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 서촌의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해 오픈한 창성동 실험실. 걸그룹 씨엘 아버지인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의 개인 전시공간이다. 근처 프로젝트 사루비아, 그리다, 리안, 자인제노, 미앤, 스페이스윌링앤딜링 등이 있다.
아트 콜렉티브 NNR(내내로) 단체전 중 엄태신의 반려묘 드로잉(묘한 소통, paper on liner pen, 봉채, 2024)의 표현 방법이 인상적이다
냥이 두 마리가 서로 어깨를 사이좋게 기댄 다정한 뒷모습으로 보이나, 형태의 절반 이상은 검은 털의 덩어리와 여백의 흰 몸통으로만 표현되었다. 몸의 무게감은 느껴지지만 고양이의 표정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져 있다.

정면에서 얼굴이 보이는 고양이도 16:9비율의 스크린 연출처럼 목과 몸이 과장되어 길게 늘어나있고(영어로 표현하면 elongated) 나머지 몸의 화면 밖으로 사라져있다. 아오이 유우가 <하나와 앨리스>에서 이혼한 아빠가 교복입은 모습 좀 보자니까 징그러워(いやらしい)하고 새침하게 말하는 표정같다

이렇게 뒷모습이나 대상의 일부를 묘사하면서 전체를 환기하는 방식은 시각적 제유법(提喩法 synecdoche)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빵(=식량)만으로 살 수 없다든지 알파벳(=문자, 지식)도 모르는 사람이랄지
19세기 인상파 에드가 드가도 대상의 일부만 묘사하는 잘린 구도로 전체를 은유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20세기 영국 표현주의의 프랜시스 베이컨도 단편적 실마리로 내면의 불안한 심상을 부각시키곤 했다. 일종의 사진적 연출법이랄까
물론 동양에서도 여백을 활용한 회화 전통이 있고 대개 대상을 완전히 그리기보다 부분적인 윤곽을 제시하거나 농담을 조절해 붓질의 일부만 은근히 남겨서 나머지 보이지 않는 전체를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했다. 조선수묵화나 중국 남종화의 잔영, 하이쿠 영향을 받은 우키요예처럼
이응노가 먹으로 그린 인간 군상과 비슷한 느낌이되, 크롬블루색감에 스펀지로 몸통만 강조된 이브 클랭의 인체 흔적(Anthropometries)도 흔적으로 전체를 시각적으로 제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