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현대어의 공통 조상 라틴어에 기반한 필담으로 스웨덴부터 스페인까지 지식인들이 교류해 과학학명을 촉발시킨 편지공화국이 있었던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도 높은 수준의 고전실력을 담지한 한문식자층이 일본통신사와 청사절단 등을 통해 필담으로 교유했던 초기형태의 문예공화국이 있었다.

그런데 유럽형 라틴어권 편지공화국과 한자문화권의 문예공화국은 같지 않다. 라틴어의 기원이 된 로마와 그 부근 이탈리아의 경제와 인구규모는 유럽평균치인데 중국의 그것은 압도적이기에 유럽적 평등과 호혜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프랑스와 모나코, 스페인과 안도라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이보다 더 실용적인 문제는 언어다. 로마자, 즉 알파벳은 표음문자이고 유럽 각국이 공유하는 인명과 지명은 각기 사투리로 읽는 느낌이다. 피터, 피에르, 뾰트르, 페테르, 삐에로 다 같고, 조셉, 호세, 쥬세뻬, 죠제프 다 같고, 존, 쟝, 후안, 얀, 요안 다 같다.
히브리와 헬라어에 기반한 공통 어근이 각 언어의 음운체계 와 철자규칙 안에서 재형성된 것이고 언어권의 소리 풍경 안에서 나름의 정체성이 부여된 것이다. 내 몸 사이즈에 맞게 다듬은 가구가 내 물리적 공간 한 켠을 차지해 심리적 기억의 일부분이 된 것과 같다. 이런 사투리는 언어적 자기화로 각자의 목소리로 세계를 부르는 방식이다. 공통의 문화적 저장고에서 멜로디를 각자에게 편한 방식으로 변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명은 문화적 역사적 의미가 더 부여되어 인명보다는 복합적 층위가 있다. 어떤 지역의 이름은 소리만 바뀌는데 어떤 지역의 이름은 거의 다른 존재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각 언어가 그 도시를 언제,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런던 론드르 론드라 파리 빠히 파리지 로마 롬 등은 언어별 악센트 차이에 불과하고 의미 손실 없이 통용된다. 그런데 뮌셴, 뮈닠, 모나코 디 바비에라(수도원 공국)라든지, 쾰른, 콜로뉴, 콜로니아(아그립빠)라든지, 플로렌스, 피렌체라든지는 어떤 언어가 유럽문화를 지배할 때 널리 알려졌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제국어의 엑소님(외명체계)이다. 그러니 뮌헨을 모나코디바비에라라고 부른다면 지정학적 거리감이 줄어들며 타국의 도시를 자신의 문화적 헤게모니 안에 끌어들인다. 중국이 교토를 찡뚜(수도 도시), 도쿄를 똥찡(동쪽 수도)라고 불렀을 때 느끼는 감각이다.

지금은 영어의 헤게모니. 코펜하겐처럼 현지인은 아예 다르게 발음하는(그러니까 원어가 손실되고 영어식 독음이 더 보편적인) 곳도 있다. 꾀뻰하웅. 괴테스버그의 현지발음은 예테보리. 빈 비엔나 수준이 아니다.

데이빗, 다윗, 다비드처럼 어떤 건 사람 이름 같고, 어떤 건 성경 이름 같고, 어떤 건 미술 조각상 같은 것도 있다. 아랍에서는 다우드, 다부드라고 부르기도. 기표는 같은데 기의는 다르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같은 이름처럼 보여도 기호 체계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차이의 자리를 점유하고 있으니 동일 기표의 차연으로만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혹은 기표의 공통분모는 같은데 발화될 때마다 재구성된다고 생각할 수도.

어쨌든 유럽어는 인명이나 지명을 공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투리와 악센트 차이가 있을 뿐이다. 표기법이 다른 경우는 언제 어떤 문화가 지배적이었냐에 따라 어떤 이름은 이탈리아식으로, 어떤 이름은 프랑스-라틴어식으로, 어떤 이름은 영어식으로 알려졌기 때문인데 표음문자이기에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문제가 한자문화권에서는 쉽지 않다.

언뜻 한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자는 로고그램, 표의문자이기에 읽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한국의 한자읽기 방식은 당음으로, 당나라 때 행정용어, 과거제도가 들어오며 삼국시대 읽기 방식을 밀어내고 고착이 되었고 일본은 불교용어에서는 양나라 때 오음도 당음과 함께 유지하고 있다(건립-곤류 등등). 대만의 객가어(하카)는 복건성의 남송 발음을 일부 유지하고 있고(시간-시준/시진) 현대중국어는 만주의 권설음을 더한 청나라식 방식에 홍콩의 광동어는 9성의 남방 발음이다.

라틴어처럼 기계적으로 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지도 않다. 한일중 학생, 각세-, 슈에셩은 한자는 같고 의미도 배우는 자로 같지만 베트남은 학생이 아니라 생원이라고 한다. 일본 여자 이름 아스카는 한자로 명일화인데 밍뤼화라고 읽기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마츠다 세이코는 송전 성자인데 송티엔 셩즈.. 소나무 밭 성인 자식이라고 뜻을 생각하면 어지럽다. 한국의 일산에 살면서 한자의미를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의 산, 한 뫼. 대전의 한밭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곡역 오오타니역.. 한국도 군산이 있고 일제시절 중요도시였고 일본에도 비슷한 지명이 있고 중국에도 비슷한 지명이 있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다. 자국에는 없는 읽기방식이 허다하다. 그리고 지명에는 오랜 역사적 의미가 있어서 타문화권의 의미장에서는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각국의 역사서보다 지리지가 더 번역이 어려울 거다
그러니 로마자처럼 표음문자도 아니고 이해방식, 읽기방식, 역사적 의미도 다른 한자문화권은 일견 한자를 사용하는 듯 해도 차이가 너무 크다.

그래서 유럽 라틴어기반 문예공화국과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문예공화국은 같지 않다. 유럽보다는 아랍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아랍어가 중국어처럼 오랜 기간 깊은 문화적 개념어를 제공한다. 페르시아어는 외래어인 아랍어 개념어 명사에 자국어 동사 접목하는게 한자에 히라가나기반 용언붙이는 일본어 같다. 예컨대
하다라는 의미의 카르담(كردن)과 する를 붙인다. فکر كردن (생각+하다思考+する), استفاده كردن(사용+하다使用+する)
이런 방식으로 아랍어 명사에 쇼담شدن(되다), 더쉬탐 داشتن (가지다), 부담 بودن (이다)붙이는게 일본어에서 한자에 になる (되다), がある (가지다)붙이는 것과 비슷

한국어와 베트남어의 짬뽕이 튀르키예어 같다. 서구화되었다는게 한국과 비슷하지만 튀르키예어의 알파벳 사용은 베트남어의 쯔놈과 비슷하다. 문자가 다르면 폰트도 다르고 인쇄방식도 다른데 알파벳 사용하면 서구국가와 문서호환이 가능하다. 학교 마드라사를 메드레세라고 하는 발음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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