 연기가 배우로서 물이 올랐다고 생각된다. 내년 영화상을 받을지도. 

박해수의 대사는 그래도 잘 다듬었다. 웃프다. 반말과 경어를 묘하게 섞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일하는 아저씨 연기다.


예 납니다 (나입니다) 같이 합쇼체에 비겸양 인칭어를 섞는 부분이 특이하다. 보통 저입니다(접니다)라고 쓴다.


"근데 그쪽은 애 포기하겠다고 했다면서요 이럴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아니야? 진빼지 맙시다 작별인사 잘 하시고" 같은 부분도 특이하다. 원래 박해수의 연기는 일품이었고 대사전달력도 좋았다.


김다미 배우의 얼굴 표정 모아본다.


자다 깨어난 눈

입오므리며 보고 싶은 엄마랑 통화하는 표정

망연자실

애원 등등


참 좋은 연기를 보고나니 아마 앞으로 7년 정도는 김다미 배우는 좋은 각본을 만나 큰 영화배우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계에서 김고은, 김다미 두 배우가 기대된다.


어쨌든 배우 연기, VFX, 후반부 트릭은 좋았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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