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신간 나왔다.
철학자의 난해한 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이는 마치 제분 기술이 조악하던 전근대 유럽에서 거친 겨가 섞인 곡물을 바탕으로 장기 보관을 위해 수분을 날려 바게뜨를 딱딱하게 만들었기에 일반인은 저작과 소화가 힘들어지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런 글을 다루는 번역자는 존중받아야 할 2차 창작자로서 흡사 어미 강아지가 그 돌덩이 같은 빵을 턱뼈가 으스러지고 어금니뼈가 닳도록 오물조물 씹어 죽으로 만들어 아기 댕댕이 입에 아 하고 넣어주는 것과 같다.
역자의 생각과 해설이 풍부해서 좋은 독서였다. 저녁 내내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사진3의 각주에서 바르트가 사용한 figure는 윤곽선이나 형상뿐 아니라 안색, 문체를 뜻하기도 한다는 해설이 좋았다.

이렇게 번역가만 제공할 수 있는 친절한 해설은 독자의 이해를 한 층 더 풍요롭게 하고 글을 선명한 해상도로 읽도록 해준다. (얘네 나빼고 혼자 재밌는거 읽고 있었네!)
나는 앞으로 현대 예술전이나 유럽 회화전에서 드로잉을 보면 이것이 예술가의 윤곽선이자 안색이자 문체구나 하고 바르트를 경유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고마운 번역자. 누군가에게 당연하고 사소한 용어겠지만 무지한 빠가야로인 나에게는 맹인이 눈을 뜨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다. 교육의 신성함이여 지식의 낙수효과여
첫 도입부는 사진과 겸한 인스타 감성의 글로 배치되었고 중반부 이후부터가 곱씹어 음미할 글이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일관적인 네러티브라기보다 초역 부처의 말처럼 글 꼭지별로 분절된 옴니버스식 아이디어 모음집이다. 숏츠형 글쓰기나 글자수가 제한된 스레드 글감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나는 그 글자수를 무시하고 길고 긴 글을 아무렇지 않게 투척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주고 있지만 말이다. 아직도 한참 남았다! 정상까지 분발하자!
바르트의 글맛은 지속력이 있고 발칙한 생각의 밀도는 조밀한데 부피는 독자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가지런히 잘려져 있는 것이 마치 발칙한 빌브라이슨의 만연체를 쑹텅쑹텅 나이프로 잘라놓은 것 같은 인상이다.
그런 잘 커팅된 글의 예시는 앞 부분에 아페리티프(식욕을 돋우는 식전주)로 제공된 인스타형 사진 포함 에세이인데 개중 맛있는 부분은 사진2의 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름답고 파리출신의 할머니와 착하고 지방사람의 할머니
착하고 귀족가문출신이라는 점에서 일드 <화려한 일족((華麗なる一族카레나 이찌조쿠>의 교토 구 화족 가문 출신(公家華族) 만표 야스코(万俵寧子)가 생각난다.

사회적 화술에 민감해 수도원 학교에서 배운 접속법 반과거 시제를 고수했다고 한다. 패션과 더불어 언어는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인지하고 있던 것일테다.
프랑스어의 접속법 반과거와 비슷한 감각을 우리말 속에서 찾아보자면
조선배경 사극 대사체의 하옵니다, 하옵건대, 하시옵소서 같이 현대 일상표현과 다른 시간적 거리와 사회적 위계감을 주는 표현이나
20세기 개화기의 국한문 혼용체의 오등은 자에 .. 선언하노라, 같은 고풍스러운 느낌과 같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신춘이 세계에 래하야 만물의 회소(回蘇)를 최촉(催促)하는도다.. wow! amazing하도다
접속법 반과거 le subjontif imparfait라고 말은 듣는 순간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적으로
두졔스으에스, 두졔스이오엔에스, 두졔스이으제
같은 나지막한 읊조림과 싷콩플렉스가 껴있는 다른 그룹에서 빌려온 모음과
위 위스 위스 아벡 에스아라팡 위 위시옹 위시에 위스 같은 가톨릭의 연도(litany)같은 타령이 나온다.

바르트가 자주 사용했고 자신만의 의미로 새롭게 정립한 정신분석학적 용어는 perversion(페르베르시옹)인데 사전적 의미는 비뚤어짐, 변태, 전도... 지만 성적 일탈의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언어적 질서를 어긋나게 하는 힘으로 새로 정의했고 나아가 규범적 독해를 거부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독서법으로 확장해서 사용했다.
이 책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글이 바르트 자신이 정의한 탈규범적 독해에 대한 예시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까 태권도 사범처럼 기술을 설명하고 시범도 보인 것이다.

앞서 말했던 역자의 좋은 해설 중에 수학 용어인 탄젠트의 어원 설명과 단어의 외연 확장이 있다. 희랍어 뉘앙스와 이를 미술사와 종교와 문학에 자주 나오는 놀리 메 탄제레(라:탄게레, 스:탄헤레)와 연결하고 오디세우스까지 확장해 단어의 이미지를 풍윤하게 부풀렸다.(사진4)
소개하고 싶은 구절은 산더미같고 무릎을 탁 치며 하이라이트칠만한 표현은 한 다스 있지만 다 언급할 수 없으니 개별적인 구매를 권한다.

p206에 바르트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한 부분이 있는데 싸이월드 감성 같기도 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촘촘히 나열된 명사의 모음을 가지고 있는 끊임없이 갱신하는 자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홀로 있는 독개인의 정체성을 성립하며 남과 차별화하는 과정중의존재라고 할 수 있으니 앞으로 무엇이든 자신있게 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정확히 기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