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코리아타임즈 사설에 종종 올라오는 윌리엄 존스의 칼럼이다. 한국 공립학교와 제주영어학교에 등에서 ESL 영어를 가르쳤고 지금은 버지니아 주립대 실험실 관리자를 하고 있다. 4-5년 전부터 꾸준하게 도서 리뷰, 교육 단상 등이 투고되는데 오늘은 생각해볼 점이 있어서 채선생에게 전문을 번역해달라 해서 맨 아래에 글을 공유한다. 다음은 생각의 실타래와 인사이트.
1. 칼럼은 도입부에 청소알바를 했던 아버지의 배려로 십대였던 자신이 원하는만큼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일화로 시작한 글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직 사회에 할 일이 없고 자기 시절을 만나지 못한 유예된 젊음이 가격은 싼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책과 영화에 몰입한다는 점이다.
그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와 출판, 배급하는 관련 업계는 시간에 좇겨 바쁘지만 향유계층은 지금 당장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많은 이들이다. 중고생, 휴학생, 취준생 등등. 학벌과는 큰 관계 없다. 이제는 학벌과 자산이 1:1로 트레이딩되지 않는다. 최근 읽은 기자 출신의 <엑소더스 재팬> 7장에서는 도쿄대 경제학과 졸업생도 현장에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일한다고 했다.
이들은 돈이 없다. 한 꼭지에 백원, 만화책 천원은 구멍 뚫린 호주머니 뒤져서 낼 수 있으나 가격이 너무 올라가면 돈을 내지 않고 불법으로 본다. 그러니 공급자는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게 전략이다. 대신 고급화 전략을 택해서 한정판, 굿즈, 피규어, 특별행사에 돈을 쓰게 한다. 찐팬, 단골의 목돈을 털어간다.
2. 90년대는 만화대여점과 비디오테이프 불법복사, 00년대는 초창기 웹툰, 웹소설, 10년대 이후는 카카페, 문피아, 조아라와 넷플릭스로 옮겨갔다.
넷플 한 달에 9천-1만4천원, 영화관 티켓 가격 한 장에 수많은 영화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칼럼 저자의 영화관 무료 입장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제작사와 배급사 입장에서는 관객이 티켓 하나하난 사주어야 이익이 되겠고 넷플릭스에 넘기는 건 헐값에 덤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겠지만 향유자 입장에서는 과거부터 있던 어떤 관습같은게 아닐까.
자고로 오징어는 해안가에 말리고 있는 오징어를 훔쳐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그게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픽션도 싸게 봐야 제맛인 것이다.
잡지나 책도 그런 부분이 있다. 독서가가 구매자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보는 사람은 무료로 본다.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지식을 유통하고 자기의 생각을 알리고 퍼스널브랜딩을 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널리 알려질수록 좋은 것이다. 널리 알려지려면 거진 무료거나 저가여야 훨씬 더 빨리 퍼진다. 입자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확산속도가 느린 것은 당연한 과학의 법칙 아닌가. 가벼워야 멀리간다.
그렇게 눈 감아주는 직원의 배려, 개구멍 몰래 입장, 혹은 평일 학생 할인 등으로 영화를 본 이들이 자기의 어려운 시절 마음을 붙잡아주었기에 시네필이 된다. 돈을 버는 때가 오면 과거를 추억하며 신작이 나오면 영화관에서 정가로 감상하기도 하고 굿즈도 사고 GV에도 한 번 가고 한다. 이런 비정기적 수익실현에 시간이 걸린다.
3. 비경합적(non-rival) 재화는 한 사람이 소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없는 게 줄어들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영화 상영이 대표적이다. 내가 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관람이 방해받지 않는다.
영화는 한계비용(marginal cost)이 0에 가까운 재화다. 영화가 이미 제작되어 극장에 걸리고 상영이 시작했을 때 관람객 한 명 더 입장시키는 비용은 거의 0이다. 그래서 청소직원의 아들 윌리엄 존스씨는 십대 때 거의 무료로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봐주는 행태가 너무 만연하면 티켓을 제대로 지불한 사람들이 불만을 갖고 손해를 봤다고 생각해 자기도 티켓을 사지 않기 때문에 예상수익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영화관은 티켓확인을 엄격하게 한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만 생각하면 비행기가 거의 출발하기 직전에 추가 구매자가 없을 게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는 좌석 하나 더 태우는 비용은 0이기에 땡처리로라도 판매를 하는게 유류비가 보전되니 항공사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그리고 비싸게 산 손님은 이를 몰라야한다.
4. 비슷한 예시로 어느 프랑스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유럽은 학비가 없다시피해서 그냥저냥 알바하면서 자기 앞가림만 하면 되었는데 대학가의 영화관에서 그렇게 영화를 많이 봤었다고. 학생가격으로 헐값이었는데다가(정확히 얼마라고는 안 말했다 말했나? 그러나 기억 나지 않는다) 직원과 안면을 트니까 어느정도는 그냥 들여보내주곤 했다고 맥주를 홀짝이며 말해주었다.
5. 다시 글로 돌아와 보자.
미국영화사를 언급하다가 후반에 "같은 해에 김광석이 태어났고"하며 한국의 문화적 아이콘과 미국의 타임라인을 연결한다. 이어서 기사의 앞에 소개했던 영화의 정치적 배경과 <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이>를 언급하며 한국영화를 같은 공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원어민이 한국문화를 잘 이해하고 쓴 간략하고 섬세한 글이다.
한국인이 한국영화나 문화를 소개하는 글은 티가 난다. 문화적 어휘에 대한 친절한 정의가 없고 설명없이 다들 익히 아는 듯이 혼자 글을 치고 나가며 방향도 국뽕이나 정보나열에 국한된다. 의미와 맥락을 짚는 글은 많지 않다. 독자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는 독백에 가깝다.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 기사의 진행방식은 인상적이다. 한국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 그 맥락을 수줍고 조심스레 일별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자신의 개인적 서사에서 시작해 점차 1960년대라는 시대적 풍경으로 시야를 넓히고, 다시 한국과 동아시아의 문화적 맥락과 교차시킨다.
으레 좋은 영문글이 그렇듯 개인적 기억에서 출발해 몰입감을 주면서 시작한 이야기이지만, 그 글의 품에는 냉전기의 문화정치, 대중음악과 영화산업의 흐름, 그리고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 속에서 점차 자리 잡아가는 흔적이 은근하게 배어 있다. 칼럼가는 특정 국가를 직접적으로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와 공간의 결을 따라 한국이라는 이름을 섬세하게 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접근이 독자의 뇌리에 인상이 더 남는다. 뇌과학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아무 지식과 맥락이 없는 0% 상황에서 정보를 하드디스크에 입히듯이 배우는게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80% 아는데 20%만 모를 때 가장 공부가 잘 된다는 것. 이런 시냅스의 연결 원리를 이해한다면 외국에 우리 문화를 소개할 때 어떤 전략을 취할지가 가늠될 것이다.
6. 채선생의 번역이다.
영화관람객The Moviegoer
미국 영화사의 한 장면으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63년과 1964년에 제 의붓아버지는 텍사스 포트 후드의 메인 영화관에서 저녁 시간에 파트타임 청소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 십대였던 저와 제 형제는 그 일을 돕는 대가로 원하는 만큼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얼마 전, 저는 1964년 4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가 배급한 영화 **〈The Best Man〉**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헨리 폰다와 클리프 로버트슨이 주요 배역을 맡았고, 원작 각본가인 고어 비달이 단역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와 관련된 영화는 보통 피하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정치인들의 세계를 일부 드러내는 훌륭한 정치 드라마였습니다.
그 안에서는 추문 폭로, 중상모략, 흑색선전, 거래가 끊임없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최근의 미국 선거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정치판에서는 당연시되는 듯합니다. 명예를 잃고 평판에 상처를 입는 일도 흔히 일어나죠. 정치는 잔혹한 세계이며, 미소와 악수가 반드시 겉과 속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에서 한 인물은 선거 대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다른 후보자는 양심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심리학에서 양심은 ‘초자아(superego)’라고 불리며, 우리의 행동과 의도, 도덕적 성품을 윤리적 책임과 의무 속에서 이끄는 인지적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옳고 그름·선과 악의 선택 앞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바로 양심입니다. 어떤 스웨덴 작가의 말처럼, “양심은 인간 안에 거하는 신의 존재”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습니다.
이 영화는 첨단의 정치 분석물이자,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모든 전술적 수단을 동원하는 정치의 전투를 묘사한 작품이었습니다. 인간의 악덕과 어리석음, 치명적인 취약함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 소음과도 닮은 현실을 비추었습니다. 영화사는 이 작품을 영화 연출·각본·캐스팅·촬영 등 제작 기법을 배우려는 이들에게 여전히 훌륭한 교재로 삼을 만합니다. 덧붙이자면, 촬영지는 로스앤젤레스의 앰배서더 호텔이었습니다. 혹시 관심 있다면 저처럼 유튜브 영화에서 102분짜리 〈The Best Man〉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964년 미국에서는 이 밖에도 중요한 문화적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영국 음악의 침공(British Invasion)의 일환으로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하며 ‘비틀매니아’를 일으켰고, 시드니 포이티어는 전년도 작품 〈들판의 백합〉으로 흑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한국에서는 포크 록 가수이자 작곡가 김광석이 태어났습니다. 한국 전쟁 액션 영화 〈빨간 마후라〉는 일본·대만·홍콩에는 개봉했지만, 정작 주력 무기였던 미국산 F-86 세이버 전투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한국에서 인기를 끈 영화로는 〈맨발의 청춘〉과 〈벙어리 삼룡〉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해를 채워준 다른 긍정적인 사건들도 있었고, 우리는 당시의 불안과 부정적인 기억을 상쇄해준 그 순간들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사 전문은 : https://www.koreatimes.co.kr/opinion/voiceofreaders/thoughtsofthetimes/20250819/the-movie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