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캐도건 카우퍼(Frank Cadogan Cowper, 1877-1958)는 마지막 전(前)라파엘파(Pre-Raphaelite)라 불리는 영국 화가이자 삽화가로 유화 초상화를 통한 문학과 역사적 장면의 재현에 시간과 감정, 서사와 순간성을 버무려내는 근대적 감각을 더해 전통과 근대의 미술사적 맥락을 말끔하게 연결했다. 그림은 1907년의 vanity다.


마지막 전라파엘파, 라는 뭔가 엄청 있어보이는 캐치한 이름은 무엇인가? 전라파엘파는 19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초기 르네상스적 감각과 중세적 정교함을 재현하고자 설립된 그룹인데 회화의 순수미를 탐구하고 산업화와 근대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 신화와 상상을 조형언어로 재구성했다


과연 정제된 무균적 개념으로서 순수란 있는가? 를 자문해본다면 결성시기인 1848년 사람들이 상상한 순수란 곧 산업 vs 자연, 기계 vs 인간, 인공 vs 신화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만들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전(pre)이고 왜 마지막인가?

라파엘 이전은 중세 말기에서 초기 르네상스에 해당하는 14-15세기 이탈리아 회화와 플랑드르 회화를 말한다.


라파엘은 뭐를 잘못했길래 그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일단 라파엘은 아무 잘못이 없다. 라파엘 이후 회화가 고전적 균형, 이상화된 인체, 규범적 구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자연과 사실, 세부 묘사, 서사적 자유가 줄어든 점을 문제 삼았을 뿐이다. 전라파엘화가들이라고 라파엘의 그림 자체를 부정한건 아니다. 후대 예술가들이 라파엘 스타일을 공식화하고 규범화한 것이 문제였던 것


16세기 이후 고전주의 미학이 예술계의 표준이 되면서 서사적 상상력, 장식적 세부, 자연 관찰보다 형식과 비례를 중시하게 된다. 일종의 본질이 탈각된 교리중심 바리새인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맥락에서 전라파엘파는 규범적 형식주의를 극혐. 라파엘 이전 회화의 자유롭고 세밀한 감각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럼 왜 마지막인가?


카우퍼가 마지막이라는 타이틀로 수식되는 까닭은 모더니즘의 도래와 인상주의, 아방가르드 운동 확산이라는 19세기 좌충우돌 변혁기속에서도 여전히 전라파엘파적 미감과 기법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 잠시잠깐 불꽃이 타오른 이후에는 이후엔 효력을 잃고 다음 시대의 자이트가이스트에 바톤을 넘겨주었다. 미술사의 연속성과 단절, 재해석이라는 내러티브로 보자면 한 시대의 마지막 목소리로서 전통적 회화의 미학적 위상을 새삼 부각시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맹목적 회귀는 아니다. 르네상스적 조형 질서, 신화적 이상주의, 사실적 초상과 서사적 연출의 융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통 계보와 보수적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문학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재편해, 문학의 회화화, 회화의 심층서사를 이끌어 낸 좋은 사례다. 초상화에는 스토리, 내면적 긴장과 함께 섬세히 포착된 시대성이 보이는데, 전통 미학과 사실주의적 관찰, 개인적 서사라는 전통,근대,문학의 세 층위가 동시에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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