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화역 아시아프 1부에 출품한 작가 중 몇 명만 글로 다뤄보자(3)

1. 김지윤, 키미 아트 까페, 광목에 나무 판자, 유채, 2025
2. 김지윤, 광화문, 광목에 나무 판자, 유채, 2025
왜곡된 다중 시점과 파노라마와 지도적 감각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와이드샷, 부감샷, 구면 렌즈, 버티고 샷이 모두 생각나는 왜곡된 원근법이다. 왼쪽 그림은 까페의 탁자, 오른쪽 그림은 세종대왕상을 중심으로 360도 평면도가 바깥으로 불균질하게 펼쳐지며 곡선의 흐름을 만든다.

나무 마루나 아스팔트는 거친 스트로크로 구현되어있어 회화에 도예적 촉각성을 더했다. 색감 대비도 좋다. 자칫 구불구불한 사형의 선들이 어지러울 수 있는데 세부 묘사가 치밀하며 확실한 중심성을 더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패널도 볼록하다.

내부 공간을 지도처럼 재배치하면서 꿈 같은 기억 속 공간의 비논리성과 경험의 비균질성과 심리의 비논리성을 반영하는 것 같다. 왜곡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간 체험의 심리 지도다.
이런 재편집된 지도의 기억은 우리가 공간과 도시에 대해 인식하는 시각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것의 방증일테다. 디피도 좋다. 왼쪽 그림은, 다들 잘 모르는 백남준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평창동 키미 아트 까페 2층으로 사적이고 내밀하고 폐쇄된 건물 내부 공간으로 개인적 기억을 의미한다. 한편 오른쪽 그림은, 공적이고 상징적이고 개방된 광장 공간으로 집단적 기억을 의미한다.
그냥 버즈 아이 뷰나 드론샷, 혹은 <블레이드러너2047>에서 보이는 극단적으로 먼 위성샷을 썼다면 관람자의 시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권력자의 시선을 체험하게 했을텐데,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신적 시선을 보여주되 위성사진, 파노라마, 지도, 볼록 렌즈 같은 여러 왜곡된 연출을 더해 심리적 왜곡을 가미했다. 심지어 벽에 붙어버린 의자도 보인다. 신조차도 인식은 불완전하다는 의미다.

과장된 파노라마샷이라는 점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Beuvron-en-Auge Panorama, 2019 같은 레퍼런스도 생각난다.
대각선이 강하게 관람자를 향해 다가온다는 점에서 richard estes도 생각난다. 이런 모든 공간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지도는 왜곡한다. 입체를 평면으로 옮기는 시도는 불완전하다. 메르카토르 독법은 아프리카, 러시아와 그린란드를 과장한다. 메르카토르 투영은 바다를 건너는 항해자에겐 친절했으나 일부 공간은 왜소하게 일부 공간은 풍선처럼 부풀린다.
지도는 사용자 위주의 시선을 전달한다. 지도는 결코 무죄가 아니지만 유저에게는 친절하기에 수용된다. 형태의 정확성보다 항로의 직선을 우선시했고 그 결과 북반구의 권위가 비례 속에 봉인되었다. 육지는 바둑판 위 말처럼 재배치되고 권력은 경도와 위도의 그물망에 숨는다. 평면 속 세계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의 그림자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소중화주의가 숨어있다
그런 지도야말로 왜곡된 시선의 조형물이다. 투영법의 선택은 회화에서 구도를 정하는 일과 같다. 회화의 원근법처럼 현실을 재현하는 동시에 재구성하는 권력자의 시선이다