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2월부터 5월까지 도쿄 롯본기 국립신미술관에서 했던 앙리 마티스전 도록이다. 종이접기와 마지막 로자리오성당 구현이 인상 깊었던 전시였다. 시간을 들여 다 읽었는데 특히 에세이 6번 이즈미 교코의 글은 1951년 일본에서 열린 앙리 마티스전에 대한 당시 반응을 전한다. 국립서양미술관에 콜렉터가 모네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이후 또 다른 충격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인물과 동시대에 호흡했다니
어질어질하다. 마티스마저 일본에 이렇게 이른 때에 소개가 되었다니. 일본인은 마티스의 진지함과 성실함에 큰 평가를 내렸다는 점과 전전 일본 미술계가 고전과 불교미술을 애호했는데 마티스가 이에 부합되는 서양미술가였다는 점을 새로 알게되었다.
1954년에 사망한 앙리 마티스는 전시에 오는 일본인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이 앙리 마티스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메시지에 대한 일어 번역과 원어 불어가 다소 톤이 다르다. 끝까지 읽고나니 뭔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와서 두 번역본을 비교해봤다
불어는 "일본의 예술가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부여해 준 위치를 생각하며 나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의 나의 의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위해 회화와 드로잉을 모아 내 활동을 회고적으로 보여준다" 라고 되어있어 일본인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보답의 형식으로 말하나
일어는 "일본의 예술가로주터 높은 평가를 받았고 앞으로 예술 활동에 격려를 느꼈다. 나의 활동이 예술 활동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데생을 모으기로 했다"로 겸손하게 바뀌었다.
또한 일어에서 성실함은 생활습관 개선, 고난극복 느낌으로 학생들에게 격려하는 어투으로 되어있는 반면
이때 마티스가 말하는 성실함은 일종의 격물치지 같은 것으로 자연에 대한 주의 깊고 존중어린 관찰에 비중을 둔다.
"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에 대한 성실한 관찰.. 자연에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의 깊이.. 언제나 정직하고 꾸준한 작업으로 뒷받침된 일정한 기교보다 중요한 것이다."
"본 전시회를 관람하는 학생제군에게 원하는 것은, 내 작품의 중요한 의의는 성실하며 끊임없는 창작활동에 의해 얻어지는 기교적인 것보다, 주의깊게 경의를 가지고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고 그 '자연'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질이라는 것을 깨달아주는 것이다"
책을 빠르게 읽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서는 배움이 짧아 전시회에 가서 하루종일 있어야 겨우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니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을 슬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