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활용표와 문법서로 유명한 베셰렐(Bescherelle) 레이블명으로 나온 미술사 연도책이다.


출판사는 아띠에, 브랜드는 베셰렐.


체계적인 문법서와 학습참고서가 유명해 미국의 메리암-웹스터나 콜린스, 우리나라의 민중서림, 보리출판사, 현암사에 학습참고서를 합해놓은 포지션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


집필진은 셋으로

파리 보자르 국립고등미술학교 미술사 교수 기트미 말도나도,

액스 마르세이유대 현대미술 부교수(maître de conférences=대략 미국의 associate prof) 마리-폴린 마르틴,

파리 우에스트 낭테르 라데팡스대(파리 10대학) 현대미술 부교수 마타샤 페르낙이다.


오늘 새벽에 프린스턴대 고딕 건축양식 부흥에 관한 책을 읽은 김에 폈다가 국제고딕주의라는 재밌는 꼭지를 발견했다.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6734108


국제고딕양식은 15세기 르네상스와 함께 피렌체에서 등장한 화풍으로 화려한 색채, 섬세한 금장식, 동방풍 이국적인 세부묘사가 특징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떠오름)


로렌초 모나코(Lorenzo Monaco)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 두 화가의 동방박사 경배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Lorenzo Monaco, Adoration of the Magi. c. 1422. Tempera on wood, 115 x 177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Gentile da Fabriano, Adoration of the Magi, 1423, tempera on panel, 283 x 300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어 캡션에 소장지가 galerie des Offices 오피스 갤러리라고 되어있어서 찾아보니 우피치 갤러리(Galleria degli Uffizi)의 프랑스식 표현이었다.


신약성서 사복음서에서 마태복음에서만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가 나오므로(마 2:1-12) 성서적 기반은 좁으나 메디치와 스트로치 같은 신흥 금융, 상업 가문이 이국적 경관과 화려한 장식을 통해 위엄을 보여주고 부와 권위를 정당화할 수 있기에 주제가 대표적 양식으로 택해졌다.


화려한 금장식을 통해 자신들의 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면서 신성하고 권위있는 성서일화를 통해 자신들의 재력이 신이 인정한 질서라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린 그림은 종교적 그림이면서 동시에 부유한 가문의 후원을 보여주는 정치적 도상이 되었다


이 스타일이 프랑스, 보헤미아, 이탈리아 같이 유럽 전역으로 귀족 궁정문화와 함께 퍼져나가서 국제+고딕양식이라고 이름붙여졌다.


글의 첫 머리에 역사적 배경를 간략히 언급하며 시작하는데


1300년경 지오토(Giotto)로 대표되는 피렌체 회화의 황금기 이후, 1348년 흑사병(peste noire)으로 인해 잠깐 미술활동이 위축되었다가


다시 15세기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흐름을 서술하고


다음 문단에서 성경의 동방박사의 서사(텍스트) → 국제고딕이라는 양식적 특징(미술) → 피렌체라는 정치사회적 맥락에서의 구현(역사)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유려한 글이다.


탑티어 국문과(프랑스의 프랑스어과라는 의미의 국문과 말이다) 졸업생들이 대거 근무하는 사전전문 출판사에서 공들여 편집한 티가 난다. 글은 간략해 경제적이면서 핵심을 관통하고 맥락도 풍부하다.



다음은 사진의 해당 2페이지를 채선생에게 맡겨 번역한 전문에 일부 편집을 더했다.



1422년


제목: 국제고딕(Gothique international)은 동방박사 경배(Adoration des mages)주제를 탐구


헤드: 1300년 전후 지오토(Giotto)의 회화로 꽃피었던 시기를 지나 1348년 흑사병(la peste noire)으로 인한 위기가 뒤따른 후, 예술활동은 콰트로첸토(Quattrocento) 초기에 국제고딕(Gothique international)의 기치 아래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1문단: 새로운 궁정적 주제의 부흥(Le nouvel essor d’un thème courtois)


동방박사 경배(Adoration des mages)의 일화는 『마태복음』(Évangile selon Matthieu, 2, 1-12)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에서 한 왕의 탄생을 알게 된 세 왕(les rois mages)은 기적의 별(étoile miraculeuse)의 인도에 따라 베들레헴의 오두막으로 와서 성가족(Sainte Famille)을 경배한다. 


이 이야기로부터 국제고딕(Gothique international)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간 궁정미술(art de cour)로서 화려하고 이국적인 도상을 끌어내어 귀족적 이상에 부합하는 양식을 정립한다. 피렌체(Florence)라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즉 메디치 가문(dynastie des Médicis)이 지배하던 공화국(la république)에서, 이 성서적 장면의 선택은 메디치 가문이 지향한 부의 풍요(opulence)를 상징하며 동시에 신흥 상인 계급(la bourgeoisie marchande)의 야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 주제는 곧 두 화가에 의해 대표적으로 구현된다. 로렌초 모나코(Lorenzo Monaco, 약 13701425)는 1421년 산 에지디오 교회(Sant’Egidio)를 위한 예배당 장식으로 이 장면을 그렸고, 그 다음 해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 약 13701427)는 메디치의 라이벌인 파라 스트로치(Palla Strozzi)의 주문으로 산타 트리니타 교회(église Santa Trinita)에 같은 주제를 그렸다.


2문단: 로렌초 모나코의 섬세하고 화려한 예술(L’art délicat et pittoresque de Lorenzo Monaco)


1391년 피렌체(Florence)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Santa Maria degli Angeli) 수도원에 들어간 시에나 출신(Siennois) 로렌초 모나코(Lorenzo Monaco)는 필사본 삽화가(활자 장식, enluminure)로서 경력을 시작한 뒤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동방박사 경배〉(Adoration des mages) 는 사실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공간 속에 전개된다. 배경은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건축물(édifices disproportionnés)과 금빛 위에 그려진 추상적 바위(rochers abstraits)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은 빽빽하게 모여 개별성이 두드러지지 않으며, 육체의 무게감도 부족해 그림자조차 바닥에 드리우지 않는다. 화가는 오히려 옷주름(drapés)의 유려한 곡선, 인체 실루엣의 인위적인 유연함, 아라베스크(arabesques)의 리듬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또한 팔레트 역시 거의 형광색처럼 보이는 강렬하고 화사한 색조(tons vifs et fluorescents)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화(stylisation)에도 불구하고, 모나코는 회화적 정취(le pittoresque), 감정 표현(expression des émotions), 동물의 자연스러운 묘사(évocation naturaliste des animaux)에도 관심을 두었다.


3문단: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양가성(Les ambiguïtés de Gentile da Fabriano)


여행 화가였던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의 〈동방박사 경배〉(Adoration des mages)는 정교하고 세련된 우주(univers précieux et raffiné)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장식적 풍요(profusion décorative)와 일상적 세부(detail profane pris sur le vif)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예컨대 마굿간 관리(palefrenier)가 동방박사의 박차(éperons)를 풀어주는 장면을 구도 중심부에 배치한 점이 그 예다.


또한 금(Or)의 과도한 사용은 하늘(ciel)이나 장식(ornement)으로 쓰이면서도, 빛과 기상의 사실적 재현(phénomènes atmosphériques ou de la lumière)과 충돌하지 않았다.


비록 아르카이즘(Archaïque)이 양식화(stylisation) 선호로 드러나긴 했지만, 로렌초 모나코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가 개척한 궁정적 길(voie courtoise)은 이후 마솔리노(Masolino, †1424경)와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에 의해 지속적으로 탐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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